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음모론에 빌미 내준 투표용지 부족 사태 “해법은 연대와 배제”

 

기윤실 긴급 토론회
“일상적으로 침해받은 장애인 참정권 먼저 돌아봐야”
“부정선거 음모론, 공론장 퇴출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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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벌어진 ‘재선거 시위’를 놓고 한국 민주주의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기윤실 유튜브 갈무리

 

[뉴스앤조이-최승현 편집국장]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시위가 3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신동식·정병오·이상민)이 6월 25일 서울 성동구 성락성결교회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한국 민주주의 과제’라는 주제로 모인 자리에서, 발제자들은 이번 일이 부정선거 음모론의 빌미로 악용되는 흐름을 경계했다.

초창기 ‘재선거’만 외치던 시위대는 점차 구호를 확장시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라는 구호를 이어 가고 있다. 참정권 훼손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은 초창기와 달리,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도하는 시위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기윤실 공동대표 이상민 변호사(법무법인 에셀)는 “선거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선관위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쏘시개를 제공했다”며 “대대적인 선관위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이번 사태로 한국 민주주의가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제민 대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정치적 평등'이라고 규정하고, 그 두 축이 참정권과 대표성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이번 사태에서 그 두 축이 침해됐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기윤실 유튜브 갈무리

박제민 대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정치적 평등’이라고 규정하고, 그 두 축이 참정권과 대표성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이번 사태에서 그 두 축이 침해됐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기윤실 유튜브 갈무리

 

비장애인의 분노 뒤에 가려진 장애인 참정권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제민 대표(녹색정치연구소)는 ‘6·3 지방선거가 남긴 것, 나의 권리에서 우리의 권리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박 대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정치적 평등’이 이번 사태로 한꺼번에 흔들렸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평등은 크게 참정권과 대표성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는데, 박 대표는 이번 사태를 ‘민주 불가침’ 영역인 1인 1표가 훼손된 참정권 침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전국 91곳 투표소에서 7000여 장 이상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며 선관위와 일부 정치권이 “단순한 행정 실수이고 당락을 바꿀 규모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것을 “비겁한 변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했다면 민주주의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시위대 주장처럼 광범위한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 없을뿐더러, 이번 사태를 통해 본질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은 ‘훼손당한 참정권’ 그 자체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선거 때마다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이들이 시위대 뒤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는 투표소, 엘리베이터 없는 장소, 비좁은 기표 공간을 물리적 장벽으로 들면서 장애인 유권자는 선거 때마다 일상적으로 배제돼 왔다고 말했다. 또한 정보 격차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참정권 박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로 가득한 공약집이 발달장애인의 투표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가 규정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참정권 보장 의무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비장애인이 겪은 사태는 엄중히 보면서 장애인이 수십 년간 겪어 온 구조적 배제에는 침묵해 온 현실이 낯뜨겁다”고 말했다.

정치적 평등의 다른 축인 대표성은 오랜 기간 훼손돼 왔다고 지적했다. 표심이 권력에 그대로 반영되려면 선거제도 자체가 공정해야 하지만, 한국의 선거제도는 그렇제 않다는 것이다. 박제민 대표는 한 표라도 많이 얻으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가 막대한 사표를 양산하고,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이후 무투표 당선자가 꾸준히 늘어 2022년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6·3 지방선거가 남긴 것은 없다”면서, 양당이 권력을 주고받았을 뿐 시민이 체감하는 삶의 변화는 없었다고 짚었다.

 

천윤석 변호사는 음모론을 논의의 장에 계속 올릴수록, '부실하고 무능했던 선관위'가 '부정을 저지르는 선관위'로 프레임이 바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음모론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음모론을 배격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기윤실 유튜브 갈무리

천윤석 변호사는 음모론을 논의의 장에 계속 올릴수록, ‘부실하고 무능했던 선관위’가 ‘부정을 저지르는 선관위’로 프레임이 바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음모론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음모론을 배격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기윤실 유튜브 갈무리

‘부실하고 무능한’ 선관위 사태

“부정선거로 프레임 전환하려는 시도 막아야”

 

기윤실 모두를위한정치운동 전문위원 천윤석 변호사(종합법률사무소 이정)는 ‘부정선거는 생각하지 마, 투표용지 부족 사건과 프레이밍의 정치학’을 주제로 발표했다. 천 변호사는 조지 레이코프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인용해, 잘못된 프레임은 반박할수록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한 세 가지 사례로 1992년 초원복집 사건, 2012년 국정원 직원 댓글 공작 사건,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들었다.

세 사건은 모두 프레임이 뒤집힌 사례로 꼽힌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지역감정을 조장했다고 비판받은 초원복집 사건은 상대방의 ‘도청’을 문제 삼는 프레임으로 전환됐고, 국정원 직원 댓글 조작 사건은 민주당 의원들이 여성 직원을 불법 감금했다는 국면으로 뒤바뀌었다. 국정원이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었다고 지적받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사건은 ‘박원순 휘하에 간첩이 있다’는 프레임이 작동했다.

천 변호사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 역시 ‘프레임 전환’ 관점에서 우려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중대한 행정 착오’이고 선관위의 부실과 무능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것이라면서, 이는 “고의로 부정선거를 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위대가 “공정을 말하지만 실은 정의를 말하고 있다”고 했다. 공정을 요구하는 사람은 체제의 정당성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려는 반면,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체제 자체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천 변호사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분들이 ‘공정 선거’를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의를 말하고 있다”며 “체제 자체를 흔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1988년 13대 총선부터 2024년 22대 총선까지의 선거 결과를 분석해, 선거 국면이 보수 정당에서 진보 정당으로 향하고 있다며 보수 진영의 하락세가 가속화할수록 이들은 부정선거 프레임에 기댈 것이라고 봤다.

 

6월 9일 시민들이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 모여

6월 9일 시민들이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한 표의 대표성 강화하고 음모론 막기 위해 연대 필요”

 

두 사람은 현재 시위대가 주장하는 ‘재선거’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제민 대표는 비용과 절차, 결과 수용 가능성 세 측면에서 재선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고, 천 변호사도 “잠실에서 문제가 된 표 전부가 특정 후보에게 갔다고 가정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재선거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해법과 대안도 제시했다. 녹색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박제민 대표는 투표 절차뿐 아니라 그 결과에서도 ‘공정한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표가 죽은 표가 되지 않게 하는 문제부터 접근하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다”며,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해 시위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행사한 표가 무더기로 사표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천윤석 변호사는 ‘연대와 배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정선거’처럼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을 선거 결과로 고립시켜야 한다는 취지다. 현행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정당 자체의 등록을 막거나 집회와 결사를 원천 금지하는 방식의 배제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들을 공론장에서 5 대 5의 의견인 것처럼 조명하지 말고, 정파와 이념을 떠나 음모론을 몰아내기 위해 연대하는 방식의 배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마리 르펜 등 극우 세력의 집권을 좌절시킨 유럽 좌우 연대를 사례로 들며, 음모론이 확산하지 않도록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폭넓게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개혁으로는 대법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는 관행이 견제와 균형 원리에 어긋난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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