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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던지고 하버드가 소송으로 받은 이 대학과 정부의 갈등은, 사실 긴 시간 보장되어 오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었던 대학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표면으로 드러냈다. 정치권력이 대학 운영과 인사, 교육 과정, 학술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때 학문의 진정한 자유와 대학 자율성은 위태로워진다. 미국 대학이 국가 권력의 과도한 개입에 집단적으로 맞서는 상황은 수백 년 전 중세 대학이 교황·왕권의 압력에 저항하며 자치권을 쟁취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 중)

신하영(세명대 교양대학 교육학 교수)

 

대학은 권력과 진리의 경계에서 생겨났다. 12세기 볼로냐와 파리, 옥스퍼드 등 유럽 중세 대학들은 봉건 왕권이나 교황청의 간섭으로부터 학문과 교육의 독립성을 쟁취하려 했다. 대학은 ‘특정 사상·신분·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진리 추구의 공간’을 표방하며, 교사의 임명·학생의 선발·교과목 편성 등에서 외부 권력의 개입에 맞섰고, 바로 그런 역사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학 자율성의 원형이 형성되었다. 대학의 자율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대학의 기원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지식인의 정치적, 사회적 독립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이다.1) 오늘날 대학은 과거처럼 거의 모든 지식의 생산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 다수가 대학에서 자라나고, 대학은 이들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은 여전히 진실이다.

 

2025년 들어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정책 변화는 대학 안의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대학과 외부 권력 간의 긴장을 세계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정부는 유학생과 연구원 비자 발급의 갑작스러운 통제, 특히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을 타겟으로 한 신규 비자 중단 및 기존 비자 취소, 지원자 SNS·사상 심사, H-1B 취업 비자 수수료의 극적 인상과 같은 조치를 연이어 공개했다. 미국 정부는 대학교 내 반이스라엘 집회 등 정치적 소요에 연루된 외국인 학생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 그리고 국가 안보 및 ‘미국적 가치’ 수호를 강조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2)3)

 

그러나 이런 결정은 미국 대학들의 근간을 위협했다. 21세기 미국 대학은 더 이상 ‘미국인만의’ 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 특히 하버드와 아이비리그 사립대학을 필두로 주립/공립대학까지도 정부에 맞서 소송과 성명을 발표하며 반발했다. 하버드대는 연방 정부의 학생 비자 등록 금지 행정 명령이 발표된 불과 몇 시간 만에 위헌 소송과 효력 중지 가처분을 제기했고, 연방 법원이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고려해 즉시 효력정지 판결을 내림으로써 대학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대학의 비영리 면세 지위에까지 압박을 확대하며, 대학의 운영·인사·교육과정·학생/교수의 이념 검증을 시도하고자 했다.4)

 

 

더불어 컬럼비아대, MIT 등 주요 대학들은 학문의 자유 침해, 대학 자율성 훼손, 국제적 다양성과 연구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며 연대했다. 유학생 입국 불허, 기존 비자 취소, 엄격한 SNS·사상 심사 및 체류 기간 단축(최대 4년), H-1B 수수료 100배 인상 등 트럼프의 정책에 따라 다층적 피해가 급증하고 있으며, 실제로 유학생 비자 취소 건수가 4만여 건, 유학생 지원율이 35% 감소하는 등, 미국 대학들의 재정·연구·국제 교류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5)6) 대학이 길러내는 우수한 졸업생은 곧 원천 기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막대한 부가 가치를 생산해 내는 미국 기업에 공급되어 왔다. 미국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력, 특히 비서구권 IT 인력을 자연스럽게 ‘공급받아 온’ IT 기업(구글, 페이스북, MS 등)이 느끼는 위협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7)

 

트럼프가 던지고 하버드가 소송으로 받은 이 대학과 정부의 갈등은, 사실 긴 시간 보장되어 오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었던 대학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표면으로 드러냈다. 정치권력이 대학 운영과 인사, 교육 과정, 학술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때 학문의 진정한 자유와 대학 자율성은 위태로워진다. 미국 대학이 국가 권력의 과도한 개입에 집단적으로 맞서는 상황은 수백 년 전 중세 대학이 교황·왕권의 압력에 저항하며 자치권을 쟁취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은 단순히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 권력의 이념 검증, 자율성 침해에 적극 저항한다는 실천적 의미를 가진다.

 

미국에서 나타나는 대학-정부 간 긴장과 갈등은 한국의 교육부를 위시한 역대 정부와 대학(주로 사립대학) 간 관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역대 정부가 내놓은 ‘반값 등록금 정책’을 비롯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등 일방적이고 대중 정서에 영합하는 정책들을 합의 없이 내놓을 때, 대학들은 지속적으로 대학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이야기해 왔다. 개별 대학의 등록금 수준, 입학생 선발 방법, 유학생 수를 국가가 강제하거나 관리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물론 한국은 유럽 대학들과 역사적으로 다른 연원으로부터 발전해 왔을 뿐 아니라, 공고한 학벌주의로 인해 대학 입시에 쏠린 국민적 관심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근현대를 보면, 과거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민주화 운동=학생 운동’으로 등치될 정도로 대학은 민주주의 최후의 방어선이었고, 지금은 나라의 미래인 청년 세대 대다수를 길러내는 교육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미국 대학들이 정부의 유학생 비자 제한과 정치적 검열, 대학교를 향한 재정 압박과 사상 검열을 통해 본 것은, 대학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해 온 과거 폭압의 그림자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학이 보여 준 집단적 저항은 단지 대학의 생존만을 위한 일에 그치지 않는다. 중세의 대학이 그랬듯, 오늘의 대학 역시 대학 안에 더 많은 다양성을 확보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침묵하지 않고 저항해야 ‘대학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때 대학이 보호해야 할 것은 공동체 내 다양한 구성원뿐 아니라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까지도 포함할 것이다. 권력이 내세운 명분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목소리와 행동이 있을 때, 대학을 향한 사회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1) 남기원, 『대학의 역사』(위즈덤하우스. 2021).

2) 권이선, “미국, 2025년 유학생 비자 6000여 건 취소”, 「세계일보」, 2025. 8. 19.

3) 김덕식, “트럼프, 美 비자 규제 강화…유학생·교환 방문자 체류 4년 제한”, 「매일경제」, 2025. 8. 28.

4) 김송이, “입학 포기 속출’…트럼프의 유학생 고삐 죄기에 美 대학들 ‘비상’”, 「조선비즈」, 2025. 8. 21.

5) 방성훈, “트럼프 유학생 규제…‘중소 사립대·주립대 생존 위기’”, 「이데일리」, 2025. 6. 4.

6) “2025년 현재, 30%에 달하는 미국 학생비자 거절”, 「머피컨텐츠」, 2025. 5. 23.

7) 2020년,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만 듣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출국을 강제하는 규제안을 발표했을 때, 주요 IT 기업뿐 아니라 잠재적 손실을 우려한 17개 주정부까지 대학이 시작한 대(對)정부 법적 저항에 동참했다. “미 17개 주 정부·페이스북·구글 등 유학생 비자 규제 반대 소송 지지”, 「VOA 한국어」, 202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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