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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통계청의 한 자료를 마주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합니까?” 그 물음에 대한 부동의 1위 응답이 “기업이 채용할 때 출신 대학을 중요하게 보니까”였던 것이다. 그 한 줄의 응답 앞에서, 나는 입시 문제의 출구가 입시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표직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학벌 중심 채용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무렵이다. 그리고 6년 후, 마침내 때가 차서, 2025년 9월 10일, “출신 학교 채용 차별 방지법” 법안이 발의되었다. (본문 중)
송인수1)
여러 해 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 시절에 한 회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사교육 과열 지구로 유명한 M 지역에 이사하고 싶어 아파트를 보러 갔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이 집, 저 집, 저 집이 비어 있어요” 하며 가리키더라는 것이다. M 지역에 그렇게 빈 집이 많을 리 없으니 의아한 마음에 “왜들 비었어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놀라웠다고 했다. “사연이 있는 집들이에요. 입시 경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아이들의 사연….”
나는 30년 이상 아이들을 위해 일해 왔다. 13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고, 좋은교사운동을 위해 학교를 떠나 5년간 일했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12년을 보냈으며, 지금은 교육의봄에서 학벌 중심의 채용 관행을 바꾸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었음에도, 입시 경쟁과 사교육의 부담은 도리어 깊어져만 갔다. 그 문제를 풀고자 12년을 달려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통계청의 한 자료를 마주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합니까?” 그 물음에 대한 부동의 1위 응답이 “기업이 채용할 때 출신 대학을 중요하게 보니까”였던 것이다. 그 한 줄의 응답 앞에서, 나는 입시 문제의 출구가 입시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표직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학벌 중심 채용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무렵이다. 그리고 6년 후, 마침내 때가 차서, 2025년 9월 10일, “출신 학교 채용 차별 방지법” 법안이 발의되었다.

본 이미지는 AI(Chat GPT)로 생성되었습니다.
이미 30년 전부터 불법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법을 만든다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그런 문제까지 법으로 규제하느냐?”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우리 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채용 과정에서 출신 학교와 학력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해 왔다.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고용정책 기본법” 제7조 제1항이 개정되어 출신 학교 차별이 금지되었고, 2014년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학력 차별까지 금지 조항에 포함되었다. 보수 정부와 보수 정당의 시대에 이루어진 개정이니, 진보적 주장이라 못 박을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 법이 실효성을 갖지 못했다는 데 있다. 차별을 금지한다는 선언만 있을 뿐, 위반 시 처벌할 조항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법은 있으되 지켜지지 않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이 되어 30년 세월을 흘려보냈다. 교육의봄이 2024년 국내 매출 1,000대 기업의 입사 지원서를 조사한 결과, 채용 공고가 게시된 169개 기업 가운데 무려 99.3%가 여전히 출신 학교 스펙란을 두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수치가 10년 전 2014년의 93.7%보다 오히려 5.6%포인트 늘었다는 사실이다. 법의 선언은 무력했고, 채용 현장의 학벌 중심 관행은 도리어 깊어졌다.
이번 법안의 취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4조의 3에 “구직자 본인의 출신 학교와 학력(學歷)” 항목을 추가하여, 채용 과정에서 이러한 정보의 수집 자체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위반 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차별 금지의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차별의 출발점인 정보 수집 자체를 차단하자는 것, 그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오해들에 대한 답변
오해 1: ‘출신 학교는 그래도 능력의 증거가 아닌가?’
이 주장이 옳다면, 한 가지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어떤 기업도 채용 공고에서 ‘우리는 ○○대 출신을 우대합니다’라고 대놓고 명시하지 않는가? 출신 학교가 정녕 능력의 지표라면, “SKY대 출신은 50% 가산점, 인서울 대학들은 30% 가산점, 지방 국립대는 10% 감점, 그 외 학교에는 20% 감점”와 같은 ‘출신 학교 등급제’를 운영해도 무방할 것이다. 능력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 땅에 그렇게 대놓고 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불법임을 기업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고용정책 기본법” 제7조 제1항이 이를 명백히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기업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기에 이력서의 출신 학교란을 통해 그 정보를 은밀히 활용해 온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출신 학교는 ‘능력’이 아니다. 본인의 노력으로 획득한 ‘후천적 배경’일 뿐이다. 명문대에 들어가기까지 그 청년이 기울인 노력 자체는 가치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출신 학교’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직무 역량’의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오해 2: 명문대 출신에게는 역차별이 아닌가?
결론부터 분명히 말하자면, 이 법은 결코 명문대 출신에게 역차별하지 않는다. 학교 이름에 가점을 부여하지 않을 뿐, 결단코 감점을 매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문대 청년들이 그 과정에서 길러 온 학습 능력과 성실성, 문제 해결력 같은 역량이 직업 세계에서 요구되는 ‘일 잘하는 능력’이라면, 채용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 전공과 학점, 자격증과 인턴 경험, 포트폴리오와 필기시험, 면접과 직무 적성 검사 등 채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평가 도구는 차고 넘친다. 금지되는 것은 오직 학교의 이름표 하나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이름표 하나에 너무도 깊이 의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명문대를 나왔으되 직무 역량은 부족한 사람이 학교 이름만으로 합격하는 경우가 없다 할 수 없고, 비명문대를 나왔지만 역량이 뛰어난 청년이 서류 단계에서 좌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법이 지향하는 바는 가점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청년이 자신이 실제로 갖춘 역량으로 공정하게 겨루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명문대 출신이 학벌이라는 이름표 뒤에 숨지 않고도 자기 실력을 입증할 자신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 될 것인가.
오해 3: 기업의 채용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채용의 자유에 합리적 제한을 두어 왔다. 성별과 나이, 장애와 종교를 이유로 한 채용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용모와 키, 체중,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재산 등은 채용 과정에서 수집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기업의 채용 자율권은 무제한의 권리가 아니며,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행위는 자율의 행사가 아니라 차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오히려 학벌 중심 채용은 기업에도 적지 않은 손해를 끼쳐 왔다. 신입 직원의 1년 내 퇴사하는 사유 1위가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였고, 한 명의 채용 미스매칭으로 기업이 입는 손실이 평균 2,454만 원에 이른다. 학벌이라는 손쉬운 필터에 의존하는 사이, 정작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다. 교육의봄이 지난 4년간 출신 학교를 보지 않고 역량 중심으로 채용하는 기업 50곳을 직접 취재한 결과, 합격자들의 출신 학교 다양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직무 적응도와 몰입도가 향상되었으며, 무엇보다 퇴사율이 현저히 낮아지고 학벌 파벌에 의한 사내 정치 또한 약해졌다. 일반 기업의 신입사원 1년 내 조기 퇴사율이 28%에 이르는 데 반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경우 1%에 머물렀다. 학벌을 보지 않고 뽑았더니, 사람들이 오히려 더 오래 다닌 것이다. 출신 학교라는 손쉬운 필터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사실은 잘못된 사람을 뽑고 있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해외 기업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구글은 자사 직원 데이터를 수년간 정밀 분석한 결과, SAT 점수, 전공, 학점, 출신 학교의 명성이 직무 성과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출신 학교 등에 의존하는 채용 관행을 버렸다. 2018년 한양대 연구팀의 분석에서도,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으로 뽑힌 신입사원들의 직무 능력은 종전 방식으로 채용된 이들과 견주어 떨어지지 않았다. 출신 학교를 가린 채 사람을 뽑았는데도 업무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는 사실은, 역으로 출신 학교가 애초에 업무 능력의 지표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 가정에 던지는 한 가지 질문
대한민국 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학벌이 우상이 되어 버린 그릇된 세계관이다. 학벌이 좋아야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자녀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리라는 공포가, 부모와 자녀를 생존 경쟁의 외길로 내몰고 있다. 그로 말미암은 병리적 현상은 굳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공부만 잘하면 거의 모든 것이 면제되는 곳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품행도 방정한 것으로 자동 인정받는다. 여러 해 전, 서울대 인문대 남학생들의 단체 채팅방 내용이 폭로된 적이 있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성추행적 발언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명문대생이 저럴 수 있는가” 하고 개탄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키운 결과다.
20년이 넘는 주일학교 교사 경험을 돌아보건대, 한국 교회 또한 학벌이라는 우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들 알고 있을 테니, 그 근거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평일에는 부모가 자녀를 세속의 가치에 무방비로 노출시킨 후, 주일 한 번의 부실하고도 짧은 교회 교육으로 무엇이 바뀔 수는 없다. 그렇게 부모의 요구에 떠밀려 교회 생활을 이어가던 아이들이, 열에 아홉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을 하고야 만다. 이미 다 큰 자식의 선택 앞에서 부모가 더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이 법이 개정되어야, 학벌을 따기 위한 입시 경쟁과 그 입시에 눌려 있던 교육의 모습도 바뀌어 갈 것이다. 그래야 교회 교육도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많이 늦었지만.
1) 13년간 공립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2003년 좋은교사운동으로 부르심을 받아 학교를 떠났다. 이후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창립하여 12년간 활동했다. 2020년부터는 재단법인 교육의봄 공동 대표로 섬기고 있다. 현재 31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출신 학교 채용 차별 방지법 추진 국민운동’ 운영위원장이며, 기윤실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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