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나라의 봄을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도 진달래도 아닌 벚꽃이 되어버렸다. 2012년 발표된 어쿠스틱 밴드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차트에 재등장한다. 한 시절의 유행가를 넘어 그야말로 ‘국민 봄노래’가 된 것이다.(본문 중)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2: 12-13)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이다. 그분의 낭만이다. 심각한 뉴스가 넘치는 세상에서 주님은 자연의 움직임에 응답하며 함께 꽃구경을 가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6:29-30)
신약성경에서도 시선을 들에 핀 꽃으로 향하게 하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삶의 무게에 헐떡거리며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들어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신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그렇게 말을 걸어오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깊은 마음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바야흐로 꽃의 계절이다. 봄이 되면 꽃들이 우리를 반길 뿐 아니라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도 꽃이 자주 등장한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버스커버스커, “벗꽃엔딩”, 2012)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나라의 봄을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도 진달래도 아닌 벚꽃이 되어버렸다. 2012년 발표된 어쿠스틱 밴드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차트에 재등장한다. 한 시절의 유행가를 넘어 그야말로 ‘국민 봄노래’가 된 것이다.
매년 많은 가수들은 봄의 찬가들을 발표하며 우리의 감성을 사로잡아 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겨울이 점점 길어진다고 느낀다. ‘언제쯤 이 추위가 지나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다가올까?’ 그래서 마침내 찾아온 봄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계절이다.
다시 돌아올까/ 네가 내 곁으로 올까/ 믿을 수가 없는데/
믿어주면 우린 너무 사랑한/ 지난날처럼 사랑하게 될까/ 그때의 맘과 똑같을까/
계절처럼 돌고 돌아/ 다시 꽃 피는 봄이 오면
(BMK, “꽃피는 봄이 오면”, 2005)
우리는 그렇게 봄을 기다린다. 다시 “꽃 피는 봄이 오면” 우리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란 부푼 기대 속에서. 하지만 아름답지만 찰나 같은 봄날은 어쩌면 우리네 ‘청춘’을 닮았다. 그래서 BMK의 소울 가득한 보이스는 상실과 희망의 경계를 서성이며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April is the cruelest month).
(T.S. 엘리엇, “황무지(The Waste Land)”, 1922)
1920년대 미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전설적 록 밴드 <딥퍼플>(Deep Purple)의 명곡 “April”은 바로 이 시에 대한 오마주이다. 이 말이 여러 매체에서 자주 인용되어 왔지만, 난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대지에 새로운 새싹과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은 아름다운 자연의 생명력과 호흡을 선명하게 느끼는 달이 아닌가. 하지만 요즘은 이 말의 의미가 봄의 생기를 잠식하며 서늘하게 다가온다. 4월의 화사함과 달콤함을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의 지금은 깊어만 가는 잔인한 계절/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가슴 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 봄빛은 푸른데.
(브로콜리 너마저, “잔인한 사월”, 2012)
아주 독특한 색깔로 마니아층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가 부른 “잔인한 사월”의 한 소절이다. 이 노래는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봄을 맞았지만 정작 자신을 받아줄 보금자리를 상실하고 길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 청춘들의 고뇌를 담담하게 읊조리고 있다. “약속된 시간이 끝난 뒤엔” 열심히 했으니까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갈 곳이 없는 청춘들에게 이 노래는 “벗꽃엔딩”의 낭만보다 더 가슴을 후벼 파는 공감이 서려 있다. 우리 시대 청춘들에게 4월은 분명 잔인한 계절이다. 또 다른 봄노래를 들어보자.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시인과 촌장, “진달래”, 1986)
하덕규와 함춘호로 이루어진 듀오 <시인과 촌장>의 “진달래”이다. 이 노래가 실린 시인과 촌장의 2집 <푸른 돛>은 한국 모던 포크의 걸작이다. 파스텔로 그린 소박한 앨범 재킷, 자연의 여러 형상에 빗댄 은유 가득한 가사, 그리고 곳곳에 녹아있는 시인의 아련한 슬픔과 고뇌…. 암울한 시대를 살던 당대의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은 ‘잔혹 동화’ 같은 앨범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재해석한 이 봄꽃 노래는 참 슬프다. 하덕규 특유의 한음, 한음 절제된 여린 읊조림, 그 여백을 타고 흐르는 함춘호의 담담한 기타와 한송연의 건반 연주는 노래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4월의 화사한 봄을 담은 가사에서 역설적으로 서늘하고 쓸쓸한 늦가을이 느껴진다.
5년 전 4월,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많은 아이들과 여러 이웃들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이 서정적 엘레지의 후렴처럼 채 피지 못하고 사그라진 4월의 꽃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슬픈 가슴에 희망의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많은 봄의 노래들은 설렘과 활기를 선물하기도 하고, 때론 은근한 절망과 슬픔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이 노래들은 그렇게 봄을 맞이하는 우리네 다양한 마음을 대변해준다. 올봄에는, 혼돈과 상실을 넘어 새로운 봄의 찬가를 기대해본다. CCM 아티스트 김명식이 부른 “사람을 살리는 노래”의 가사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봄 노래는 “상한 영혼 일으켜 다시 살게 하는 노래”였으면 한다.
싱그러운 봄 같은 그분의 향기/
따스한 사랑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하네/
그분으로 가득찬 하루 또 하루/
이것이 우리 주님 약속하신 봄의 모습 아닌가
(김명식, 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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