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의회는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다 퇴진한 트럼프에 대해 탄핵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탄핵은 미국 정치의 현존하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탄핵이 실패하면, 트럼프는 더욱 기세등등하여 미국의 통합을 저해하는 정치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탄핵이 성공하여 트럼프가 완전히 몰락하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절망적 저항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 딜레마의 양 뿔 중 어느 쪽을 잡더라도 미국 민주주의는 당분간 위기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본문 중)

백종국(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트럼프의 친위 쿠데타 시도

2021년 1월 6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발생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자 트럼프는 이 선거 결과를 폭력적으로 전복하고자 하였다. 1월 6일, 미국 의회가 투표 결과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 회의를 진행하였을 때, 트럼프는 그의 지지자들을 의회로 진군하라고 선동하였고, 그의 지시를 받은 폭도들은 의회를 침탈하였다. 권력 유지를 위한 일종의 유사 친위 쿠데타(quasi-palace coup)였다. 의회 경찰 병력의 일부도 이 폭도들에 합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신했던 국회의원들은 트럼프의 기대와는 달리 신속히 바이든의 당선을 인준하였다.

목표가 빗나가고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트럼프는 극좌 안티파 세력이 의회 침탈의 주범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1933년 2월, 바이마르공화국을 붕괴시키고 나치 독재 수립을 가능하게 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히틀러는 의사당 방화가 공산당의 음모라 주장하면서 나치 친위대를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결국 그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수권법을 통과시켰었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이후 이미 워싱턴 정가에 파다하게 퍼져있던 트럼프의 쿠데타 시나리오도 이와 유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2021년이며, 미국은 바이마르공화국이 아니었다.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의회는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다 퇴진한 트럼프에 대해 탄핵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탄핵은 미국 정치의 현존하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탄핵이 실패하면, 트럼프는 더욱 기세등등하여 미국의 통합을 저해하는 정치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탄핵이 성공하여 트럼프가 완전히 몰락하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절망적 저항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 딜레마의 양 뿔 중 어느 쪽을 잡더라도 미국 민주주의는 당분간 위기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지난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을 일으킨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출처: POLITICO)

 

트럼프 친위 쿠데타의 발생 이유

저명한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은 사회 구조의 변화 없이 진행되는 폭력적 정치 변동을 쿠데타라 부르고 있다. 그가 언급한 세 종류의 쿠데타 중 ‘궁정 쿠데타’ 혹은 ‘친위 쿠데타’는 재임 중인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르는 불법적 폭력 동원 행위를 말한다. 2021년 1월 6일,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가 시도했던 바로 그 행위이다. 의회의 보호를 위해 의회와 워싱턴 D. C. 정부가 연방군의 투입을 요청했지만, 미군 통수권자인 트럼프가 이를 반대했다. 트럼프의 부통령이며 상원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펜스가 주변 주의 방위군을 요청함으로써 트럼프의 유사 친위 쿠데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덕분에 펜스는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그의 권력 유지를 폭력에 호소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실패를 받아들기 힘든 트럼프의 자아도취적 성격이다. 미국 정책연구원 외교정책포커스 디렉터인 존 페퍼(John Feffer)는 트럼프의 이런 성격을 무한한 나르시시즘의 비극이라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는 그의 책 『거래의 기술』에서 그의 극단적인 윤리적 무관심과 성공제일주의를 자랑하고 있다. 그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의 처세술이 사업가와 정치가로서의 성공을 낳았다고 믿고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의 성공이 그가 저지른 불법과 허세와 위선을 정당화한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을 항상 성공했으며, 또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46대 대통령 선거의 패배도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뒤집기 위해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폭력적 수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로, 트럼프의 자아도취적 성격이 극우 단체들의 음모론과 잘 어울렸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그의 트위터에서 자주 인용한 ‘딥 스테이트’(Deep State) 음모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딥 스테이트란 정치의 막후에서 정책을 좌우하는 선출되지 아니한 권력자들의 그룹을 가리키는 말이다. 트럼프는 2020년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되자, 딥 스테이트가 배후에 있다는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큐아논(QAnon)과 같은 백인 극우단체들의 활동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떠도는 여러 가지 음모론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당과 연계되어있는 딥 스테이트 세력이야말로 미국을 망치는 악의 축이다. 이들은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까지도 경멸하면서, 독불장군인 트럼프를 음모 세력과 싸우는 그들의 메시아로 간주했다. 이들에게는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것은 딥 스테이트의 음모에 의한 것이며,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뒤집어야 할 일이었다.

셋째로, 사회적 양극화 심화로 인한 백인 중하층의 절망감이 트럼프 쿠데타의 배후 요인이다. 대통령 선거 이후 트럼프의 선거 부정 주장, 바이든 인수 위원회에 대한 행정부의 협조 거부, 트럼프 측근들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언급 등이 진행되자 트럼프의 쿠데타 가능성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다수 군중의 의회 침탈 형태로 쿠데타가 진행된 것은 자신의 지지층에 대한 트럼프의 자신감 때문이다. 7천4백만 표의 지지층과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친트럼프 시위를 볼 때, 미국 의회를 자신의 지지자들로 포위하는 것만으로도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전후 미국의 패권 체제 붕괴와 미국 국력의 상대적 하락, 그리고 교조적 신자유주의로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 때문에 고통받는 백인 중하층의 절망적 몸부림이 트럼프 친위 쿠데타 시도를 뒷받침해 주었다.

미국의 백인 중하층은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의 희생양이 되어 실업과 사회적 지위 하락을 겪으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워싱턴의 기득권층과 외국인을 공격하는 트럼프의 선동에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양당제에서 소외된 정치적 홈리스들이었고, 수입된 외국인 노동자들과 불공정한 무역을 시도하는 다른 나라들이 그들이 받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소셜 미디어의 가짜뉴스를 신봉하고 있었다. 이들에게서는 계급 배반 투표도 나타나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책조차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오바마케어를 들 수 있다. 오바마케어가 ACA(Affordable Care Act: 보험료 적정 부담법)의 별명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ACA는 지지하고 오바마케어는 반대하는 웃지 못할 모순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무지할수록 더 목소리를 높이며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 “더닝-크루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가짜뉴스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소득을 노리는 소셜 미디어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 양날의 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하게 되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경험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때문에 우리는 지구 전역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언론 조직이 제공하는 정보와 해설을 받아보았다면, 이제는 다차원적인 정보와 해설을 무료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정책의 심도 있는 대안에 대해 수억 명이 동시간에 투표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직접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만 상상하게 만들었던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거짓과 혐오의 전파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트럼프의 친위 쿠데타 시도를 가능하게 한 미국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46대 대통령 선거 개표 과정에서 점차 패색이 짙어지자, 트럼프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바이든이 승리하는 모든 주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짧은 기간 안에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동원하여 “워터마크”, “도미니언”, “프랑크푸르트 부정선거 서버”, “일루미나티”, “딥 스테이트” 등 음모론을 퍼뜨리며 부정선거 가짜뉴스를 양산하였다. 이러한 가짜뉴스들은 팩트체크 프로그램을 통해 허위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지금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음모론을 꾸준히 재생산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경제적 대박을 꿈꾸는 정치적 황색 언론으로 악화되고 있다. 몇몇 성공적 소셜 미디어 운영자들은 막대한 광고 수익을 누리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어떤 보수 유튜버는 약 112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한 해에 최대 27억 원의 소득을 누리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금전적 인센티브 때문에, 소셜 미디어 제작자들은 특정한 성향을 지닌 구독자의 구미에 맞는 조작된 콘텐츠 개발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규제할 제도가 미비하고 제도권 언론처럼 법적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황색 언론들은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정치 중독자의 게토가 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사회적 역기능은 대통령제의 양당 정치가 직면한 정당 실패와 연관이 있다. 전통적인 양당제는 시민들의 요구를 다양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현상을 보면, 그 속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오랜 체제에 대한 다수 시민의 염증과 분노를 발견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도 이 정당 실패의 틈새에서 더욱 활발하게 되는데, 제도권 언론의 논점도 자연히 양당제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다당제하에서는 상대적으로 권위의 분산과 정치의 다양성이 보장되므로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작아질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에 참여한 시위대를 가리켜 “애국자들(patriots)”이라고 하여 12시간 계정 정지 조치를 받았지만, 계정 정지가 풀린 후에도 연이어 트윗을 올리면서 결국 영구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미국의 민주주의, 어디로 갈까?

트럼프의 친위 쿠데타 시도로 미국 체제는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지난 2001년의 9·11 테러는 미국 체제에 대한 외부의 충격이었다. 큰 충격이었지만 표피에 머무르는 충격이었고, 미국은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다시 체제를 추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친위 쿠데타는 미국 체제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충격이다. 이러한 내부의 충격은 외부의 충격 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만큼 상처도 깊고 치유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통합된 국가(United States)라는 미국의 환상이 깨졌다. 지금까지의 권력 경쟁은 통합된 국가의 비전을 함께 세워나가는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트럼프는 이 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예로운 패배자(good loser)의 전통을 받아들이기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추한 패배자(bad loser)의 신기원을 열었다. 트럼프의 치열한 부정선거 음모 캠페인으로 인해 미국 민주주의에 심각한 분열의 씨앗이 심어졌다. 공화당 지지자 중 52%가 아직도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생각한다는 로이터 통신의 조사가 이를 말해 준다. 앞으로 선거는 통합의 과정이 아니라, 더 심각한 분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공화 양당이 이른 시일 내에 정당 실패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내부 충격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세계대전 후 정리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확립’은 미국 외교의 축이었으며 해외 개입의 명분이었다. 비록 현실에서 미국의 목적은 냉정한 국익 추구였지만, 이 국익 추구조차도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라는 비전과 항상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1년 1월 이후, 그러한 명분은 힘을 잃게 되었다. 이제 미국이 개입하려는 국가는 “너나 잘 하세요”라고 응대할 것이다. 트럼프의 무분별한 친위 쿠데타 시도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소프트 파워인 민주주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지난 1월 6일에서 20일 사이에 그들이 믿었던 내용의 대부분이 거짓이었음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트럼프가 그들을 배반하고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서는 모습도 잘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싶어 할 것이다. 진실의 밀밭에 한 줌의 가라지가 있으면 그들은 용케도 그 가라지를 찾아 의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짓을 선택했던 이유가 진실을 대면하기가 두려웠던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을 달구었던 트럼프 현상은 많은 조어를 남기고 있다. 트럼프 현상 전반은 ‘트럼피즘’(Trumpism)이라 부르고, 트럼프의 극성지지자들은 ‘트럼퍼스’(Trumpers), 트럼프에게 기대를 가졌었으나 마침내 후회하게 된 것을 ‘트럼프그렛’(Trumpgret), 트럼프가 개발한 정치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파를 대안우파(代案右派, Alt-right)라 부르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적 개신교는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천명했다가 의문의 일패를 당한 처지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하나님 나라보다는 극우 진영이 차려놓은 반동성애 캠페인과 당파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혔던 결과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만큼이나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도 타격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미국 시민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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