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역사를 다루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대표적인 북간도 2세대 인물인 시인 윤동주와 그의 친구 문익환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북간도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국공 내전 승리 후 만주를 점령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모든 터전을 잃고 남한으로 내려온 문익환 목사가 어떻게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지도 과정을 추적해 소개했습니다.(본문 중)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3.1운동이야기(반태경)
CBS 3.1운동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 제작記
반태경(CBS PD, <북간도의 십자가> 연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
올해 2019년의 봄은 특별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 첫 부분에 기록된 두 가지 사건, 즉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후 100년이 되는 봄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꾸려 이 특별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국내외의 많은 학회와 단체도 뜻깊은 경축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CBS도 ‘3.1운동 정신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할 작품을 오랫동안 준비해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 앞에 선보였습니다. 신년 특집으로 공개했던 2부작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가 그것입니다.
‘기독교방송’의 3.1운동 기념 다큐멘터리기에 누군가는 “인구의 1.5%도 안 됐던 기독교가 3.1운동을 선도하고…”와 같은 내용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1등급 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서훈받으며 다시 화제가 된 3.1운동의 아이콘 유관순 열사 등 기독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CBS는 특별히 ‘북간도’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운동을 주목해 보기로 했습니다. 북간도는 현재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를 가리키는데, 이곳 북간도에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널리 이민 사회가 함께한 항일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항일 독립운동의 특징을 요약하면 ‘직접 행동’과 ‘무장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CBS는 일반인에게 생경할 수도 있는 북간도의 기독교 민족주의 운동을 재조명하는 일에 감히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이 북간도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며, 또 위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에도 소중한 공명(共鳴)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지난 1년여 간 추적하며 살펴본 북간도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했습니다. 국권이 상실되던 시기에 북간도로 함께 이주한 지식인들이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공동체를 세우고 기독교로 집단 개종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활약한 이동휘 전도사(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많이 알려진)의 역할은 인상적입니다. 동북 변경 지역의 실학자/무관 가문 출신이라는 이주 지도자들의 태생적 배경과, 당시 북간도를 관할하던 캐나다 선교부의 물밑 지원 등의 요인으로 북간도의 민족주의 운동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양태로 전개됩니다. 최초의 독립 선언문인 무오(戊午)독립선언문,[1] 3.1운동 이후 펼쳐진 최대 규모의 만세 시위였던 용정 3.13 만세 운동, 그리고 그 유명한 봉오동 전투(1920.6.6-7.)와 청산리 전투(1920.10.21-26.) 등 북간도의 특별한 항일 운동의 기저(基底)에는 기독교인들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에는 북간도 이주사와 집단 개종, 민족교육, 그리고 무장 투쟁 등의 다양한 요소를 색다른 기획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북간도 출신의 마지막 인사로서 당시 병상에 계셨던 문동환 목사(지난 3월 9일 소천)를 화자(話者)로 실제 북간도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순례한 젊은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는데, 문동환 목사의 조카로서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 씨가 99세 작은아버지의 역할을 맡아 ‘반말’로 내레이션을 했습니다. 또한 ‘북간도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규암 김약연 목사 기념사업회가 오랜 기간 수집한 사료들과 문동환/문익환 목사의 부모인 문재린 목사/김신묵 권사 등의 육성 등을 최초로 발굴, 소개하여 명품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호평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역사를 다루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대표적인 북간도 2세대 인물인 시인 윤동주와 그의 친구 문익환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북간도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국공 내전 승리 후 만주를 점령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모든 터전을 잃고 남한으로 내려온 문익환 목사가 어떻게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지도 과정을 추적해 소개했습니다.
192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 신앙의 주류는 ‘예수천당’이다. 말씀을 실천하는 부류는 항상 소수였다. 지금만 소수가 아니라 그 당시에도 소수였는데 그 소수가 사실은 역사를 이룩해가고 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정의와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향해서 노력하는 그 사람들이 결국 역사에 생존하게 된다. 그 사실을 우리는 기독교 역사, 북간도의 기독교 민족운동 역사 등을 통해 잘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前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교수 인터뷰 中)
3.1운동과 북간도라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주제를 하나로 엮어 화제가 되었던 <북간도의 십자가>는 3.1절 날 1~2부 연속 편성을 마지막으로 TV 방송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돌무더기와 풀밖에 남아 있지 않던 북간도 유적지들을 영상으로 담을 때는 ‘어떻게 이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기관과 교회와 동역자들의 참여와 헌신에 힘입어 한국교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CBS는 이제 이 다큐멘터리를 한국교회 밖으로 확산할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영화화가 그것입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8월 광복절 즈음에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가 스크린으로 공개될 것입니다. 고(故) 문동환 목사의 미공개 영상 등을 담아 웰메이드 영화로 재탄생할 <북간도의 십자가>가 한국교회를 회복시키는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잘 감당하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1] 1919년 2월 1일(음력으로 무오년)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지도자 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조국 독립을 요구한 선언에서 발표된 독립 선언서
<좋은나무>를 후원해주세요.
관련 글 보기
┗1879년 1월 한국 개신교인 첫 세례-올해는 140주년(옥성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