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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 추구란 개인이나 집단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제도·규제·희소 자산을 선점해 사회가 만들어낸 부를 이전받는 행위이다. 이러한 지대 추구가 만연해질수록 사회의 자원과 개인의 선택은 생산과 혁신이 아니라 토지 보유와 가격 상승 기대에 묶이게 된다. 주거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자 상품이 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며, 청년과 무주택 서민은 점점 더 높은 진입 장벽에 가로막힌다. (본문 중)
이성영(동천 주거공익법센터 연구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두고 연일 강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부동산 불로 소득 공화국에서 탈출해야 한다”라는 발언은 단순한 시장 안정 발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정면으로 지목하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부동산 세금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금을 주로 재정 확보 수단으로만 언급해 왔었는데, 최근에는 불로 소득과 지대 추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인식 전환이 읽힌다. 방향 설정에 관해서만 평가한다면 늦었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토지 불로 소득과 지대 추구의 구조적 해악
불로 소득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노동이나 생산 활동이 아니라 자산 보유나 거래를 통해 얻는 소득을 의미한다. 이자, 배당, 임대료, 유가 증권과 부동산의 매매 차익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정의만 놓고 보면 주식에서 발생하는 불로 소득과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 소득은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사회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두 불로 소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주식에서 얻는 불로 소득은 기업 활동에 대한 투자와 위험 부담을 전제로 하며, 자본을 생산 부문으로 유입시키고 고용과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반면 부동산, 특히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 소득은 다르다. 토지는 인간의 생산 활동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자산이 아니며, 그 가치 상승의 상당 부분은 도로, 교통, 학교, 상업 시설 등 사회 전체의 투자와 집단적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그 이익은 토지 소유자 개인에게 귀속된다.
부동산 불로 소득, 보다 정확히 말하면 토지 불로 소득의 추구는 전형적인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이다. 지대 추구란 개인이나 집단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제도·규제·희소 자산을 선점해 사회가 만들어낸 부를 이전받는 행위이다. 이러한 지대 추구가 만연해질수록 사회의 자원과 개인의 선택은 생산과 혁신이 아니라 토지 보유와 가격 상승 기대에 묶이게 된다. 주거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자 상품이 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며, 청년과 무주택 서민은 점점 더 높은 진입 장벽에 가로막힌다.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천부적 자원인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를 소수가 독점하는 지대 추구는 공동의 선물을 사유화하는 행위이며, 약자의 삶의 기반을 잠식하는 죄악이다. 성경은 ‘땅을 독점하는 자’의 죄를 반복해서 경고하는데(레 25:23; 사 5:8; 미 2:1-2), 예언자들은 이런 행위를 단순한 개인의 탐욕을 넘어 공동체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여겨 비판해 왔다.

올바른 방향 그러나 불안한 구현 방식
이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설정한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탈출’이라는 프레임은 문제 인식 차원에서는 매우 타당하다. 이는 집값 관리나 공급 확대라는 기술적 논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소득 구조와 자산 축적 방식 자체를 재검토하자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를 ‘시장 과열’이 아니라 ‘지대 추구 구조’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들보다 한 단계 진전된 문제의식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 프레임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우려되는 지점이 남아 있다.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 신호를 종합해 보면, ‘부동산 불로 소득 공화국 탈출’이라는 선언적 목표와 달리 실제 정책 논리는 여전히 ‘1주택 실수요자 대 다주택 투기꾼’이라는 이분법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주거용이 아니라면 똘똘한 한 채도 안 하는 것이 이익’일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세제 강화를 예고하면서도,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어야 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문재인 정부 시기 ‘다주택 투기 억제, 1주택 실수요 보호’ 프레임이 ‘똘똘한 한 채’ 집중과 고가 주택 가격 급등으로 귀결된 경험은 이러한 이분법적 프레임에 기반한 정책의 허술함을 잘 보여 준다.
오늘날의 지대 추구는 더 이상 다주택 보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이미 부동산에 있어 가족 단위에서 수익률 극대화를 추구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이혜훈 전 의원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위장 미혼’, ‘위장 전입’, ‘위장 결혼’, ‘위장 이혼’ 등 정책 사각지대를 노린 온갖 방식을 동원하여 가족 단위에서 부동산 불로 소득 추구를 극대화하고 있다. 토지 불로 소득을 환수하여 부동산 불로 소득 공화국에서 탈출하기에는 ‘다주택 투기, 1주택 실수요’ 기반의 세제 정책의 그물코는 너무 크고 헐겁다.
토지 불로 소득 자체를 겨냥해야
토지 불로 소득은 1주택이냐 다주택이냐, 투기인지 투자인지, 실거주인지 비거주인지에 따라 발생 여부가 갈리지 않는다. 10억 아파트를 다섯 채 가진 사람이나, 50억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사람이나, 사회가 만들어낸 토지 가치 상승을 사적으로 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토지 불로 소득을 누린다. 정말로 ‘부동산 불로 소득 공화국 탈출’을 목표로 삼는다면, 세제 정책 역시 주택 수, 거주 여부가 아니라 불로 소득의 크기와 토지 가치에 기반해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주택자 세제 혜택 종료와 함께, 주택 수가 아닌 가액 중심의 세제 전환, 공정 시장가액 비율 상향 또는 폐지, 공시 가격 현실화 로드맵 재추진 등 ‘똘똘한 한 채’로의 왜곡된 유인을 완화하는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토 보유세–토지 배당’ 제도 도입, 혹은 재산세와 종합 부동산세 통합을 통한 보유세 강화 및 단순화 등 보다 근본적인 선택을 논의해야 한다.
부동산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기술적 정책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의 문제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탈출’이라는 방향은 옳다. 이제는 그 방향에 걸맞은 일관된 정책 프레임과 지대 추구를 구조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정교하고 치밀한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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