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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외교이며, 누구도 나의 생존을 지켜주지 않는 처절한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무기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무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이 때문에 한국 외교에서 한국 무기의 영향력은 점차 커질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 좋은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본문 중)

 

박민중(국제정치 칼럼니스트)

 

외교의 시계는 365일 24시간 쉬지 않는다. 외교의 주체는 개인, 기업 그리고 국가와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전통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외교 현장은 국가 정상 간 회담일 것이다.

 

지난 3월 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한국-필리핀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다. 여느 정상 회담 관련 언론 보도가 그렇듯, 이번 보도들 또한 언론마다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언론은 원전을, 어떤 언론은 AI를, 어떤 언론은 방산을 내세운다. 모두 이번 회담의 의제였고 구체적인 협력을 약속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입장이 서로 다른 두 국가의 서로 다른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 이번 정상 회담에서도 확인된 한국의 강점, 그리고 이와 관련된 도덕적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진 1> 이번 필리핀 방문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 시절 인연을 맺은 필리핀 노동자 아리엘 갈락 씨를 만난 이야기다. (출처: 한겨레)

 

외교의 셈법이 드러난 공동 언론 발표문

 

일반적으로 정상 회담 후에는 공동 성명(Joint Statement) 또는 공동 언론 발표문(Joint Press Statement)을 채택한다. 간혹 정상 회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런 공식 발표 없이 끝나기도 한다. 이번 한·필리핀 정상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은 공동 언론 발표문을 채택했다.

 

<사진 2> 마닐라 말라카냥궁에서 한국-필리핀 정상 회담 후 두 정상이 마주 보고 있다. (출처: 청와대)

 

공동 언론 발표문이라면 문구나 내용이 동일할 것 같지만, 막상 각 국가에서 발표한 발표문을 보면 같은 듯 다르다. 이 부분을 통해 정상 회담 과정에서 쉽게 합의한 내용은 무엇이고, 각국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번 한국-필리핀 정상 회담도 양국의 공동 언론 발표문을 보면 정상 회담의 내용을 담는 그릇이 비슷해 보이지만 더 자세히 보면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다르다.

 

핵심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양국이 이번 정상 회담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달랐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은 모두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구체적인 지역으로 중동 지역을, 마르코스 대통령은 남중국해를 언급했다. 그리고 실제 회담에서는 한국이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임했다면, 필리핀은 군사·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이재명 대통령: “우리 양국은 급변하는 경제‧안보 환경에 함께 대응하며 공동 번영의 길을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마르코스 대통령: “양국은 해양 영역을 포함해 지정학적 환경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함께 인식했으며···”(We both recognized the growing uncertainty in geopolitical developments, ··· including in the maritime domain).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안보 환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정학적 환경의 불확실성’이라고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군사적인 측면과 함께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미치는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했다면, 마르코스 대통령은 보다 군사적인 측면에 치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필리핀의 안보 환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진 3> 미‧중 경쟁이 심화할수록 필리핀의 안보 환경은 곤란해진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위해서는 필리핀과의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2023년 추가로 4곳을 새로운 미군 기지로 제공했다. (출처: 중앙일보)

 

필리핀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미국과 동맹국이었던 필리핀은 중국이 부상할수록, 그리고 그에 따라 미국과 중국이 태평양을 두고 갈등이 심화할수록 안보적으로 난처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중국 또한 패권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태평양 진출이 필수적이므로 필리핀과의 마찰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왼쪽에는 한국-일본-대만이 있고, 오른쪽에는 오랜 앙숙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만만한 출구가 필리핀과 마주하는 남중국해 지역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 섬을 만들며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 필리핀의 안보 불안이 커지고 있다. 2022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2023년 필리핀 내 4곳을 추가로 미국의 군사 기지로 제공하며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동맹국들에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는 동시에 중국에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과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었던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필리핀의 안보 불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생존을 위해 필리핀은 스스로 힘을 기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스스로 힘을 기르는 핵심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군사력 강화다. 이 지점을 바로 한국이 파고든 것이다.

 

이는 양국의 공동 언론 발표문의 실질 협력 분야에서 잘 드러난다. 실질적인 협력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회담의 주요 성과’라는 표현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1) 한-필리핀 FTA에 기초한 경제 분야 협력

2) 인프라‧방산 등 전략적 산업 분야 협력

3) 조선, 원전, AI 등 신성장 분야 협력

4) 민간 교류 협력

 

앞서 말했듯이, 전반적으로 한국은 경제 혹은 경제·안보적인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 필리핀이 원하는 군사적 협력은 회담의 두 번째 성과였던 전략적 산업 분야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방산 기업이 필리핀군 현대화 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함께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즉, 한국은 필리핀이 원하는 군사 협력을 방산 수출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달리 마르코스 대통령은 공동 언론 발표문에서 회담의 주요 성과가 아닌 5가지 분야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한국의 지원과 기여에 감사’(appreciation for the Republic of Korea’s invaluable assistance and contributions)를 표했다. 바로 이 5가지 분야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필리핀이 한국에 원했던 부분이다.

 

1) 군 현대화와 해안 경비대 역량 강화

2) 조선과 반도체 산업 협력

3) 인프라 사업 투자

4) 농업, AI 등 개발 협력

5)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국민의 권리와 복지 보호

 

결국 공동 언론 발표문의 실질적인 협력 분야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안보 분야의 협력을 중심으로 회담의 주요 성과를 말했다면, 마르코스 대통령은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을 중심으로 한국에 요구했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힌 것이다. 어찌 보면 외교라는 것도 거래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필리핀이 처한 안보 환경에서 필리핀의 군사·안보적 협력 요구에 한국은 무기 수출이라는 경제·안보적 협력으로 합의한 것이다.

 

외교와 도덕의 문제

 

이번 글은 이렇게 마쳐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정상 회담들을 보고, 요동치는 국제사회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보면서 무언가 불편한 지점이 점점 생겨난다. 고상하게 말하면, 외교와 도덕의 문제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무기를 외교의 지렛대로 삼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다.

 

한국은 방위 산업에서 주요, 아니 핵심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폴란드에 124억 달러(약 18조 원)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하더니, 같은 해 UAE와는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천궁-Ⅱ 수출에 합의했는데(35억 달러, 약 4조 원), 이는 당시 한국의 방산 수출 사상 단일 품목으로 최대 규모였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은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들과 무기 수출 계약을 계속해서 체결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 한국의 경제적 이익, 나아가 외교라는 협상 테이블에서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쥐었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실제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촉발된 중동 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는 UAE로부터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도입하고 1,800만 배럴 추가 공급을 약속받는 성과를 보였다. 여기에 천궁이라는 미사일 수출로 시작된 양국의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한국의 방위 산업 영향력 강화는 점점 더 약육강식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정부에 그리고 한국 외교에 강력한 협상 카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외교이며, 누구도 나의 생존을 지켜주지 않는 처절한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무기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무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이 때문에 한국 외교에서 한국 무기의 영향력은 점차 커질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 좋은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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