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빅히트가 하이브로 이름을 바꾸고 코스피 상장 기업이 된 이후로, BTS의 활동이 변했다. 외국인 작사, 작곡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해외 음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주로 영어 가사로 된 노래를 불렀다. 덕분에 해외에서 BTS의 인기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지만, 이전과 같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잠시만) 안녕, BTS.

 

2022년 6월 14일, 9년간의 활동 끝에 BTS가 잠정적 그룹 앨범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세간의 집중을 받았던 왕성한 활동 탓에 그들의 발표는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멤버들의 군 복무, 소속사인 하이브의 코스피 상장과 세무 조사 등 BTS가 감당해야 할 내외부적 문제들은 아이돌 가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 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BTS의 활동 중단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진짜 이유는 유튜브 영상에 담긴 멤버들의 속마음이었다.

 

케이팝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

 

하이브의 전신이었던 빅히트는 기획사와 아이돌의 관계에 있어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멤버를 구성하고, 앨범을 제작하고,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소속 가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일정 이상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 빅히트의 전략이었다. BTS의 멤버들이 작사, 작곡,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 노래하고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아이돌 가수 기획사들과 차별성이 있는 빅히트의 운영 방침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빅히트가 하이브로 이름을 바꾸고 코스피 상장 기업이 된 이후로, BTS의 활동이 변했다. 외국인 작사, 작곡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해외 음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주로 영어 가사로 된 노래를 불렀다. 덕분에 해외에서 BTS의 인기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지만, 이전과 같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세련된 공허함이랄까? 멤버 RM도 당시의 음악을 통해서는 BTS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라고 말한다. 아티스트와 상품이라는 아이돌 가수의 역설적 존재 양식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BTS의 성장을 도왔던 빅히트는 코스피 상장 기업 하이브로 전환함과 동시에 BTS의 (해외) 시장 경쟁력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추진함으로 결국 BTS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말았다.

 

알지만 모르는 척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빅히트였기에 BTS가 지난 9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요계의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화려한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 그들의 ‘노력’이라는 이름 뒤에 도사리고 있는 청소년 인권의 억압과 노동력 착취를 우리는 정말 몰랐을까? 이 모든 것을 승자독식의 경쟁 속에서 소속 가수들의 상품성에만 몰두하는 기획사와 그것을 효과적인 비즈니스의 수단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한국 가요계만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오늘날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을 육성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이미 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가요계에 자리 잡았다. 물론 이전에도 자신의 이모였던 한백희에 의해 중학생 때부터 7년간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던 가수 김완선 씨의 사례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이수만의 기획사 SM을 통해 도입되고 발전하였다. 소위 ‘인-하우스’(소속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연습생들이 합숙 생활을 하며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고 이후 활동을 하는 것), 인큐베이팅(아이돌 가수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활동까지 회사가 정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는 시스템)과 같은 기획사 주도의 관리 체계가 어린 나이에 가수를 꿈꾸는 이들이 성공한 아이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일 수 있다. 아니, 효과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기획사의 의도에 맞는 가수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BTS ⓒHYBE.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어린 나이 때부터 세상과 격리된 채 합숙 훈련을 하고, 휴대폰이나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등의 통제를 받으며, 지독한 체중 감량과 성형과 같은 인위적 수단까지 동원하는 상품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인간적 환경에서 그들은 “연습생”이라 불리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통과하고 데뷔를 하게 되더라도, 촌각을 다투는 활동 일정을 감당해야 한다. 육체적 노동뿐 아니라 방송국, 선배들, 기획사, 제작자, 팬들이 토해내는 감정까지도 소화해야 하는 감정 노동 역시 그들의 몫이다. 근래에 들어서야 아이돌 가수들의 마음이 기획사의 관리 항목에 들어갔다고 하니, 그간 아이돌 가수들이 받아온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긴, 얼마 전 한 방송에서 김완선 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활동을 하던 때는 이미 (오랜 훈련 기간과 통제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었던 상태였다고.

 

문제는, 이미 부작용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러한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스스로 바꿀 이유가 없다. 가장 효과적(경제적)으로 아이돌 가수를 상품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며, 스스로 이 상품화의 과정에 뛰어들겠다는 지원자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윤리와 도덕을 따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돌을 소비하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시스템을 바꾸기 원할 때는 소비할 상품이 없을 때뿐이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들은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장르도 다양하다. 상품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 변화를 요구할 동기가 없다. 조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조차 “그렇게 가혹한 과정이라면 하지 않으면 될 것”이라던가 “성공한 아이돌 가수로 얻는 것이 있다면 버텨야 하는 과정” 정도로만 이야기한다. 결국 효과, 합리성, 성장만을 추구하는 이 사회의 계산적인 논리는 가수가 되기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입을 틀어막고, 그들의 마땅한 권리를 위해 드는 손을 끌어내린다.

 

BTS의 활동 중단은 도저히 몰랐던 일일 수 없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의 가혹한 활동 스케줄 역시 몰랐던 일일 수 없다. 이 시간에도 연습실과 합숙소에 갇혀 데뷔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연습생들의 피, 땀, 눈물도 몰랐던 일일 수 없다. 그저 모른 척해 왔을 뿐이다. 찾아보니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비인간적 면모에 대한 비판의 글은 이미 21세기 초반부터 등장했다. TV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에 환호하는 목소리만 보내지 않고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았더라면 지금 그들이 겪는 고통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 사회의 부조리에는 체념한 듯, 원치 않으면 떠나라는 식의 시선만을 던지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지속시켜 온 것이 아닐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

 

물론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만연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 앞에 윤리적, 종교적 담론은 여전히 (옳은) 목소리 이상의 어떠한 존재감도 갖지 못한다. (기실 윤리나 종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마냥 화려해 보이는 아이돌 가수들이 관심의 대상이기는 할까 궁금하지만, 이것은 번외로 하자.) “기획사의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가요계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져야 한다”, “아이돌과 인디 사이를 메울 수 있는 가수들이 나와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는 일면 설득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의심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나마 아이돌 가수 연습생들의 처우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저 이상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 가요계와 기획사의 자정 능력이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여전히 ‘효과’를 보고 있는 그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뒤엎을 리는 만무하니 윤리와 도덕은 공허한 외침이 되어갈 뿐이다.

 

결국 부조리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가?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외에는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기대한다.1) 그런데 마침, ‘엑스 마키나’, 즉, 기계 장치로 구성된 무엇인가가 등장했다. 바로 가상 인간이다. 세밀한 디지털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외형에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능을 더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미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지, 루시, 수아 같은 몇몇의 가상 인간들을 보면 실제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들은 가수, 광고 모델,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들의 활동 무대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논리로만 따져 보더라도 오랜 시간 기획과 연습생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인간 아이돌에 비해 가상 인간들은 훨씬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다. 비록 가상 인간들의 외형이 모두 날씬한 20대 여성이라는 점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만, 어차피 그것이 시장이 원하는 모델이라면, 인간 아이돌들이 겪어야 하는 지독한 식단 관리나 성형 수술에 비해 덜 비인간적이라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기업의 또 다른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가상 인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나마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대체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해서이다. 그러니, 거대 기획사의 경영 논리나 시장 논리로 점철된 방송국과 가요계를 바꿀 힘이 없다면, 차라리 가상 인간을 응원하자. 가상 인간들이 아이돌 가수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 청소년들을 쥐어짜는 기획사들과 이들의 상품으로 장사하는 가요 시장은 변화를 맞게 되리라.

 

물론 위의 말은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40대 아저씨의 자조적인 농담이다. 그들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 윤리, 도덕적 논리만으로는 당장 그들을 합숙소에서 꺼내줄 수도, 휴대폰을 손에 쥐여 줄 수도, 매주 심리 상담을 받게 해줄 수도 없으니 안타깝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하루하루 불안한 그들의 인생을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등장에라도 기대를 걸 수밖에.

 


1) 옛 그리스 연극에서 종종 마지막 장면에 ‘기계 장치에 매달린 신’(Deus ex Machia: ‘기계로부터 나온 신’)이 갑자기 등장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되었던 데서 나온 표현-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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