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과학자들이 유골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적했지만, 이제는 유전자 정보 분석을 통해 더욱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에 수용된 DNA를 조사해 침팬지와 인간의 돌연변이 횟수를 계산했고, 이를 통해 공통조상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은 약간 다른 두 필사본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치 예수의 어록을 서로 다른 형태로 전승한 공관복음서와 같다고나 할까?(본문 중)

인간의 진화와 신학적 상상력

『인간의 타락과 진화』서평

최경환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윌리엄 T. 카바노프, 제임스 K. A. 스미스 편집 | 이용중 옮김 | 새물결플러스 | 404면 | 19,000원 | 2019.3.15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유인원의 계보에서 출현했다. 화석 기록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 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사람(Homo) 속(Genus)이 출현하게 된 것을 대략 200만 년 전으로 보는데, 이들은 이전 종과 다르게 큰 두개골과 짧은 팔, 긴 다리를 가졌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화석은 아프리카를 넘어 점차 아시아와 인도네시아, 중국 베이징 근처에서도 발견됐다. 우리가 속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19만 5천 년 전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발견됐다. 이런 지식은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최근 불과 몇십 년 사이에도 고인류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계속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과거에는 과학자들이 유골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적했지만, 이제는 유전자 정보 분석을 통해 더욱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에 수용된 DNA를 조사해 침팬지와 인간의 돌연변이 횟수를 계산했고, 이를 통해 공통조상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침팬지와 인간의 게놈은 약간 다른 두 필사본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치 예수의 어록을 서로 다른 형태로 전승한 공관복음서와 같다고나 할까?) 과학자들은 DNA 변화를 추적해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을 입증할 수 있었고, 그 외에도 해부학적인 관찰을 통해 화석 자료의 연구 결과와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결론적으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에서 2,000명에서 10,000명 사이의 인구를 이루고 살다가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1장에서 대럴 R. 포크가 인류의 기원을 간략하게 소개한 내용이다. 『인간의 타락과 진화』는 현생 인류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토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류의 시작과 타락을 해명한 논문 모음집이다. 창세기 1-3장을 비유로 읽든, 상징으로 읽든, 혹은 신화로 읽든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죽음이 들어왔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성육신했다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이 밝혀낸 인류의 기원 이야기는 그동안 기독교 교리가 말해온 내용과 너무나 다르다.

먼저 아담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당연히 성서는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인간이었고, 모든 인류가 그들에게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성서의 내용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자들은 다양한 설명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아담이 인류 전체를 지칭한다고 보는 관점과,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의식(혹은 영혼)이 창발하는 어느 순간을 아담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아담의 역사성 문제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인간의 타락 문제다. 성서는 인간의 타락이 어떤 특정한 시간에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처럼 기술한다. 바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순간이다. 만약 이렇게 죄의 기원을 한 시점으로 본다면, 인류의 진화와 타락은 어떻게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을까? 반대로 질문해보자.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어느 시점에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죄를 인식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전제들이 필요하다. 인간의 의식은 언제부터 출현했는지, 도덕의식, 타자에 대한 책임감, 영적 의식은 언제부터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죄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 책의 편집자인 제임스 K. A. 스미스(미국 캘빈 칼리지의 철학 교수)는 인류의 진화와 성서의 타락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134-135쪽).

∎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생성소멸의 과정을 겪게 하셨다.

∎ 생물학적 죽음, 동물의 포식, 적자생존과 같은 자연의 법칙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분이다. (전통적으로는 타락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선한 창조세계의 구조 가운데 일부일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문화적 동물로 진화한 사람 과에 속하는 동물이 출현했고, 대략 10,000명의 군집을 이루는 초기 인간이 등장했다. 이들이 진화하여 도덕적 능력을 나타낼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들을 언약 집단으로 선택하셨다.

∎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선택을 뜻한다. 하나님은 한 집단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창조세계를 다스릴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셨다.

∎ 이 원래 인류는 완전하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미숙하다. 따라서 이들은 사명을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따라서 타락은 어느 한 순간, 한 시점에 발생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점차로 발생한 사건이다.

∎ 하지만 이런 연속적인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성품과 존재가 변화됐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구속의 은혜를 통해 인간을 다시금 회복시킬 것이다.

제임스 스미스의 시나리오는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알고 있던 성서의 내용과 교리를 일부 수정한 것처럼 보인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여 온 성서 해석이나 교리가 현대 과학의 내용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때, 교회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특별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원죄와 타락 교리가 인류의 진화에 대한 과학의 연구 결과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때, 기독교는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할까?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는 “겹치지 않는 고유 영역”(Non-Overlapping Magisteria)이 존재하니, 이 둘 사이에는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아마 대부분은 현대 과학의 결과와 전통적인 교리를 연결하려는 복잡한 수고를 하기 보다는 이렇게 둘 사이를 떨어뜨려 각각 독립적인 영역으로 보호하려 할 것이다. 가장 안전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교리는 재형성되어야 하니, 과학의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리와 과학이 어느 정도 서로 겹치는 영역이 있을 수 있고, 이 부분을 신학적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어느 정도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과도하게 과학과 신학을 통합하려는 시도에는 반대하지만, 이미 창세기의 앞부분을 현대 과학의 성과와 결부하여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일치론적 해석이라고 하는데, 때로는 창조과학과 같은 성서와 과학의 어색한 결합을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던 기독교 교리와 성서의 내용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도 한다. 앞서 제임스 스미스가 인류의 진화 과정을 성서의 타락 이야기와 연결해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를 만든 것처럼, J. 리처드 미들턴(노스이스턴 신학대학원 성서학 교수)은 “인간의 진화를 고려한 창세기 3장 읽기”(4장)에서 현대 성서학의 논의를 충분히 활용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진화생물학의 연구 결과와 상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들턴은 섣부르게 현대 과학과 성서를 일치시키려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 둘을 완전히 분리해 전혀 상관이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지도 않는다. 다만 현대 과학을 존중하면서도 성서를 온전하게 해석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이 책에 실린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읽어보면 결국 인간의 타락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추상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란 무엇인가? 죄의식은 어떻게 생기는가? 죄와 도덕성은 어떤 관계인가? 약육강식이라든가 먹이사슬을 우리는 죄라고 할 수 있는가? 이기심, 책임 전가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진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다른 인간이나 동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순수하게 선하기만 했을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담의 타락 사건 이전에 동물들은 죽지 않았을까? 아담은 본래 죽지 않을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인가? 조금 더 질문을 밀어붙이면, 뱀의 유혹과 그 이후의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뱀의 존재는 원죄가 외부로부터 개입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죄를 짓고 난 이후에 인간의 변화는 즉각적인가?

 

미켈란젤로(1475~1564)의 <타락과 낙원에서의 추방>. 바티칸 시스틴 채플 천정 벽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질문이 때로는 성서학자들을 쩔쩔매게 하는 난제가 될 수 있다. 가인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하나님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가인을 보호하기 위해 표를 주셨다고 하는데, 그럼 그 다른 인간은 누구인가? 가인이 성읍을 지어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오히려 에덴동산 밖의 이야기는 인간의 진화와 조화를 이루는 듯한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가인의 이야기는 주변에 다른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그렇다면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호모 사피엔스를 대표하는 집단일 수 있다. 이런 상상력이 때로는 엉뚱하게 성서를 해석하고 이상한 상상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참고하면서 신학적 상상력을 펼친다면 얼마든지 새롭고 참신한 성경 해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과거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교회는 가장 늦게 과학의 발견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진화론도 과거의 지동설과 같은 수용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진화론이 우리의 신학적 사고에 제기하는 도전을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성서를 새롭게 읽어내려고 시도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후자와 같은 시도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탐구해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우리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여 온 생각 중에서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하며, 그럴 경우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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