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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明在躬志氣如神(청명재궁지기여신), 즉 ‘맑고 밝음이 몸에 깃들면, 뜻과 기운이 신령해진다’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츠다센의 인품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선물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순식간에 조선인 두 명을 감화시켰던 츠다센의 맑고 밝은 인품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맨 왼쪽에는 조선(朝鮮) 안종수(安宗洙)라는 서명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조선의 마케도니아인 이수정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행 16:9). 바울이 “건너와서 우릴 도우라”라는 그 마케도니아인의 말을 듣고 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유럽을 향하죠. 가끔 그때 바울이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간 것을 아쉬워하는 분을 보게 되는데요. 심지어 아시아에 교회가 들어오는 게 엄청 늦어진 이유라고 통탄하시는 분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가려고 했던 아시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가 아니라 오늘날 튀르키예 서부 지역이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서에 에베소,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같은 교회들이 나오잖아요? 그곳이 바로 성경이 말한 아시아입니다.
아무튼,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수정입니다. 이름이 맑고 예쁘지만 남자입니다. 이수정은 1882년 9월부터 1886년 5월까지 일본에 머물렀는데요. 이때 기독교인이 됩니다. 1883년 5월 발표된 이수정의 신앙고백은 조선인 최초의 것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데요, ‘뼛속까지 유교를 익혔던 조선인이 기독교를 믿으면 주자학적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구나’라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관심이 생긴다면 배요한의 논문, “이수정의 신앙고백문에 대한 유교철학적 분석”을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된 이수정은 성서를 번역합니다. 1884년 『현토한한신약전서』(懸吐漢韓新約全書)를 간행했고요, 1885년에는 국한문 혼용체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번역했습니다. ‘현토 성서가 뭐야’ 싶으시죠? 한역 성서에 음독 구결 기호를 붙인 겁니다. 한문에 토를 달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에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이 내한할 때 일본을 경유하며 이수정이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들고 들어왔죠.
이수정은 1883년 12월 미국 교회에 한국 선교를 청원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편지가 미국의 선교 잡지 The Missionary Review에 게재되면서 한국 선교의 개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수정이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편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나 이수정은 미국의 형제자매에게 인사드립니다. … 복음전파의 시대에 내 조국은 아직 기독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의 귀퉁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에 나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일의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 여러분의 나라는 기독교 국가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가 선교사를 보낼까 염려됩니다. … 여러분들이 제 말을 경청하고, 제 요청을 허락한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다른 나라가 선교사 보내기 전에 빨리 보내라.’ 과연 미국인의 프론티어 정신을 흔들어 놓을 만한 호소입니다.
이수정과 안종수
그런데 이수정은 왜, 어떻게 일본에 가게 되었을까요. 기존에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이수정이 명성왕후의 피신을 도와 공을 쌓았고 그 덕에 기회를 얻어 수신사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조선의 기록에 이수정이 공훈을 쌓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존의 설이 사실인지 더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기존의 이야기는 일본의 자료들에 기초한 것이었거든요. 어떻게 일본에 가게 되었는지는 연구가 진행되는 것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수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가게 된 것은 맞습니다. 아마 민영익의 겸인(양반가나 부호의 집안일과 사무를 맡아보던 사람-편집자)으로 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수정이 어떻게 수신사 일행과 함께 일본에 갈 수 있었는지도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수정이 일본에서 큰 관심을 보인 분야 중 하나는 근대 농학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안종수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나주부 참서관 등을 역임한 관리이면서 동시에 농학자인데, 앞서 1881년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갑니다. 농학자니까 일본에 저명한 농학자를 만나고 싶었겠죠? 그래서 만난 것이 츠다센(津田仙)입니다. 이 만남은 꽤 성과가 좋았습니다. 일본에서 츠다센을 만나고 농서를 구입해 온 안종수가 1885년 서양의 근대농법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농정신편』(農政新編)을 간행하거든요. 그런데 안종수와 츠다센의 만남은 한국의 농업사뿐 아니라 기독교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기독교계 잡지인 「칠일잡보」(七一雜報)는 그 만남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츠다센이] 마태복음 5장을 쓴 족자를 보여주며, ‘옛날 [조선이 일본에] 논어를 선사한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데, 논어의 등불보다 훨씬 더 밝은 햇빛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족자를 드릴 뜻을 표시하였다. 이에 손님[안종수]이 이 글을 읽어보고 감개무량하여 한없이 기뻐하였다. 츠다센이 이 족자를 말아서 선물로 드리려 한 즉, 손님이 사양하며 이르기를, ‘진실로 예수교는 덕이 있는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귀국하면 국왕에게 반드시 종교의 자유를 청원할 결심입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내가 출국할 때 예수교는 가지고 오지 않기를 서약하고 나왔으니, 잠시 선생의 집에 그대로 두시면 후일에 가지러 올 기회가 있을 줄 확실하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하고 부탁하였다.
그러니까 츠다센을 만난 안종수가 그의 인품과 기독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마태복음 족자를 나중에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좀 과장 된 것 같기는 합니다. 안종수가 조선에 와서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어떤 활동을 한 바는 안 보이거든요. 아무튼 이후 안종수는 한국에 돌아와 역시 농업에 관심이 많은 친구, 이수정에게 츠다센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굉장한 농학자이자 선비라고 소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이수정 역시 근대 농학을 배우기 위해 츠다센을 꼭 한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한 기회에 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 결국 성서 번역자가 되고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 되는 것입니다. ‘친구 족자 찾으러 갔다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해지겠지만, 너무 스토리 욕심은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안종수의 글씨

오늘 소개해 드리는 문화유산은 안종수가 츠다센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써 주었다는 글씨입니다. 츠다센의 후손이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명예교수에게 주신 것을 교수님이 우리 기관에 영구 임대해 주셨습니다. 위 인용문에 보시면, 츠다센이 옛날 조선이 일본에 논어를 선물해 준 것을 고마워하면서 안종수에게 마태복음 족자를 주려고 했다고 나오는데요. 이 글씨의 내용은 『예기』 「공자한거」의 구절을 변용한 표현입니다. 淸明在躬志氣如神(청명재궁지기여신), 즉 ‘맑고 밝음이 몸에 깃들면, 뜻과 기운이 신령해진다’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츠다센의 인품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선물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순식간에 조선인 두 명을 감화시켰던 츠다센의 맑고 밝은 인품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맨 왼쪽에는 조선(朝鮮) 안종수(安宗洙)라는 서명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씨는 우리 문화관에서 이번에 새롭게 만든 “이달의 이야기” 코너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코너 이름으로 아실 수 있겠지만 조만간 다시 수장고로 들어가게 될 예정입니다. 실물을 보시고 싶은 분은 늦어도 10월 말까지 방문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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