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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공히 전쟁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다양하고 명백하다. 전쟁에 따른 집단 트라우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다. 전쟁의 상처는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기억으로 반복 재생산한다. 그러므로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오래전 그들의 전쟁’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전쟁’이자, ‘나의 전쟁’인 것이다. (본문 중)

 

전순영(숭실평화통일연구원)

 

한반도 전역을 피로 물들인 비극적 전쟁이 끝난 지 73년이 되어 간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이미 은퇴 연령대로 접어들었고, 직접적 전쟁 체험 세대는 갈수록 급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강고한 분단과 적대적 대립으로 전쟁이 내재화된 한반도의 현실에서, 행위로서의 전쟁은 종료되었을지라도 상태로서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무인기와 쓰레기 풍선이 오가는가 하면, 한때 개성 공단을 분주히 오가던 차량으로 붐비던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는 전격 폭파되었다.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한 북한은 아예 헌법의 영토 조항을 개정하여 분리된 두 국가 체제를 제도화했다. 한국 사회에서 전쟁과 공산화의 공포는 지금까지도 망령처럼 배회하면서 정치적 집단극화의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한 공히 전쟁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다양하고 명백하다. 전쟁에 따른 집단 트라우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다. 전쟁의 상처는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기억으로 반복 재생산한다. 그러므로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오래전 그들의 전쟁’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전쟁’이자, ‘나의 전쟁’인 것이다.

 

 

남과 북의 전쟁 기억

 

식민 지배와 분단, 이산, 전쟁, 빈곤, 독재의 근대사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역사적 트라우마를 이기기에 결코 충분한 세월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적대적 분단 구조 속에서 압축적으로, 때로 국가 폭력을 수반하여 진행된 근대화와 민주화는 심각한 이념 및 계층 갈등의 후유증을 남겼다. 보수파를 결집시키는 정서적 기제인 ‘안보 불안감’은 전쟁 체험 세대의 트라우마에서 파생된 것이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병적 증상으로 나타난다. 자신과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세력을 극좌와 극우로 몰아붙이는 집단극화 현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전형적인 과각성 증상과 유사하다. 심각한 이념 갈등의 기저에는 북한과 공산주의를 악으로 간주하게 하는 한국 전쟁의 집단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떠할까? 전쟁의 기억은 북한 체제의 기형적 구조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북한 인민들은 6·25를 승전으로 교육받아 왔고, 정전 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은 ‘조국 해방 전쟁 승리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은 김일성의 탁월한 영도력이기 때문에, 향후 미제와의 전쟁이 재발할 경우 승리하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혁명적 가계를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정권의 세습 논리이다. 북한의 핵 개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 기간 3년 내내 공포 그 자체였던 미군의 공습을 경험한 북한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 기제로 자체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러므로 북한 정권이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미국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 믿는 안보 논리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수십 년째 북한 인민의 생존을 위협해 온 것은 전쟁이 아니라 식량 부족과 이로 인한 굶주림이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전쟁 공포를 느끼는 주체는 인민이 아니라 최고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와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폭사를 목도하면서 증폭되었을 공포는 2026년 5월 헌법에 핵 무력권을 명문화하여 ‘핵 포기 불가’를 선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제에 맞서 승리한 전쟁’이라는 단일한 공식 기억만이 존재하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전쟁과 학살의 경험이 개인들의 기억으로 재생되면서 대항 기억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지배 기억과 대항 기억은 계속 충돌하고 있다. 임의적이고 주관적이며 담지자의 상황에 맞춰서 가공되는 기억의 특성은 공동체적 상생의 미래로 전진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고, 아니면 과거의 고통을 되새기고 지속적으로 트라우마를 촉발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선택은 어떤 정체성과 미래를 지향하느냐에 달려 있다.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

 

한국 전쟁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이라면, 무력에 의한 통일 추구의 희생과 대가가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그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수세대에 걸쳐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통일은 평화를 목적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추구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한국 전쟁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가?

 

첫째, 한국 전쟁은 이념 전쟁만이 아니었다. 이 전쟁의 동기는 ‘민족 국가 형성’에 있었다. 공산주의는 그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 그 시대 상황과 국제적 흐름에서 한반도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희생자 규모가 컸던 것을 공산주의자의 잔인성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누적된 내부 모순이 폭발하면서 공동체 단위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의 상호 보복이 이어진 것이 학살 피해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둘째, 한국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남긴 대재난이었다. 피해 규모가 더 컸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은 전쟁을 일으킨 응분의 대가를 치른 것이며, 남북 양쪽 다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 오랜 세월 독재 세습 정권 아래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북한 사람들의 고통은 훨씬 더 배가된다.

 

셋째, 비록 지도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촉발된 전쟁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같은 동포요 한 겨레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갈수록 민족주의적 통일 담론이 약화되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의 당위성이 직관적으로 설득되는 것은 여전히 한민족이라는 의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이탈 주민을 만난 이후로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통일이 인간의 얼굴로 다가올 때, 통일은 비로소 개인적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넷째, 한국 전쟁이 비참한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 질서가 개편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우위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식민 지배를 겪은 한반도에서 독립적 정치 체제를 갖춘 두 개의 국가가 나왔고, 그중 하나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다섯째, 한국 전쟁의 비극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참전 군인과 경찰, 외국인, 포로, 전쟁미망인, 전쟁고아, 피학살자 유족, 비정규군과 북파 공작원, 재일 조선인, 기독교인을 비롯한 각 집단의 피해 양상도 다양했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는 방식의 기억은 누구도 해치지 않으면서 평화를 염원하게 한다.

 

한국 전쟁은 한반도의 거대한 트라우마였고 남과 북은 여전히 그 기억에 매몰되어 생존 경쟁을 위해 상대를 비인간화하고 이로써 자신이 비인간화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념적 선과 악의 이분법에 의한 타자의 비인간화와 이로써 그 자신이 비인간화되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스스로 생존 경쟁의 동물적 차원으로 격하되는 환경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근원적인 사회악이다. 한국 전쟁의 재기억은 이러한 근원적 사회악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목적은 보편 가치에의 재연결 과정을 통한 한반도 트라우마의 치유이며, 그 핵심에 용서와 화해가 있다. 궁극적으로 남과 북의 기억은 자유, 인권, 평화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국 전쟁의 기억은 평화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전순영. 2025. 『한반도의 기억』. 파주: 한울아카데미.

감희. 2021. 『북한 사람 이해하기』. 파주: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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