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이름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첫 신자부터 2019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한 전도인에게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들고 지어 왔다. 2019년 1월 27일 주일을 한국교회 140주년으로 기념하자. 매년 1월 마지막 주를 한국 교회 생일로 삼자. 우장에서 옛 교회 자리를 찾아 작은 기념비라도 세우자. 한국교회 생일이라도 지켜야 그 정체성을 지키고 역사의식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 석좌교수)

 

올해는 1879년 평안도 의주(義州) 청년 4명이 한국 개신교 첫 신자가 된 지 1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들은 로스(John Ross, 1842-1915) 목사의 전도를 받고 성경을 읽은 후, 중국 만주 영구(營口)장로교회를 찾아가서 스코틀랜드장로교회 선교사 매킨타이어(John McIntyre, 1837-1905)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2019년은 한국개신교 140주년인가?

1984년에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을 기념할 때까지는 선교사를 주체로 보는 선교사관에 따라서 선교사를 통한 복음 전래를 개신교 시작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첫 주재 선교사인 알렌 의사가 서울에 온 1884년 9월 22일을 기점으로 보고, 1934년에 50주년 희년과 1984년에 제2희년을 기념했다. 1934년 첫 희년 때 감리회의 양주삼 총리가 1884년 6월 24일 매클레이가 서울에 온 것을 복음 전래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며 장로회보다 감리회가 먼저 한국에 왔다는 유치한 주장을 했다. 그는 방문 선교사였지 주재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주재 선교사를 기준으로 선교의 시작을 본다면 알렌이 첫 내한 선교사였다. 감리회의 주장에 대해 1934년 북장로회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여러 선교회나 교회가 한국에서 개신교 사업을 시작하는 데 참여하는 위대한 특권을 받은 것이지, 특정한 선교회나 교회가 그 모든 신용과 영광을 가져가기 위해 ‘처음’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다.[1]

한편 민족 교회론을 주장한 민경배 교수, 토박이 사관을 제시한 전택부 총무, 민족 사관의 이만열 교수 등은 1980년 전후에 선교사에 의한 기독교 전래의 관점이 아닌 한국인에 의한 기독교 수용이라는 주체적 관점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만열과 옥성득은 1985-88년 만주에서 이루어진 한글 성경 번역을 연구하면서, 의주 청년 4명이 1879년 세례를 받고 한글 성경을 번역하고 반포하여, 미국 선교사들이 내한하기 전에 압록강 양안과 북한 지역에 수백 명의 개종자와 100명 이상의 세례교인이 존재한 수용의 역사를 발굴하고, 이를 1989년 4월에 출간된 『한국기독교와 역사 1』에 서술했다.

일반적으로 개 교회의 설립 기점은 1) 세례교인의 존재, 2) 예배와 성례(세례와 성찬)의 시작, 3) 가정집이 아닌 별도의 예배당을 마련한 시점 등으로 본다. 따라서 의주에 세례교인이 존재하기 시작한 1879년을 한국개신교의 기점으로 볼 수 있다. 그해 일어난 일을 다시 정리해 보자.

 

1879년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

1879년(고종 16년) 1월부터 연말까지 만주의 개항도시 우장(영구) 장로교회에서 의주 청년 4명이 세례를 받았다. 한국 개신교 첫 세례였다. 세례문답, 성경공부를 하는 한국인 신앙공동체가 우장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의주에서도 비밀스럽게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한국기독교와 역사 1』에서 두 페이지만 보자.

 

[사진1] 144쪽.

[사진2] 145쪽.

1879년 1월(날짜는 모름)에 김진기 또는 장진국으로 알려진(이름이 1차 자료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위의 책에서는 무명으로 썼다) 의주 청년 한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이어서 4월에 백홍준, 7월에 이응찬, 12월에 이성하로 알려진 한의사 출신 상인이 각각 매킨타이어로부터 세례문답을 거쳐 세례를 받았다.

더불어 1879년 말-1880년 초에 11명의 신자가 영구장로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고, 11명의 다른 사람들이 한글 성경과 전도문서 번역을 도와주고 있었다. 1879년에 수세자 4명, 신자 20명 정도가 의주와 만주 영구(우장)에 존재했고, 이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번역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의주의 경우 소수의 신자들이 비밀스럽게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가정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140년 전 한국 개신교의 출발이었다. 로스는 이 모든 소식을 스코틀랜드에서 듣고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로 감사했다.

당시 지도에서 의주, 고려문, 만주의 개항장인 우장(영구)을 확인해 보자. 조청(朝淸) 국경이 나무로 만든 “The Wall of Stakes”(長柵)로 표기된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의 유명한 『조선, 아침이 조용한 나라』(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Boston: Ticknor & Co.; London: Trubner & Co. 1886)에 있는 한국-만주 지도이다.

 

[사진 3] 한만 국경 지도.

이 4명의 청년들은 로스가 준 성경과 전도책자를 읽고 기독교를 접했고, 로스의 전도와 가르침을 받으며 한글 성경을 번역하다가 세례를 받았으므로, 로스의 한국 전도의 첫 열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4] John Ross Family, 1885.

아래 사진은 로스가 목회하던 우장 장로교회의 모습인데, 이 교회는 1872년 만주 개항장에 첫 주재 선교사로 온 로스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1879년, 이 벽돌 기와 건물에서 네 명의 의주 청년이 매킨타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중국인 교회는 성장하자 1890년대에 건물을 일본인 교회에 팔고 이전했다.

 

[사진 5] 우장장로교회.

이런 일은 1876년부터 로스 목사가 조선과 청의 국경 무역이 허락된 고려문에서 전도하고 한문 성서를 반포한 결과였다. 이때 로스의 어학교사 이응찬은 한문 복음서를 번역했고, 백홍준과 이성하는 의주로 돌아와 전도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로스 목사는 이들의 세례 소식을 듣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매킨타이어는 글을 아는 4명의 한국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은 놀라운 추수를 약속하는 첫 열매들이다. 비록 지금 한국은 서양 국가들과의 접촉을 철저히 막고 있지만, 쇄국은 곧 무너질 것이다. 또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천성적으로 꾸미지 않고 종교성이 많으므로, 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면 신속하게 퍼질 것이다. 작년에 글을 아는 4명의 한국인이 세례를 받았고,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탐구하는 11명이 더 있으며, 동일한 수의 다른 사람들이 자기 민족을 위해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준비하는 문서사업을 위해 7~8일이 걸리는 우리 선교지부까지 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기독교회를 향해 열려있는 새 민족, 새 나라, 새 언어가 있다.[2]

 

위 글의 원문이다. 나는 이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원본 잡지를 구입했다. 그 사진을 보자.

[사진 6] John Ross, “China: Manchuria Mission,” United Presbyterian Missionary Record (Oct. 1, 1880): 332-333.

변경도시 의주에서 압록강과 고려문은 새 진리를 수용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문지방을 건너자 쇄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신흥 중산층이자 서구문화에 개방적이던 의주 상인, 양반들로부터 차별받던 장돌뱅이들을 불러 조선 예수교인의 조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국법이나 목숨보다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가 더 소중했기에, 의주에서 영구까지 천리 길을 걸어가 신앙을 고백했다. 풍성한 추수를 약속한 첫 열매인 이들, 기존 질서를 넘어 열린 미래를 향해 나아간 이 개척자들을 통해 한글성경이 번역되었고, 미국선교사들이 오기 전인 1880년대 초 우장과 의주에 한국인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개신교는 이들과 자녀에게 윤리의식과 소명감을 불어넣어 북한지역에 근대 자본주의를 일으켰다.

1879년 이름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첫 신자부터 2019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한 전도인에게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들고 지어 왔다.

2019년 1월 27일 주일을 한국교회 140주년으로 기념하자. 매년 1월 마지막 주를 한국 교회 생일로 삼자. 우장에서 옛 교회 자리를 찾아 작은 기념비라도 세우자. 한국교회 생일이라도 지켜야 그 정체성을 지키고 역사의식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1] Rhodes, Koons, and Coen, “The First Protestant Missionaries to Korea,” Korea Mission Field (July 1934): 157.

[2] John Ross, “China: Manchuria Mission,” United Presbyterian Missionary Record (Oct. 1, 1880): 3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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