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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치의 시간이 다시 돌아와야 한다. 널리 구경꾼들을 모아 갈등을 해소하는 거대한 엔진이 다시 가동되어야 한다. 지금은 사법의 시간이지만, 이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정치의 장을 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법의 시간을 일부러 단축할 필요는 없지만, 정치 없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사람들이 이전의 길로 돌아가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본문 중)

 

천윤석(변호사, 기윤실 정치운동 전문위원)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 상황은 여섯 번 발생했다.1) 노태우 대통령 임기 시작 후 두 달 만에 시행된 제13대 총선에서 집권 민주정의당은 41.8%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3김이 이끄는 야 3당은 합계 54.8%의 의석을 차지하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소야대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평화민주당은 1/4에 미치지 못하는 의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정국을 주도했다. 결국 노태우 정권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3당 합당을 감행하여 정국의 지형을 여대야소로 바꿨다.

 

김대중 대통령은 소수당의 후보로 나서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번째 여소야대였다. DJP 연합으로 정권을 수립했기에 야당과의 의석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김대중 정권은 소위 “의원 빼가기”로 야당 의원을 영입하며 인위적으로 여대야소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된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근소하게 승리하고 DJP 연정이 붕괴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후반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첫 두 번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 여당은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를 만들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발생한 두 번의 여소야대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안 그래도 여당이 소수당인 상황에서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임기 초반 여당 내 분열까지 겪으며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반 실시된 제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1석 차이로 패배하며 여소야대 상황에 처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여소야대 지형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겪었다. 두 사람에 대한 탄핵 소추 사유와 경위, 결과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탄핵 소추의 배경에 여소야대 상황이 있었던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다섯 번째 여소야대는 문재인 대통령 집권 전반기이고, 여섯 번째 여소야대는 현 윤석열 대통령 집권기이다. 문재인 정권 전반기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의 힘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고, 남북 화해 국면을 주도하며 집권 초기 기록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1당이고 야권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제21대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임기 중반 이후에는 여대야소 상황을 연출했다. 여러모로 윤석열 정권과는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을 겨우 넘는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당선됐다. 그리고 임기 중반 실시된 제22대 총선에서도 압도적인 여소야대 상황이 유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을 겪은 대통령이다. 자연스럽게 앞선 네 번의 여소야대의 사례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두 번은 인위적인 여대야소였고, 두 번은 탄핵이었다.

 

당연히 제22대 총선 이후 윤석열 정권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권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야당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권이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를 만들 수는 없었다. 여당 의석이 108석에 불과하고 여야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야당과의 정치적 타협을 거부하는 기존의 기조를 유지할 경우, 탄핵이라는 선례가 아른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했다. 적어도 제22대 총선 이후에는 그래야 했다. 총선을 통해 민심이 확인된 만큼, 국정 기조를 바꿀 명분도 충분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제22대 국회 출범 이전, 윤석열 대통령은 14개 법률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했고, 두 차례의 국무위원 해임 건의를 무시했으며, 시행령을 통해 입맛에 맞지 않는 법률을 무력화했다. 국회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총선 이후에도 이러한 태도는 지속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22대 국회 출범 이후 5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려 11개의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국회를 국정 파트너로 보지 않겠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기존의 정치 문법은 의미를 잃었고, 극한의 대립만 남았다.

 

그런데 사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를 인정하지 않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국회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지칭하며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나섰다. 애당초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회 정치에 대한 소양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실제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얕은 이해를 여러 차례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12‧3 계엄 및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의 인식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정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사고의 핵심에는 “정치 부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에게 민주적으로 의사를 형성하는 과정은 무용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 본인이 곧 국가이고 본인을 반대하는 일체의 세력은 매우 불순하므로 처단해야 할 뿐이다.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야당은 억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애 버려야 하는 집단이다. 그에게 정치란 척결해 버려야 마땅한 괴물들이 활개 칠 수 있도록 하는 판을 깔아 주는 장치일 뿐이다.

 

12‧3 계엄 및 그 뒤에 발생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려면,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인식 구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래야 포고령 제1항이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12일 담화를 통해 “178회에 달하는 대통령 퇴진, 탄핵 집회가 열렸다. 거대 야당이 공직자 수십 명을 탄핵했고, 특검 법안을 27번이나 발의했다”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에게 대통령을 반대하는 것은 곧 국가를 반대하는 것이며, 의회를 무시하는 대통령에 맞서 의회가 견제 수단을 발동하는 것은 반국가 세력의 준동일 뿐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직 대통령의 정치 부정이 정치 실종을 낳는다는 데 있다. 정치의 단위에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이 극한으로 증폭되고 있다. 개별적인 이슈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버린다. 최정예 부대가 무장한 채 국회에 난입하여 의원들을 체포하려 하였어도, 그것이 ‘우리 편’이 한 행동이면 옹호해야 한다.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이라도, 그것이 ‘우리 편’을 대상으로 한 것이면 실탄 사격을 지시해서라도 집행을 저지해야 한다.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이 대통령의 파면을 원해도, 그 대통령이 ‘우리 편’이면 헌법재판소를 없애서라도 지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주권 침탈 세력”이라고 칭하면서 자신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을 물리적으로 막아 달라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정치가 실종된 세상에서 갈등의 축은 왜곡되고 폭력의 상한은 점점 높아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정치 없는 세상이 어떠한 모습인지 잘 보여 준다.

 

지금은 사법의 시간이다. 계엄이 터지자 수사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내란죄 수사를 하였고, 머지않아 형사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 수사 단계에서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의 의미에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린다. 헌법 재판소는 다시금 탄핵 심판 심리를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결국 정치의 시간이 다시 돌아와야 한다. 널리 구경꾼들을 모아 갈등을 해소하는 거대한 엔진이 다시 가동되어야 한다. 지금은 사법의 시간이지만, 이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정치의 장을 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법의 시간을 일부러 단축할 필요는 없지만, 정치 없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사람들이 이전의 길로 돌아가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정치를 실종시킨 것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 준 모습이 갈등을 대하는 새로운 표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 없는 세상은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1) 2008. 2. 25.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한 달 반가량 지난 2008. 4. 9. 시행된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였고,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종료일까지 여대야소가 유지되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여소야대 케이스에서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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