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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영화제는 세계 난민의 날(매년 6월 20일)을 기념하여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9회를 맞는 난민 영화제는 지난 6월 22일 압구정 CGV에서 “오늘의 나, 내일의 우리”라는 주제로 열렸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우리는 수많은 단절을 겪고 그에 익숙해졌다. (중략) 특별히 난민들에게는 더욱 차갑고 혹독한 시기였다. 난민 영화제는 ‘불쌍한 난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고립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다가가 ‘우리’가 되기를 말하고 있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그럼에도, 영화제

 

올해는 많은 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영화제에게 유난히 가혹한 해인 듯하다. 올해 들어 지역 영화제에 대한 국가의 지원 예산이 전액, 국내외 영화제에는 50%가량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영화제들이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개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영화제들이 영화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영화제를 살리고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것은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화와 사람,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극장가나 OTT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영화들을 더 빨리 만나게 되기도 하고, 운이 좋다면 영화 관계자나 출연자들의 영화 이야기나 다양하고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영화를 사랑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축제이자 인연의 장인 셈이다. 우리에게 영화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닿을 때 살펴보기로 하고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화제 중 하나인 ‘난민 영화제’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9회 난민영화제 포스터 ⓒKROEFF   https://www.koreff.org

 

오늘의 나, 내일의 우리

 

난민 영화제는 세계 난민의 날(매년 6월 20일)을 기념하여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9회를 맞는 난민 영화제는 지난 6월 22일 압구정 CGV에서 “오늘의 나, 내일의 우리”라는 주제로 열렸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우리는 수많은 단절을 겪고 그에 익숙해졌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회와 시작의 격차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채로 낯선 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되어 고립은 깊어지고 새로운 만남이나 서로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 한층 어려워졌다. 특별히 난민들에게는 더욱 차갑고 혹독한 시기였다. 난민 영화제는 ‘불쌍한 난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고립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다가가 ‘우리’가 되기를 말하고 있다.

 

(좌)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 (우) 제9회 난민영화제 섹션1 포스터 ⓒKROEFF

 

이번 난민 영화제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담아낸 영화들을 세 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상영했다. 첫 번째 섹션의 상영작은 <나의 올드 오크>(2023)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미안해요 리키>(2019) 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이러한 비극을 만든 사회적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보여준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이다.

 

영국의 한 폐광촌 마을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의 주인인 TJ와 내전을 피해 이 마을에 오게 된 시리아 난민 야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과거의 영광이 빛바랜 지 오래된 마을의 주민들은 어느 순간 등장해 유난히 눈에 띄는 난민들을 불편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정부가 난민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말하지만, 결국 그들을 받아들이고 위험부담을 안는 것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 동네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처참하게 떨어진 집값이 난민들로 인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오래된 커뮤니티에 내세울 것 없는 이방인이 가게 되었을 때 으레 겪게 되는 갈등들이었다. 그러나 영화서는 이러한 막연한 불안과 갈등을 해결할 방안으로 밥(식사)을 내세운다.

 

동네 주민들이 여유롭고 넉넉한 상황이었다면 난민들을 좀 더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현실의 문제 앞에서 경계심과 불안이 커지는 것을 어찌 나쁘게만 볼 수 있을까. 난민들 또한 마지못해 고향을 떠난 피해자이자 약자이다. 다시 말해 이 갈등에서 모두가 ‘악인’이 아닌 ‘약자’일 뿐이다. 올드 오크의 낡은 뒷방을 고쳐 누구나 와서 함께 같은 밥을 먹게 되고 결국에 모두가 같은 사람이자 같은 처지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시골의 늙은 펍 주인과 난민 소녀가 풀어가는 과정을 보며 갈등과 소외 문제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영화이다.

 

(좌) 영화 <사마에게> 포스터, (우) 제9회 난민영화제 섹션2 포스터 ⓒKROEFF

 

두 번째 섹션에서는 <사마에게>(2019)를 상영했다. 개인적으로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었던 계기가 된 영화였기에 더욱 인상 깊은 영화였다.1) 난민들이 난민이 되기 이전에 자국에서 어떤 시민이고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를 보여 주는 이 영화는 시리아 알레포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와드가 든 카메라를 통해 아름다운 시리아가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담아냈다.

 

와드는 의사인 함자와 결혼하고 딸 사마를 낳게 된다. 와드는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에 참상과 부조리함을 알리고 함자는 무너진 건물 속에서 사람을 구하고 치료한다. 폭격과 공습 속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사마는 어른들도 두려움에 벌벌 떠는 폭발 소리에도 울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주변 동료들이 한순간에 몰살당하는 순간까지도 시리아를 지키던 그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시리아를 떠나게 된다. 와드는 위험 속에서도 왜 그들이 시리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는지, 사마가 태어난 조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사마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통해 난민들이 그동안 많은 미디어와 정치인들이 그려냈던 것처럼 다른 나라를 위협하고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엄연한 한 나라의 시민이자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 온 전쟁 피해자였음을 보여 준다.

 

제9회 난민영화제 영화 <사마에게> GV 장면, photo by 최주리

 

특별히 영화 상영 후에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와드 알-카팁 감독과 헬프 시리아의 압둘 와합 사무국장이 자리한 GV(Guest Visit)에 참석해 시리아의 현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와드 가족은 현재 터키를 거쳐 영국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으며 둘째 딸을 낳았다고 한다. 700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고 시리아는 여전히 인권 유린이 만연한 상태이다. 와드 감독은 시리아의 전쟁은 시리아 시민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정권 측과 시리아인들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싸움이기 때문에 ‘내전’이라는 단어는 알맞지 않다고 말했다. 2023년 초에 튀르키예ㆍ시리아 대지진 당시 국내에서 헬프 시리아 활동을 하던 압둘 사무국장은 튀르키예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이미 10년간 전쟁을 겪었던 시리아가 그렇지 않은 튀르키예에 비해 더 참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시리아에 지원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예멘 난민 사태 이후로 난민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고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시리아 난민들도 어려움을 겪었다가 요즘은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사회 서비스나 취업 등에 제한이 많고 비자 연장이 확실치 않아 불안정한 상태의 시리아 난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국내에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은 1,500여 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5-6명밖에 되지 않는 현실도 알 수 있었다.

 

(왼쪽부터) 영화 <도움의 색깔> 포스터, 영화 <청년> 포스터, 제9회 난민영화제 섹션3 포스터 ⓒKROEFF

 

세 번째 상영작은 <도움의 색깔>(2023), <청년>(2024)이다. <도움의 색깔>은 난민 고등학생이 한국인 고등학생과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어울릴 수 있는지를 다룬 영화이고, <청년>은 고등학교 안에서 국적과 배경은 다르지만 함께 <도움의 색깔>을 만든 청년 4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20살 내외의 청년들이 출연, 촬영, 연출, 각본, 편집 등을 직접 도맡아 제작한 <도움의 색깔>은 KBS 시사다큐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의 제작 지원을 통해 만들어졌다. ‘인싸’인 난민 고등학생 맥스가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싸’ 한국인 고등학생 영호를 도우려 한다는 스토리 또한 4주간의 짧은 제작 기간 동안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머리를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난민이라고 꼭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은 아니며, 난민도 우리에게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에서 쭉 자라온 청년, 방글라데시에서 와서 배우의 꿈을 꾸고 있는 청년, 한국인이지만 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된 청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거나 이방인과 살아가는 삶에 대한 생각을 다룬 <청년>에서는 한국 사회도 이제 더 이상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닌 다문화 국가로서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함을 지적했다. 세상을 더 넓고 열린 시각을 보고 싶음에도 그걸 막는 사회와 그럼에도 그런 사회를 바꾸어 나가고 싶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제9회 난민영화제 영화 <도움의 색깔>, <청년> GV 장면, photo by 최주리

 

이어진 GV에서는 출연자이자 제작진으로서 이 영화들을 통해, 사람들이 난민들을 그룹화하고 뭉뚱그려 바라보지 말고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들이 있었다. ‘난민’이라는 정체성 너머의 그 사람 자체를 볼 줄 아는 시선이야말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청년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책이나 영화를 내도 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둘 바꾸어간다면 우리 사회가 가진 색안경도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9회 난민영화제 전경,  photo by 최주리

 

 

난민 영화제에서는 상영과 GV뿐만 아니라 상영관 로비에서 난민 영화제를 함께 만들고 연대하는 난민 인권 단체들의 부스와 이벤트로 다양한 배경의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경험하고 대화하고 있었다. 난민 인권 센터, 한옥커즈, 피난처, 세이브더칠드런 등의 단체들의 부스를 통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과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의 활동들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식으로 머리를 땋아 주거나 난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과 단체를 후원할 수 있는 굿즈들을 팔고, 난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이벤트에 참여하면 굿즈를 주는 행사들을 통해 마음과 두 손까지 가득 채워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와 ‘우리’를 넘어서

 

이미 우리 사회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이웃이 되어 살고 있고 누구든 언젠가 이방인이 될 수 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외롭고 소외되고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같이 밥을 먹고 상대의 배경에 대해 알아 가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경계를 넘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때때로 영화는 생각을 바꾼다. 때때로 대화는 가치관을 바꾼다. 때때로 만남은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킨다. 영화와 대화, 만남이 열리는 곳인 난민 영화제에서 앞으로 다루게 될 담론들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각각의 ‘나’가 ‘우리’가 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공존하고 더불어 살지를 깊이 있는 무게로 모색하는 장으로 나아가기를, 새롭게 알아 가야 할 낯선 난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삶을 함께하는 이웃으로서의 난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피어오른다.

 


1) <좋은나무에> 실린 영화 <사마에게>의 리뷰는 다음 글에서 볼 수 있다. 최주리, “<사마에게>: 난민이 난민이 되기 전에는”. <좋은나무>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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