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저명인사들은 자기 자녀들을 어떻게 해서든 의대나 법대나 경영대에 보내려 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장관 후보의 자녀 입시 관련 의혹들이나 권력을 이용해 자녀를 공기업에 취업시킨 국회의원만 봐도 그렇다. (중략) 자기 자식만은 남들보다 더 존경받고 더 편안한 길을 걷기를 원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 소재 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까? 부품 소재 기술 개발은 그 규모나 특성상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벤처 창업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다.(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여기저기서 우리나라가 부품 소재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여 일본이 규제하는 부품 소재 산업을 국산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 필요에 부응하여 정부도 기술 개발 예산을 대폭 늘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필자가 경험하는 중소기업의 기술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다. 중소기업에 가 보면 기술 개발과 산업화에 필요한 경험 많고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태부족이다. 이공계 대학에서 배출한 그 많은 인력이 다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일은 힘들고, 월급은 적고, 근무환경은 열악하고, 고용도 안정적이지 않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외에도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데에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기술직에 대한 천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나 대기업의 이공계 인력들이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느냐면서 기술직 천시는 옛날이야기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좋은 대접을 받는 이공계 인력은 소수에 불과하며, 사회 전체적으로 기술직 천시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취업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산업 현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채우고 있다. 그러니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높은 생산성과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기대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고용의 안정성이나 근무환경, 임금 격차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직업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대규모 청년 실업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의 학벌에 대한 채용 차별을 풍자한 그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 저명인사들이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녀들은 의대나 법대, 혹은 경영대에 보내려 하는 현상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최근만 해도 장관 후보의 자녀 입시 관련 의혹들이나 권력을 이용해 자녀를 공기업에 취업시킨 국회의원과 관련된 이슈들 때문에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정의와 평등을 외치지만 막상 자식 문제 앞에서는 신념과 다르게 행동하는데, 자기 자식만은 남들보다 더 존경받고 더 편안한 길을 걷기를 원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이슈들에서 등장하는 좋은 직업이나 좋은 직장이란 대체로 돈을 잘 벌고, 안정적이고,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자리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 소재 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까? 부품 소재 기술 개발은 그 규모나 특성상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벤처 창업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들은 안정적이고 임금이 높은 대기업으로 몰린다. 그리고 같은 기술직이라 해도 가능하다면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좀 더 고상해 보이는 정신 활동에 가까운 연구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외국 기술을 베끼고, 또 외국의 뛰어난 장비로 부품 소재를 조립하여 이만큼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까지는 올 수 있었다. 소위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다음이 문제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제 ‘‘발 빠른 추격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소위 ‘시장 선도자’(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여 우리 힘으로 선도적인 기술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비나 부품 소재를 만드는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우수한 기술 인재들이 자유롭게 벤처 창업을 하고 대접받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총체적 사회 구조의 개선이 필요한데,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이나 근무환경, 고용 안정 등 직업 환경의 구조적인 차이를 줄여가는 현실적인 처방은 무엇보다 필요한 선결 과제이다.

 

지난 8월 9일, 정부는 소재 부품 산업 육성을 위한 인재 양성계획을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내년부터 대학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전공을 신설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출처: KBS NEWS Youtube 갈무리)

 

그와 더불어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기술을 천시하는 우리의 의식 구조와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모든 직업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야 한다. 크든 작든 국민 각자가 서로 주어진 재능을 존중하고, 그 재능이 곳곳에서 잘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런 변화가 가능할까? 기본적으로 돈과 명예와 안정을 추구하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사고의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전통적으로 정신노동을 중시하고 육체노동을 무시하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기독교에 있다. 우리의 신앙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러 해 전에 루터의 종교개혁 초기 독일에서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케플러라는 과학자에 대한 책을 쓴 적이 있다.[1] 물론 신분제 사회인 당시 독일을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시대에도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런데 루터가 등장해서 신자 각각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고귀한 존재이므로,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며, 그 모든 일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가르쳤다. 농사짓는 것, 기술자의 일, 아이 낳는 것, 심지어 기저귀 가는 것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일이라고 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 앞에서 영예로운 것이므로 맡은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루터의 가르침 때문에 케플러는 처음에 원했던 목사의 길 대신에 천문학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런 신앙적 태도가 있었기에 근대 과학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현대 과학의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은 16, 17세기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했던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카스(R. Hooykaas)에 의해 제기되었다.[2] 그는 중세 과학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으로 자연을 신격화하고 인간의 이성을 과대평가하고 육체 활동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였으나, 종교개혁의 신앙이 이를 바로잡았다고 주장한다. 즉,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과학 활동을 포함한 일반 신자들의 일상적 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인간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고 손으로 하는 실험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신활동은 고상하고 육체활동은 천하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이원론을 극복할 대안은 우리의 신앙이다. 직업의 귀천을 넘어서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인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주님께서 주신 일은 무엇이든 소중하다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성경적 가치관이 자리 잡게 하는 일은 아주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소위 블루칼라들도 존중받는 사회의 토양을 만드는 데 기독교인들이 제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기독교 경영인이나 중소상공인들이 앞장서서 기술직을 존중하고 정당하게 대접하며, 기술 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노력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직업 안정성 문제와 임금의 양극화 문제를 풀어나가면 좋겠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사회는 결코 건전한 사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 기독교로 인해 더 발전하고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 성영은, 『케플러,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히다』(성약출판사, 2011).

[2] 호이카스, 『근대 과학의 출현과 종교』, 손봉호, 김영식 옮김(정음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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