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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신앙이나 교회와 관련된 나의 상태와 생각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난감해하거나, 나를 설득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 덕분에 이 모임은 내게 ‘안전한 관계’로 느껴진다. … 이 모임은 비록 전통적인 의미의 교회라고 부를 수는 없을지라도, 내게는 분명 느슨하지만 진정성 있는 신앙 공동체처럼 느껴진다. (본문 중)

 

고키리(가명)

 

“종교가 있으세요?”라는 단순한 질문 앞에서 나는 몇 초간 머뭇거리곤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탈기독교를 선언한 것도 아니다. 교회 안과 밖, 그 경계를 서성이는 지금의 상태를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요즘은 보통 이렇게 답하곤 한다. “교회는 안 다니지만, 신앙은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왜 교회를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막막해졌다. 이야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횡설수설하게 되는 것 같았고, 상대가 기대하는 명쾌한 답을 끝내 주지 못한 듯한 찝찝함이 남았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곤 했다. 사실 나 스스로 명확한 언어로 정리된 끝에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교회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짙어지고,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해지면서 도망치듯 발길을 끊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메일함에서 ‘교회 가기 싫은 사람들의 순모임’(약칭 ‘교가싫순’)이라는 홍보물을 보게 되었다. 꾸밈없이 직관적인 이름이 이상하게 웃기면서도 눈길을 끌었다.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는 추세라는데, 다들 어떤 이유로 교회를 떠났으며, 떠났음에도 무엇이 그들을 망설이게 하여 여전히 ‘성도’라는 정체성을 붙잡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이 모임이라면, 억지로 교회에 가야 한다고 설득하는 사람 없이 ‘진짜 교회의 필요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임 초반에는 각자 교회를 떠나게 된 사연들을 나누었다. 사람들은 흔히 교회를 떠난 데에는 어떤 대단하고 특정한 계기가 있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교가싫순’ 첫 시즌을 통해 나눈 우리의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겪은 크고 작은 경험들 위에 복잡한 고민과 감정이 누적되고 얽힌 결과물이었다. 켜켜이 쌓인 각자의 이유를 펼쳐놓고 나니, 그제야 내 사유 역시 왜 그토록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를 멀리하게 된 이유를 충분히 쏟아낸 후, 우리는 ‘교회는 과연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평소 궁금했던 여러 교회를 방문해 보기도 하고, 누군가를 모임에 초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함께 책을 읽으며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와 기본적인 기능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교회의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고, 신앙에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색깔과 온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게 예상치 못한 위로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며, 나는 은연중에 봉사 여부나 예배 참석 횟수, 개인 경건 시간, 혹은 간증의 ‘뜨거움’ 같은 것들로 신앙의 깊이가 증명된다고 여겨왔다. 나는 수련회의 후끈한 열기 속에서 모두가 통성기도를 할 때도 홀로 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교회를 떠난 후로는 신앙의 유무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처럼 여겨지던 ‘주일 성수’마저 하지 않으니, 스스로도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살아내신 삶의 이야기와, 그를 닮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울컥하게 되고, 특히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기억하는 연대 예배나 추모 기도회 같은 자리에는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이런 마음들을 스스로도 모순처럼 느꼈다. 교회는 떠났는데 왜 이런 장면들 앞에서는 계속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 모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이런 감정들 역시 내 신앙의 한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즌제로 운영되고,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이 느슨한 형태의 모임이 과연 교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구성원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를 것 같다. 보통 교회라고 하면 찬양과 기도, 예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모임에서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곳은 신앙과 신앙 공동체의 본질에 대해 그 어느 곳보다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신앙이나 교회와 관련된 나의 상태와 생각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난감해하거나, 나를 설득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 덕분에 이 모임은 내게 ‘안전한 관계’로 느껴진다.

 

‘교가싫순’ 모임을 통해 교회와 신앙, 그리고 그것들과 나의 관계를 가장 솔직한 마음으로 돌아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모임은 비록 전통적인 의미의 교회라고 부를 수는 없을지라도, 내게는 분명 느슨하지만 진정성 있는 신앙 공동체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이 모임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제도권 교회를 대체할 만한 완벽한 공동체가 되겠다는 거창한 지향점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경계선 어딘가에 잠시 혹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완전히 떠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남아 있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한 느슨하지만 지속 가능한 신앙 공동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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