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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경험을 통해 변화한다. 텍스트로 이해한 환경 문제와,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주워 보며 느끼는 감각은 전혀 다른 차원의 앎이다. 손의 감각, 바닷바람의 짠 내, 친구와 나누는 대화, 이 모든 것이 교육이다. 전자는 설명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삶의 태도를 바꾼다. 교육이 단순한 이해를 넘어 삶의 변화를 지향한다면, 우리는 학생들을 현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본문 중)
현승호(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교사들이 화난 이유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에 학교들이 체험학습을 기피하는 현상을 두고 “구더기 생길까 싶어서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된다”라는 발언을 했다.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두려워서 교육 활동 자체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의도였지만, 이 발언은 일선 교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왜 그랬을까?

2022년 11월 속초 현장체험학습 중 6학년 학생이 전세 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25년 2월 1심에서 담임교사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의 판결이 내려지며 교직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교육공무원법상 교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당연퇴직 처리되기 때문이다.
사고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예측 불가능한 사고로 인해 교사가 직을 잃게 되었다. 이 판결은 교사들에게 깊은 두려움을 남겼다. 교사라면 누구나 ‘나 역시 언제든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학교가 현장체험학습을 꺼리는 움직임을 보이자,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이를 두고 “직무 유기 아니냐”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는 오히려 교사들의 공분을 사며 갈등을 증폭시켰고,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2025년 11월 2심에서도 금고 6개월이 선고되었다. 다행히 집행유예가 아닌 선고유예로 형이 낮춰져 교직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유죄 판단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교사들의 위축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판결문을 보며 교사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교사의 주의 의무란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몇 번 뒤를 돌아보면 무죄이고, 몇 번이 부족하면 유죄가 되는가.
이 판결 이후 2026학년도 현장체험학습 운영 계획을 세우는 학교 현장은 극도로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서이초 사태1) 이후 이어진 악성 민원으로 이미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화제가 되었다.
우리 학교 드디어 대혁명을 이뤄 냈네. 수학여행, 수련회, 체육대회, 학교 축제 전부 다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함. 사유는 학생 안전사고 발생 우려, 학부모 민원 및 소송 우려로, 학운위 학부모 측 반대에도 민원, 소송 발생 시 학운위 참석자 전원이 연대 책임질 거 아니면 반대하지 말라는 논리로 통과시켰다고 함. 이제 졸업 앨범도 계약 해지하고 없앨 거라는데 이것도 통과 가능할 것 같다고 함.
이러한 분위기는 일부 학교에만 그치지 않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인성 수련 등을 교육과정에서 제외하는 현상이 빠르게 확산했다.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이른바 ‘구더기와 장독’ 발언은 교사들의 공분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마치 교사들을 책임을 회피하려는 집단으로 바라보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해결 방안
대통령 발언 이후 교육부에서 긴급하게 전화가 왔다. 교육부 차관과 교원단체 대표들의 면담을 잡기 위해서다. 교육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교육부가 다양한 해결 방안을 들고 왔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교사운동은 차관과의 면담에서 교육부에서 제시한 방안 외에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공무상 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국가나 기관이 지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미 지난해 학교안전법이 개정되어 “정당한 안전 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한다”라는 조항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정당한 안전 조치 의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학교는 오히려 절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장체험학습 한 번을 가기 위해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고, 실제 안전보다 ‘책임 회피’를 위한 서류가 넘쳐난다. 교사들은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다. 결국 학교안전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독일의 헌법은 공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되는 소송이 일어났을 때, 처음부터 국가나 기관이 그 책임을 지고 중대한 과실인 경우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기본법 제34조 (공무상 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진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삼자에 대해 부담하는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 그 책임은 원칙적으로 그가 소속된 국가 또는 법인(공공단체)이 부담한다. 다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구상권 행사가 가능하다. 손해배상 청구 및 구상권 행사에 대해서는 일반 법원의 재판 절차가 배제되어서는 아니 된다.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송 비용’이 아니다. 공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소송 자체를 소속 기관이 책임지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확인될 때만 구상권을 행사한다. 이 구조가 교사를 보호하면서도 책임을 묻는 균형을 만든다.
둘째, 자동차 보험과 같이 학교안전공제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학교안전공제회는 사고 이후 보상 중심의 소극적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현장체험학습과 같은 상황에서는 자동차 보험 수준의 적극적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사고 발생 시 공제회 직원이 현장에 즉시 출동해 상황을 수습하고, 학부모와 소통하며 보상 절차를 안내해야 한다.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불필요한 갈등과 소송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지금은 이 모든 부담을 교사가 감당하고 있다. 사고로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교사가 학부모 대응까지 맡는 구조는 비현실적이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개인이 직접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처럼, 학교 역시 전문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안전 요원을 늘리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학생 1인당 1명의 안전 요원을 배치하지 않는 이상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전 통제보다 사후 대응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셋째, 대화를 통해 교육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들이 현장체험학습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지 소송 때문만이 아니다.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도 큰 이유다. 학교 안에는 교사의 통제를 잘 따르지 않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더욱 흥분하고 ‘사고 칠’ 확률이 높아진다. 과거에는 일정 수준의 지도와 통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 역시 유난히 힘들었던 6학년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가면서 벌점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다. 벌점이 누적되면 부모를 호출해 귀가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학부모 동의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방식의 지도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내 아이만 불이익을 받을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논의하고 생활지도 원칙과 책임의 범위를 공동으로 설정해야 한다. 함께 만든 규칙은 일방적으로 주어진 규칙보다 훨씬 잘 지켜진다. 교육 3주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 법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워졌다.
근본 원인: 개인주의 확산 속에 결여된 공동체 의식
더 큰 문제는 교육 활동 전반의 위축이다. 현장체험학습뿐 아니라 학교 운동장 활동과 학급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던 창의적 체험 활동까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마친 뒤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요즘 수련회 한 번 가려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날짜는 왜 그렇게 정했느냐, 장소는 왜 그렇게 머냐, 누구와 방을 쓰게 해 달라, 특정 활동은 빼 달라 등의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집, 학원, 대학, 군대에 이르기까지, 이는 사회 전반의 흐름임을 볼 수 있다.
원인은 무엇일까? 소득 수준의 향상과 기술의 발전은 개인주의를 심화했다. 대가족 시대의 아이들과 달리, 이제 우리 자녀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따로 본다. 소득 수준이 높지 않고 스마트폰은커녕 개인용 컴퓨터도 흔치 않던 시절에는 개인의 욕구는 절제되어야 하거나 때로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 안에서 부모의 욕구보다 자녀의 욕구가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인 것이다. 자기 욕구의 절제를 강요받으면서 컸던 부모 세대는 자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어 한다. 학교, 교회, 학원처럼 공동생활을 하는 곳에서조차 자녀의 욕구가 충족되기를 바란다. 자녀들 역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교사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빠른 길임을 학습했다.
문제는 이러한 ‘개인주의’ 자체가 아니라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욕구도 존중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의 결여다. 우리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개인주의를 흔히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기주의 세태는 소득 격차가 크고 경쟁적인 사회일수록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학교라는 공간만큼이라도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함께 따르지 않는다면, 수학여행을 가서 찍은 단체 사진에서 ‘우리 아이는 왜 구석에 있느냐’는 민원이 나오는 분위기 속에서는, 어떤 정책과 법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내가 아는 경기도의 한 사립학교는 매달 정례적으로 학부모 의무 교육을 실시한다. 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학부모 교육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길러, 학교에 자녀를 보낸 것만으로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보지 않고 함께 책임지도록 하고 있었다. 또한 자발적인 학부모 모임을 지원해 선배 학부모가 후배 학부모에게 공동체 의식을 전수하기까지 한다. 이 학교는 일반 공립학교보다 현장체험학습을 훨씬 자주, 길게 가고 있었고, 그래서 크고 작은 사고도 잦다. 그러나 현장체험학습에서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고소‧고발은커녕 학교에서 난동을 부리는 학부모조차 없다. 그 학생의 사고를 모두가 자기 아이처럼 걱정하며 대응하기 때문이다.
AI 시대, 현장체험학습의 쓸모
그렇다면 이 개인주의 시대에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은 꼭 가야만 할까? 일부 교원단체는 현장체험학습 무용론을 꺼내 들기도 한다. 이미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주말마다 여행지와 관광지를 다니고 있는데, 굳이 학교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맞다면, 굳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법령 검토를 지시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이것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라면, 공무원 집단의 특성상 안 하는 쪽으로 일반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게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법까지 고쳐가며 ‘장독대’를 지키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현장체험학습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 단순히 ‘개근 거지’2)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학생들의 가정 형편에 차이가 있는데, 그런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모두가 현장체험학습을 가야 한다는 이유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건 복지의 영역이지 교육의 영역이 아니다. 복지 차원을 넘어 교육적 차원에서 생각하더라도, 현장체험학습과 같은 교육은 오늘날처럼 AI 교육이 강조되면 될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학습 정보를 처리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인간은 정보를 통해 성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변화한다. 텍스트로 이해한 환경 문제와,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주워 보며 느끼는 감각은 전혀 다른 차원의 앎이다. 손의 감각, 바닷바람의 짠 내, 친구와 나누는 대화, 이 모든 것이 교육이다. 전자는 설명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삶의 태도를 바꾼다. 교육이 단순한 이해를 넘어 삶의 변화를 지향한다면, 우리는 학생들을 현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1인 가정과 초핵가족 시대에 학교는 앞에서 언급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학생들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존재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러나 공감은 설명으로 가르칠 수 없다. 노동을 경험하고, 흙을 직접 만져보고, 땀 흘리는 친구와 힘든 길을 함께 걸으며, 그 속에서 교감과 공감을 이룬다. 방문한 곳에서 지역 사회의 다양한 삶을 교과와 연계하여 직접 마주할 때, 학생들은 비로소 ‘타인의 경험’을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는 어떤 AI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교육의 영역이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현장체험학습은 때로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준비에 많은 시간이 들고, 안전에 대한 부담도 크다. 그러나 교육은 본래 비효율을 감수하는 일이다. 예측되지 않는 상황,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험, 그 속에서 만나는 우연이야말로 학생을 성장시킨다. AI가 제거해 버린 ‘우연성’을 교육은 의도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이것이 법을 바꾸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장독대다. AI 시대일수록 이 장독대는 교사 혼자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지켜내야 한다.
1) 2023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담임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학교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전국 교사들이 매주 토요일 대규모 집회를 열어 교권 회복을 요구했고, 그 결과 ‘교권 4법’이 개정되었다.
2) 가족 여행 등의 이유로 등교를 하지 않고 개별 현장체험학습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해서 학교에 ‘개근’하는 학생을 비하하는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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