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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주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며 수차례 공식적인 죄책 고백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침략 전쟁을 지원했던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사참배와 전쟁 협력 둘 다 잘못이겠지만 저는 신사에 가서 머리를 숙인 것보다 이웃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더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어두운 역사의 가치

 

그림자는 실체가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제가 대학원을 다닐 때 당나라 시대 경교의 한반도 유입설을 배웠는데요. 가능성은 높지만 들어왔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때 지도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로운 종교가 한반도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갈등이 생겼을 텐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마저 없다면 실체도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두운 역사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어두운 역사에는 또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밝은 역사를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소속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역사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에 대해서도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들을 잊지 않아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역사를 통해 지혜와 양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밝은 역사와 어두운 역사 중 어느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저는 압도적으로 어두운 역사의 편을 들겠습니다.

 

애국이란 이름의 전쟁 협력

 

일제 말 한국 교회는 일제의 침략 전쟁인 태평양 전쟁을 돕는 다양한 친일 행위를 했습니다. 1940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친일 통계를 발표한 정인과 목사의 말을 한번 볼까요?

 

우리 장로교 교우들이 다른 종교 단체보다 먼저 시국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성의껏 각자의 역량을 다하여 전승, 무운장구 기도, 전사병 위문금, 휼병금, 국방헌금, 전상자 위문, 유족 위문 등을 사적으로 공동 단체적으로 활동한 성적은 이하에 숫자로 표시되었습니다. … 애국반원들의 활동의 소식을 들을 때 … ‘이만하면’하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하는 기쁨”이라는 말은, 결국 다른 종교나 교파와 비교했을 때 실적이 매우 좋아서 뿌듯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다들 일제 말기에 무기 만든다며 교회 종이나 철문을 일제에 강탈당했다는 이야기만 들으셨겠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입니다. 이는 자신이 피해자일 뿐 잘못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구는 부적절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경안노회사』의 한 대목을 같이 보시죠.

 

비안면 화신교회는 쌍계교회로 합동하고 예배당을 200원에 매각하여 50원은 국방헌금을 하고 50원은 본교회의 부채금을 상환, 잔금은 본교회 수리비로 사용했다. 안동에서는 1942년 3월 15일에 동부교회와 안기교회가 안동교회로 통폐합되었다. 양교회의 대지와 건축 대금으로 14,000원을 받아 9,000원은 국방헌금으로 기부하고, 3,000원은 안동여자고등학교에 사용 그 나머지 2,000원만 본 교회에서 사용했다. 영주에서도 1942년 2월 6일 같은 절차를 밟아 영주 제일 교회로 합동하고 국방헌금을 했고….

 

종이나 철문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예 교회를 팔아서 통폐합하여 매각하고 그 대금을 전쟁에 사용하라고 국방 헌금이란 명목으로 일제에 바쳤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일제에게 강제로 빼앗긴 것도 분명 있겠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제의 전쟁과 정책에 협력한 부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41년에 있었던 한국 장로교 총회 30주년 기념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동양 평화를 확보하고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황국 부동(不動)의 국시다. 지금이야말로 적성 국가의 제국에 대한 도전적인 태도는 더욱 노골화되고 우리 국시 수행의 방해에 광분하고 있어서 시국의 긴박이 바로 절실한 것이다. 이 비상의 때에 홀로 기독교도만이 초연함은 단연 용인될 바 아니다. 우리들 장로파 36만 신도는 뭉쳐 하나가 되어서 불퇴전의 결의로써 국책에 순응하고 결전 태도를 실천 확립해서 시한 극복에 정신(挺身)할 것을 기한다. 소화 16년 11월 22일 조선야소교장로회 총회장.

 

저는 이 글에서 민족이니 친일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며 수차례 공식적인 죄책 고백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침략 전쟁을 지원했던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사참배와 전쟁 협력 둘 다 잘못이겠지만 저는 신사에 가서 머리를 숙인 것보다 이웃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더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히노마루 부채

 

오늘 보여 드리는 히노마루 부채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전선에 나가 있는 군인들을 위해 후방에서 만들어서 보낸 물건입니다. 더위를 식히는 용도였습니다. 이 부채는 국방부인회에서 제작해 헌납한 것이며, 앞면에는 일장기가 뒷면에는 ‘국방 부인의 노래’와 ‘총후의 꽃’이라는 두 곡의 노랫말이 적혀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소개했던 홍이표 선교사님이 일본에서 구해 와서 기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히노마루 부채는 한국 교회가 전쟁 지원품으로 열심히 헌납한 물품 중 하나입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1942년 7월 2일 자 「기독교신문」을 보면 원산에서 기독교연합회가 주최한 예배 중 히노마루 부채 헌금이 있었다고 하며, 4월 28일 자 「매일신보」에는 양주삼 목사가 매일신보사에 들러 부채 1천 개의 대금을 기탁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5월 22일자 「매일신보」에는 “적성의 히노마루 부채 신의주서 만본 헌납: 야소교도들 애국의 열정”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뒷부분을 같이 살펴볼까요?

 

귀사에서 히노마루 부채를 헌납한다는 사고(기사)를 보고 의산노회 교직자 혁신회에서는 전교도의 헌납을 꾀하였습니다. 세간에서는 기독교도들은 찬송가나 부르고 기도나 하는 줄 알지만 우리들은 신앙보국이라는 큰 깃발 밑에서 국책에 순응하려 합니다. 귀사의 이 헌납 운동은 실로 더운 지대에 출정한 육해군 장병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을 알고 그나마 1만 본을 헌납한 것입니다. 이 헌납하는 부채에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붉은 신앙이 있은 것을 특별히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신앙보국”, “붉은 신앙”이라는 말이 결코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이 굳이 이 히노마루 부채를 전시해 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가 언제나 전쟁의 가장 반대편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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