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이 지난 반세기 동안 무어의 법칙을 지키며 발전해 왔다면, 인공지능은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 발전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게 되었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측정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 방법은 인공지능 모델 하나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컴퓨터 연산량을 측정해보는 것이다. (본문 중)

김상범(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2016년, 알파고(AlphaGo)라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일이 있었다. 이 일 이후로 인공지능은 공학자와 기업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반도체 기술 역시 과학기술, 경제, 국방 및 국제 정세 등 굵직한 주제들과 연결되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은 1900년대 중반에도 존재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새롭지만은 않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은 왜 최근에 대중들로부터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되었을까?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 모두 그 발전 속도에 답이 있다. 먼저, 반도체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법칙이 있다. 바로 ‘무어의 법칙’이다. 고든 무어는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창업자 중 한 명이다. 무어는 1965년 당시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매년 같은 면적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대략 2년마다 2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년에 2배씩 증가하는 속도가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2년에 2배씩 증가하는 일이 20년 동안 계속된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증가분이 무려 1,000배가 된다. 40년이면 백만 배, 60년이면 십억 배가 된다.

이와 같이 놀라운 증가 속도를 인식한다면, 다음으로 생겨나는 핵심 질문은 ‘무어의 법칙이 지속 가능한가’이다. 즉, 반도체 기술의 빠른 발전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무어의 법칙은 최초 제안된 시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무려 5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1970년에는 우표 크기만 한 반도체 칩 안에 대략 1천 개 정도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었지만, 2020년에는 같은 면적 안에 100억 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기술은 그 예가 흔하지 않다. 이런 발전 속도는, 자동차 기술로 말하자면, 지금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가 50년 후에는 천만 배 빨라져 시속 10억 km로 질주한다는 말이다. 이런 자동차를 한 시간 동안 타고 달리면 지구 둘레를 2만 5천 번 돌 수 있다.

반도체 기술이 지난 반세기 동안 무어의 법칙을 지키며 발전해 왔다면, 인공지능은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 발전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게 되었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측정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 방법은 인공지능 모델 하나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컴퓨터 연산량을 측정해보는 것이다. 인공지능 모델의 성능은 결국 연산량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분야 연구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연구소 중 하나인 OpenAI가 201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공지능 모델 한 개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연산량이 2012년 이래 3.4개월마다 2배씩 증가했다고 한다. 이 속도는 앞서 소개한 2년에 2배씩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과도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이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 속도를 실감할 수 있는 예가 한 가지 더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경합한다는 소식이 세간에 퍼졌을 때, 다수의 바둑 애호가들은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상했다. 이세돌 9단과 시합하기 불과 5개월 전에 알파고가 다른 프로 기사와 둔 기보를 바탕으로 볼 때, 알파고는 아직 이세돌 9단을 이길 실력이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불과 5개월 만에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길 실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알파고는 단시간에 수없이 많은 기보들을 학습함으로써 계속해서 바둑 실력을 향상시켜 나갔다. 알파고가 5주 동안 살펴본 기보의 수가 무려 16만 개라고 한다. 기보 학습을 통해 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알파고는 또 다른 알파고와 바둑 시합을 한다. 두 실력자가 겨루다 보니 치열한 승부가 많이 발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알파고는 그 실력이 더욱 향상된다. 알파고가 자신과의 시합을 수행한 횟수가 무려 128만 번이라고 한다. 아무리 의지가 굳은 사람이더라도 이러한 강도의 훈련을 견뎌낼 방도는 없다.

인공지능이 이러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의 성능 향상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저절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컴퓨터를 통해서만 작동하는데, 결국 컴퓨터의 두뇌는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낙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기술의 지속적 발전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반도체 기술이 2배 발전하면 인공지능 기술은 자동적으로 2배 향상될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향후 한 국가의 종합적인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인공지능 기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도체 기술에서 앞서야 한다고 본 것이다. 미국의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 박사를 비롯하여 의회, 국방부, 상무부에서 임명한 15명의 권위 있는 전문가로 구성되었는데, 이 위원회에서 발간된 보고서는 인공지능 기술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경쟁국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좋은나무>도 이미 여러 차례 다루었듯이,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사회와 개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 속도는 기술 발전으로만 놓고 보면 괄목할만한 성과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인공지능 기술을 악용하지 않고 유익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관련 제도와 규범을 정립할 수 있도록 이를 위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우리 기독교인들이 큰 가능성을 가진 인공지능 기술을 선한 목적으로 적극 활용하여 사회의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역시 중요할 것이다.

 

함께 읽어볼 만한 글

 

김상범, “인공지능 기술의 현황과 전망”, <개혁정론>, 2021. 4. 26.

손화철, “교황청이 제안한 인공지능의 윤리”, <좋은나무>, 2020. 3. 16.

손화철, “인공지능 면접은 과연 공정한가?”, <좋은나무>, 201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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