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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흐름에 따라 챌린지 문화에서 의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사회가 각박해져 감에 따라 미닝아웃의 시대에서 무민세대로 전환이 되었는데, 이것이 챌린지 문화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무민세대란 “의미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세대”라는 의미로 치열한 경쟁에 지치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보상이 따라 주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에 밀린 젊은이들이 더 이상 의미에 목을 매지 않게 된 현상을 의미한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그러니까, 왜?

 

챌린지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왜인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져, 딱 그 정도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왜인지 모를”은 관용적 표현이다.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으니까. 어울리지 않는 문화라는 말 이면에는 나이에 혹은 세대에 맞지 않는 문화라는 뜻이 숨어 있다. 나이나 세대에 맞는 문화, 맞지 않는 문화라는 선을 긋는 것이 매우 고리타분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오래된 기준이 은근한 영향력을 끼친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세상의 이해는 빨리 넓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이나 세대와 같은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에는 상당한 용기와 뻔뻔함이 필요하다. 챌린지를 알아도 모르는 척, 눈이 가도 관심 없는 척하는 나는 그런 용기와 뻔뻔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챌린지 문화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요구는 거절하지 못했다. 이 글을 핑계 삼아서라도 여러 챌린지 영상들을 보고,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왜 할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을 직면하면, 그 낯섦 때문에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경계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왜?”에 대한 답을 얻기 전까지는 챌린지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실 챌린지 문화에 대한 글들 – 대부분이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쓴 글 – 을 보면 필요 이상의 경계심과 그로 인한 비판적 태도가 보였다. 그런 자세야말로 한 세상에 공존할 수 없는 어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이번 글에서는 그런 해석이 아닌 다른 관점을 제시해 보고자 하는 의지마저 생겼다. 그러니까 이번 글의 진짜 목적은 “챌린지 문화를 바라보는 어른의 바른 자세”를 제안하는 것이 되겠다.

 

그러려면 먼저 챌린지 문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챌린지”는 어떤 사람이 특정 행동을 하고, 그것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인증한 후, 같은 행동을 할 사람을 지목하면, 지목을 당한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인증을 하고,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다. 챌린지 문화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예로 들면, 한 사람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행동을 한 후 다음으로 얼음물을 뒤집어쓸 사람을 지목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지목된 사람은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또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 한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같은 행동의 반복을 챌린지라고 한다.

 

 

미닝아웃과 무민세대

 

원래 챌린지 문화는 미닝아웃(가치소비) 문화의 일환으로 등장하였다. 미닝아웃이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생각이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종용하고, 그들의 치료를 후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미국의 ALS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재단에 100불을 후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얼음물을 뒤집어쓰고도 후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유명 인사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은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본의를 알리기에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후원을 통해 그 가치를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미국에서 시작된 챌린지였지만, 한국에서도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한국의 루게릭병 환자들을 후원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실제로 가수 션에 의해 국내 최초의 루게릭 요양병원 설립을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챌린지 문화에서 의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사회가 각박해져 감에 따라 미닝아웃의 시대에서 무민세대로 전환이 되었는데, 이것이 챌린지 문화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무민세대란 “의미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세대”라는 의미로 치열한 경쟁에 지치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보상이 따라 주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에 밀린 젊은이들이 더 이상 의미에 목을 매지 않게 된 현상을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가치를 드러내는 행위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이 당장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챌린지 문화도 점차 의미나 가치를 담고 있는 문화에서 그저 재미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요즈음 우리가 유독 “왜?”라는 질문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의 문화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의 챌린지 문화는 유행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거나, 인기 있는 소품을 모으고 인증하는 활동, 설문이나 게임을 하는 영상을 올리고 인증을 받는 식의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종종 챌린지 참여를 통해 경품과 같은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제품의 홍보를 위한 챌린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오늘날의 챌린지는 재미와 보상이 그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이렇게 살펴보고 나니, 챌린지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이 매우 허무하게 해결되었다. “왜”에 대한 답변은 “재미있으니까” 정도이다. 어쩌면 어떠한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고, 그것에 큰 의미를 도출하려는 태도 자체가 청년들의 문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그러한 해석의 결과는 기성세대의 삶의 경험에 근거한 관심, 아니 잔소리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챌린지 문화를 살펴보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청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것이 가장 현명한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젊은이들이 유행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소품을 수집하고, 게임을 하고, 그러한 활동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여 서로의 모습을 즐기는 것은 말 그대로 재미를 위한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문장에서 어떤 부정적인 뉘앙스를 느꼈다면 그 역시 기성세대의 태도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재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것은 매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다. 이 사회가 너무나 경직되어 있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사실은 기성세대라면 더욱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닐까. 그 부담이 켜켜이 쌓여 고스란히 아랫세대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 잠깐의 재미로나마 현실을 잊으려는 그네들의 지혜로움을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다르다 하여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21세기판 해학과 풍류를 아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집 한 채 마련하기가 불가능한 세상에서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는 청년들의 마음을 보라.) 자신들이 물려받을 세상에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를 비판하기보다, 재미를 찾고, 어떻게든 살아 나가는 그들에게 고마움도 느껴진다.

 

더 이상 그들이 즐기는 문화에 “왜”를 들이밀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면서, 같이 짐을 짊어지지도 않을 것이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무척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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