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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발적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상업적인 기획이 사랑과 성장이라는 아름다운 표현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팬들의 시간과 돈과 노동, 그리고 감정마저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모든 것은 이익을 위한 상품이다. 그러니까 사랑처럼 보였던 ‘생카’를 준비하던 팬들의 마음도 사실은 기획사의 다양한 상품 중 하나일 뿐이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몇 해 전의 일이다. 강남역 부근의 거리를 걷다가 중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보았다. 그들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었다. 만들기에 심취한 듯 보였지만 때때로 고개를 들어 맞은편 상점을 쳐다보았다. 자연스레 눈길이 따라간 그곳에는 어떤 아이돌 가수의 생일을 축하하는 공간이 마련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연예인이 왜 이런 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지, 일반인들이 왜 연예인을 위한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지 등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약속 시간 때문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후 강의실에서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은 소위 ‘생카’라고 줄여 부르는 ‘생일 카페’였다. 생카는 팬들이 연예인의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 등을 축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여는 이벤트 공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만들고 있던 것은 카페를 꾸미기 위한 장식들과 이벤트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굿즈라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시간과 비용과 노동을 들여서 이벤트를 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생일을 맞은 연예인이 생카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이 이런 식으로 여는 생카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을 터이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이 아닌 이상 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그녀를 위해 생일 파티를 여는 그들의 마음, 순애보도 이런 순애보가 없다.

 

그래, 이것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처럼 보인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생카는 연예인을 향한 팬들의 마음이 사랑같이 보이는 형태로 진화하였음을 증명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전 세대의 팬심도 사랑이었노라 주장한다면, 그런 팬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없다.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마음의 크기는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표현 방법이 더욱 적극적이고, 직접적이며, 스케일이 커졌다는 면에서 진화한 것은 맞다. 그렇다면,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이들의 마음이 이렇게 변했을까? 환경에 맞춰 스스로 진화한 것일까?

 

 

안타깝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차. 혹이라도 이 글의 독자 중에 팬들이 있다면 오해하지 마시길. 여러분의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마음조차도 소비재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한국 음악 시장의 아이돌 문화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발전해 왔다. 공연과 음반으로 수익을 올리고, 팬클럽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던 문화는 미디어 기기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확장되었다. 아이돌은 특정 조건을 만족한 팬들만을 위한 팬 사인회, 유료 소통 앱을 통한 사적 대화 등을 통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진짜 연애는 아니지만, 그 정도로 친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관계의 형성’이 아이돌 문화의 또 하나의 주요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를 일각에서는 “유사 연애”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쪽에서는 “유사 연애”라는 표현이 팬심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그들의 팬덤은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여전히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 팬심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발적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상업적인 기획이 사랑과 성장이라는 아름다운 표현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팬들의 시간과 돈과 노동, 그리고 감정마저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팬덤을 가진 팬들은 자신이 응원했던 연예인의 (실제) 연애에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돌의 열애설이 터질 때마다 팬덤이 흔들리고, 비난이 쏟아지고, 결국 당사자들이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연애를 하는 것처럼 친밀감을 느꼈던 사람이 일으킨 배신감? 아니면 함께 성장하기로 약속을 해놓고 한눈을 판 불성실함? 애초에 사과가 의미 있는 행동인지조차 모르겠다. 이런 경우 진심 어린 사과는 연애를 중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논란은 흐지부지 끝나버린다. 이 역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닐지 의심하게 되니 기획사가 모든 것을 짜놓은 판 속에서 움직이는 트루먼이 된 기분까지 든다.

 

확실한 것은,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그 이유의 대부분은 기획사의 상업적 전략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익을 위한 상품이다. 그러니까 사랑처럼 보였던 ‘생카’를 준비하던 팬들의 마음도 사실은 기획사의 다양한 상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녀가 ‘생카’에 가는 것을 무조건 막는 것도 현명하지는 않다. ‘생카’의 진실을 알고 딱 그 정도만 즐기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보면 마음이 헛헛해진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연예인들의 마음도 공허할 것 같다. 진실을 깨달을 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터이고. 아무리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토록 상업적 기획이 만연한 각박한 세상에도 아직 낭만이 존재하는 하위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 아이돌’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미디어 활동보다는 소규모 공연 중심의 활동을 하는 아이돌을 말한다. 대부분 대형 기획사와의 계약 없이 활동을 하다 보니 공연이나 분장 비용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공연을 보러 온 팬들과의 팬 미팅 수입으로 해결한다. 물론 팬 미팅이라고 해봤자 소규모 공연장을 채운 이들과의 만남이니 대단한 수익 사업이 될 수는 없다. 그저 공연을 하고 싶은 이들과 그들을 마음껏 응원하고 싶은 이들이 만들어 낸 문화라고 하겠다. 모든 것이 ‘유사’ 혹은 ‘상품’의 형태를 띠는 아이돌 팬덤보다는 덜 화려하고 덜 꾸며져서 조금은 더 진심 같은 지하 아이돌과 그들의 팬들과의 관계가 사랑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보니, 비교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안 될 것 같다. 팬들의 진심을 왜곡하는 발언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하 아이돌 같은 덜 상업적이고 자발적인 공연과 팬덤 문화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낭만이 지하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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