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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가 남긴 것이 없다는 탄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정치는 투표소 안에서의 기표하는 행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야훼여, 당신께서 억울한 자에게 권리 찾아 주시고 가난한 자에게 정의 돌려주심을 나는 압니다”(시편 140:12, 공동번역). 이 믿음의 고백을 읊조리고, 작은 소리로 느린 움직임으로 권리를 찾고 정의를 확장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며, 신앙과 민주주의가 만나는 곳이다. (본문 중)
박제민(녹색정치연구소 공동대표)
선거가 끝났다. 당선자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고, 언론은 거대 양당의 의석수 변화를 계산하며 권력 지형의 재편을 점치기에 바쁘다. 그러나 정작 주권자인 시민들이 다시 마주한 현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냉정하게 되짚어 본다면, 이번 선거가 남긴 것이 없다. 별로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불리는(또는 그렇게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선거가 끝났음에도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이나 비전은 찾아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끼리 정권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질적인 변화나 다양성의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양당의 주장과 논리만으로 대표할 수 없는 수많은 계층과 다채로운 목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투표 결과를 의석(권력)으로 전환하는 프로세스인 선거 제도가 이런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 무투표 당선자의 급증은 정당 독점 체제가 낳은 기형적인 결과물이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48명에 불과했던 무투표 당선자 수는 매회 증가해, 이번 2026년 제9회 지방선거에서는 513명으로 급증했다. 투표조차 거치지 않고 주권자의 선택권을 박탈한 채 권력을 쥐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지방 자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다.

‘선거 관리’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은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신뢰마저 흔들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현대 민주주의 공동체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치명적인 오점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당락이나 최종 결과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고 변명할지 모르나, ‘민주 불가침’의 영역인 시민의 참정권이 훼손당한 엄중한 사태를 직시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단 한 명의 유권자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투표하지 못했다면 민주주의는 실패한 것이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장애인이 투표하고 싶어도 못 했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한다.)
선거의 부실한 관리가 우리 사회의 폐단인 부정 선거 음모론 세력에게 민주주의를 뒤흔들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무척 안타깝다. 확증 편향에 갇혀 이성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선관위의 무능은 훌륭한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들 중 그리스도인이 상당수 끼어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맹신과 독단은 교회의 신앙을 훼손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선거가 지녀야 할 본연의 의미가 실종되었다는 점도 안타깝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선거 기간 내내 이러한 본질적인 의제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언론은 정책의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유력 대권 주자의 행보와 지지율 추이만을 중계하는 경마장식 보도에 열을 올렸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진영 논리를 자극해 혐오와 배제를 양산하고 있다.
독점, 부실, 실종으로 점철된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무엇을 희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의 장군 계백(배우 박중훈)은 죽음과 패배가 눈앞에 다가오자, 부하인 ‘거시기’(배우 이문식)를 살려 내보내며 “나는 자네를 남겨야겠다”라고 말한다. 모두가 전멸하는 비극 속에서도 역사와 희망의 씨앗만큼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 간절함의 표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했던 사람은 서울시 의원으로 종로구에 출마했던 조상지 후보다. 그는 탈시설장애인당 소속임을 표방했지만, 실제 등록하지 않은 정당이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결과는 831표, 2.13퍼센트를 얻은 낙선이었다. 그러나 이 작아 보이는 숫자는 단순한 낙선의 기록이 아니라, 시설에 갇혀 지내며 스스로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고 길들여졌던 한 인간이, 당당히 정치의 주체로 나선 존엄의 흔적이다.
조상지 후보는 낙선 인사를 통해, 선거의 빠른 속도와 자신의 느린 몸 사이에서 고뇌하면서도, 정치가 결코 강자가 약자를 대리해 주는 시혜적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를 통해 “시설과 쪽방, 장애와 가난, 노동과 탈시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과 말을 천천히 꺼내는 사람이 만났다”라는 고백을 보며, 정치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경탄하게 되었다.
6.3 지방선거가 남긴 것이 없다는 탄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정치는 투표소 안에서의 기표하는 행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야훼여, 당신께서 억울한 자에게 권리 찾아 주시고 가난한 자에게 정의 돌려주심을 나는 압니다”(시편 140:12, 공동번역). 이 믿음의 고백을 읊조리고, 작은 소리로 느린 움직임으로 권리를 찾고 정의를 확장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며, 신앙과 민주주의가 만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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