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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어지고 자동차로 대체될 때 수많은 마부가 운전사가 된 것이 아니다. … 기술의 도입으로 생기는 유불리는 구체적인 개인과 기업의 단위로 계산하고 협상해야지, 시대의 흐름이나 국가의 발전 같은 거대 논의나 집단 논리로 치환하면 곤란하다. 최첨단 기술인 아틀라스와 노동자가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아틀라스를 도입하려는 기업과 노동자가 갈등하는 것이다.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러다이트’ 콤플렉스

 

18세기에 고급 직물을 만들던 수공업 직조공들은 방직 기계가 도입되자 자신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직감했다. 그들은 ‘러드’(Ludd)라는 사람의 주동으로 밤에 공장을 돌면서 기계에 불을 지르는 저항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 무리를 ‘러다이트’(Luddite)라고 부르는데, 실존 인물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 ‘러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후 오늘날까지 첨단 기술의 도입을 꺼리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별명이 경멸조로 붙여지곤 한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자동차 생산 공정에 투입하겠다고 하여 큰 반향이 일었다. 우선 다른 조건들과 맞물려 현대차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대통령이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다”라고 하면서 이른바 ‘피지컬 AI’의 등장을 대세로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노조는 “노조와의 협의 없이는 한 대의 아틀라스 도입에도 반대한다”라고 하여 여러 논란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노조가 아틀라스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을 들어 ‘러다이트’냐며 비웃는다. 다른 이들은 인공 지능과 로봇이 결합하면 사람의 노동이 불필요하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두려워 침묵한다.

 

제3의 길

 

사실 이런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기존의 질서를 심대하게 흔들 잠재력이 있는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갈등은 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차이를 단순히 찬성과 반대, 흑과 백의 구도로만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중간의 해결책은 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OECD 국가 중 인구 대비 산업용 로봇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무조건 자동화의 길을 선택한 결과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일찍 제조업 강국이 된 독일은 산업용 로봇으로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노동자와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다른 길을 걸었다. 현대차 노조가 “노조와의 협의 없이”라는 단서를 단 것에 좀 더 무게를 두어야 하고, 대통령 역시 노조의 발언을 협상용으로 이해한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신기술을 전면 도입하면 생산성이 높아져 기업에게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련한 다른 문제들을 함께 고려하면 늘 계산이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전체의 유익이 더 커지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중 한 방법이 직접 당사자인 노조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로봇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인지를 의논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로봇의 도입을 반대하는 노동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고, 도입을 모색하는 기업은 앞서간다고 생각하거나, 이 거대한 흐름은 불가피하므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적이다. 우리에는 기업도 노동자도 다 포함되는데,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애국이고 노동자가 자기의 직장을 걱정하는 것은 반역일 수 없다.

 

 

당사자의 유불리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많은 직업이 없어졌지만 새로 직업이 생겨 상쇄되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한참 지난 뒤에 하는 주장일 뿐이다. 한 직업이 사라졌다고 새로운 직업이 당장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없어지고 자동차로 대체될 때 수많은 마부가 운전사가 된 것이 아니다. 마부는 직업을 잃은 채로 힘들게 살아야 했고, 시간이 흐른 후 다른 이들이 운전사 직업을 갖게 되었다. 기술의 도입으로 생기는 유불리는 구체적인 개인과 기업의 단위로 계산하고 협상해야지, 시대의 흐름이나 국가의 발전 같은 거대 논의나 집단 논리로 치환하면 곤란하다.

 

최첨단 기술인 아틀라스와 노동자가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아틀라스를 도입하려는 기업과 노동자가 갈등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틀라스 논란을 진보와 퇴보의 시각이 아니라, 당사자의 유불리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아틀라스 도입이 국가 발전, 즉 모든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서 긍정적인 결론이 나면, 그로 인해 소수가 감당해야 할 손해는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 만약 그 이익이 기업에게만 돌아가고 노동자는 일자리만 빼앗기는 경우라면, 그야말로 노사 합의가 필요한 일이지 외부에서 이런저런 입을 댈 일이 아니다.

 

주가가 오른 이유

 

이 논란의 실제 맥락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방금까지 언급한 모든 논의는 휴머노이드를 자동차 생산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미 고도로 자동화된 자동차 공장에서 휴머노이드가 어떤 추가적인 유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혹은 다른 형태의 산업 로봇이나 생산 공정이 아닌 휴머노이드를 굳이 투입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번 발표는 아틀라스가 자동차 생산 공정 같은 실제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생산 능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또 많은 언론이 표현한 것같이 현대차가 자동차 기업이 아닌 AI 로봇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현대차 주가의 상승도 자동차 공정에 휴머노이드를 도입해서 생기는 직접적인 이윤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제로 사용 가능한 휴머노이드의 개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두 주자의 고민과 기술의 정치

 

과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가난하고 기술력이 없을 때에는, 한시라도 빨리 기술을 받아들여 간극을 줄이고 잘 사게 되는 것이 중요했다. 신기술의 도입이 언제나 그 자체로 선이라고 생각한 이유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남이 가던 길을 무작정 따라가면 되는 후발국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도국의 위치에 서 있다. 선두 주자에게는 무조건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어디를 향해야 자신과 뒤에 따라오는 이들에게 더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그것이 무성찰의 핑계가 될 수 없다. 과거를 보고 추격하는 이들을 신경 쓰느라, 옆에서 같이 달리는 경쟁자를 견제하느라 두리번거리다가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인류 전체에게 손해를 입히는 셈이 된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관성을 버리고 선두 주자의 책임을 담당할 때가 되었다.

 

과거에 기술은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술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이 되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발전 방향과 관련된 결정은 더 이상 시장, 전문가, 관료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기술의 문제는 정치적”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정치 술수나 협잡으로 결정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시민의 목소리가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통해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 내용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술의 정치가 실현되려면 시민들이 기술이 초래할 여러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일정한 지식도 있어야 한다. 이를 ‘기술 문해력’(technology literacy)이라 부른다. 글자를 읽는 것처럼 기술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틀라스와 관련된 논의가 진보를 추구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의 다툼으로 간단히 소급될 수 없음을 간파하는 것이 바로 그 능력이다. 이는 우리 이웃의 삶의 문제고, 우리가 함께 살 미래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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