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적 레토릭에 쉽게 감동하는 개신교인들이야말로 트럼프 정치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이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트럼프는 자주 성경을 인용하고 공공연히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동성애와 이슬람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있으며 제리 팔웰과 같은 부흥사들과 긴밀한 교제를 한다. 그러나 그의 신앙적 레토릭은 그가 말한 바 “성공을 위한 허세”라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과도한 성적 방종 혐의는 유명하다.(본문 중)

백종국 (기윤실 이사장,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8년 11월 6일에 미국의 중간선거가 실시되었다.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1/3, 그리고 임기 만료된 주지사직이 대상이었다. 대통령 임기가 4년, 상원의원 임기가 6년, 하원의원 임기가 2년, 주지사 임기가 4년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정치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상원은 공화당 52석, 민주당 47석, 결선투표 대상 1석이고, 하원은 민주당 234석, 공화당 200석, 무소속 1석이다. 주지사는 공화당 27석, 민주당 23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인 민주당이 각자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결과였다.

미국 선거구의 왜곡된 획정, 즉 게리맨더링이 공화당에 유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민주당 정권하의 2010년 선거구 획정은 놀랍게도 공화당에 유리하게 마무리되었다. 뉴욕주립대 브레넨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당이 상하원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려면 공화당보다 11%를 더 득표해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이처럼 절차적 공정성이 훼손된 제도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Unsplash

 

중간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논평들이 쏟아졌지만 가장 공통된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방이라는 평가였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구조적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그러한 성격이 더 강했는데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이 중간선거를 자신에 대한 중간평가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선거 전의 판세 예측은 트럼프의 열세였다. 예컨대 9월 1일 실시한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의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중 60%가 트럼프의 정책에 불만족하다고 답했다. 절반이 트럼프의 탄핵에 찬성했고, 36%만이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유세를 꺼리는 공화당 후보까지 생겨났다. 민주당 후보들이 오바마의 지원유세를 강력히 요청하는 모습과 자주 대조되었다. 여당은 중간선거에서 불리하다는 징크스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과감하게 자신의 신임을 놓고 승부를 걸었으며 결과는 그에게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번 대통령선거 판세와 매우 유사한 과정이었다.

뉴욕타임스가 “대통령의 허영심과 그가 처해 있는 정치적 현실이 이렇게 충돌하는 상황은 처음”이라고 꼬집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거판을 휩쓸었으며 미스터리하게도 공화당은 상원의원과 주지사 선거에서 선방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도대체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전 세계가 궁금하고 있는 “트럼프 정치”의 요체는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는 1946년 6월 14일 독일계 이민 가족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도날드의 할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는 16세 되던 1885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1892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도널드의 어머니 매리 맥클레오드는 1930년 스코틀랜드에서 뉴욕으로 이주하여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를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는 세 번의 결혼을 통해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2005년에 결혼한 세 번째 부인 멜라니아 크나우스는 슬로베니아 출신으로서 2006년에야 미국 시민이 되었다. 가족사를 요약하자면, 트럼프 가족이야말로 이민자 사회인 미국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flickr

 

이민자 가족의 전형인 트럼프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이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 때부터 지속적으로 저임금의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에 멕시코의 재정으로 장벽을 세우겠다고 주장했다. 당선 후에는 아랍권 주요 국가 국민들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였고 오바마가 실시한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제도(DACA)의 폐지를 시도하였다. 최근에는 미국의 출생시민권제도를 행정명령으로 폐지하겠다고 주장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원이 연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일관되게 반이민과 소수자 배제의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다.

반이민 정책과 함께 보호무역주의가 트럼프의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환태평양동반자협정에서 탈퇴하였고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추진하였다.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것으로 시작하여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심지어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하겠다고 협박하였다. 중국과는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트럼프는 약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 5,745개 품목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축차적으로 매긴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중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도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5,207개 품목에 보복관세를 부가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자유무역주의를 중시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미국 내 부동산 거래로 재산을 모았기 때문이라는 해설이 있다. 그는 부친의 부동산 사무소에서 경력을 시작하였다. 청출어람의 전형이랄 수 있는데, 그는 부친의 소극적 자세와 달리 뉴욕 맨해튼 개발 등의 적극적인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58층짜리 트럼프 타워와 팜비치의 마라라고, 아틀랜타의 타지마할 카지노를 비롯하여 십여 개 이상의 호텔을 성공적으로 개발 운영하였다. 2015년 트럼프는 미국선관위에 100억 불의 재산액을 보고하였으며 매년 3억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고 말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펼쳐야 하는 제조업이나 금융업과 달리 주로 미국 내의 부동산을 다루는 일국적 시각이 트럼프 보호무역주의의 배경이라는 주장이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노골적인 국익 옹호 전통과 연관된 ‘사다리 걷어차기’라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이 자유무역 정책을 채택한 것은 1945년 이후 약 70여 년에 불과하다. 미국은 1776년 독립 이후 줄곧 200여 년 동안 보호무역 정책을 실행해왔다. 양차 세계대전 중에도 보호무역 정책을 유지하면서 전쟁 당사국들에게 막대한 전쟁 물자를 팔았다. 그렇게 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이 되고 난 후에야 미국은 자유무역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자유무역이 미국의 국가이익을 “상대적으로” 훼손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자유무역을 활용하여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 이제 미국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다시 보호무역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 보호무역을 기조라 하되, 상황에 따라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옮아 다니고 있다. 문제는 이 정책 전환이 트럼프를 통해 매우 과격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자서전 ‘THE ART OF THE DEAL’ 표지. 2016년에 한글 번역본이 출판된 바 있다.

 

트럼프 정치의 과격성과 파격성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요인은 그의 성공제일주의적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는 『거래의 기술』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내가 거래를 행하는 것은 단지 거래 그 자체를 위해서이다. … 결과적으로 무엇을 성취해냈느냐에 의해 평가된다”라고 말한다. 거래의 동기는 금전적 이익을 향한 본능이며 거래의 평가는 오로지 성공이라는 결과이기 때문에 그는 오로지 거래 그 자체에만 전념한다고 했다. 이러한 본능과 집중력이 그로 하여금 2,500만 불에 내놓은 마라라고 별장과 대지를 현찰 500만 불에 살 수 있게 하였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삶의 피폐와 극단적인 양극화에 분노하고 있는 저소득 백인 계층을 그의 권력자원으로 파악한 그의 본능과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일관성 있게 치고 나가는 그의 집중력이 트럼프 리더십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는 『거래의 기술』에서 전문가의 분석보다 “브로커로서의 본능”을 중시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트럼프의 윤리에 대한 무관심은 그의 성공제일주의와 가장 친근한 벗이다. 뉴욕 정치계에서 성공을 꿈꾸는 허시펠드가 조언을 구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쪽저쪽을 따질 게 아니라 이긴 쪽에 붙어 그쪽에 충실한 사람이 되라.” 트럼프의 윤리에 대한 무관심은 파산한 기업의 기업회생을 돕는 미 연방 파산법 조항인 ‘챕터11’을 은행 빚 줄이는 도구로 사용하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1990년대에 6개의 산하 기업의 파산을 신청했는데 뉴스위크지와의 회견에서 ‘챕터11’ 덕분에 빚을 줄일 수 있었다고 노골적으로 자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법정소송도 많아서 약 4천 개의 법정소송을 겪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지에 따르면 2016년 현재 그는 1,900건에서 원고로서 1,450건에서 피고로서 재판 중이었다. 그는 언론의 비판조차도 자신의 선전에 활용할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하려면 4만 달러가 든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다.”

복음주의적 레토릭에 쉽게 감동하는 개신교인들이야말로 트럼프 정치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이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트럼프는 자주 성경을 인용하고 공공연히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동성애와 이슬람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있으며 제리 팔웰과 같은 부흥사들과 긴밀한 교제를 한다. 그러나 그의 신앙적 레토릭은 그가 말한 바 “성공을 위한 허세”라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과도한 성적 방종 혐의는 유명하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트럼프 캠프는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나 선거 캠페인 중에 19명의 여성들이 그의 성적 일탈 혐의를 제기하였다. 트럼프는 자신이 독실한 개신교인이라 말하고 있으나 그가 다닌다고 주장했던 마블 교회는 그의 출석률이 매우 낮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복음의 실천적 기준이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면 트럼프는 복음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들에게 기도 받는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우측 두번째). (Youtube 캡쳐)

 

윤리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트럼프의 태도가 윤리에 대한 헌신이라는 문재인의 정책기조와 한반도 정책에서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윤리적 고려나 이데올로기적 이유를 들어서 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요청했다면 그는 아마도 코웃음을 치며 외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는 평화만 있으면 된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정치적 이념보다는 거래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반도 평화를 최고 가치로 삼는 문 대통령의 윤리에 대한 헌신이 개인의 이익 달성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윤리에 대한 무관심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이익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급격한 조화의 붕괴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트럼프 정치의 독특성이 한반도 정세의 극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전의 미국 대통령들은 어느 당 소속이든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워싱턴 주류의 행동준칙을 따랐다. 그러나 트럼프는 당선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자신의 거래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다. 전쟁이든 평화든 그는 그가 개인적으로 원하는 바에 몰두하고 있고 그 결과를 즐기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극적인 전환도 이러한 맥락 때문에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고 우리는 평화만 가지면 된다”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한, 트럼프는 문재인을 자신의 거래를 위한 주요 파트너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탈환했다고 해서 커다란 의미를 둘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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