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이 원도심에 남기로 하고, 또 대전에만 머물기로 한 선택은 식물의 선택과 무척 닮았다. 당장의 이익을 좇아 이동하는 대신 함께 한 공간을 지키는 이웃과 건강한 관계 형성에 집중했다(김태훈, “성심당이 축적한 ‘관계’”를 보라). 심각한 화재로 경영자가 사업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을 때, 오히려 직원들과 시민들이 일어서서 성심당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마치 9할이 파괴돼도 나머지 1할로 회복하는 식물처럼 다시 일어섰다. (본문 중)
김태훈(작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성심당은 지독한 암흑기를 겪었다. 먼저 대전광역시청이 둔산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성심당이 있는 원도심에 공동화가 급격하게 일어났다. 원도심이 죽어가는 만큼 성심당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원도심에 남기로 한 선택
대부분의 사업체와 가게들은 시청을 따라 신도시로 자리를 옮겼다. 성심당도 따라갈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성심당이 원도심 대흥동에 자리하게 된 데는 속 깊은 ‘이유’가 있었다. 자녀들이 신앙 안에 머물게 하려고 창업주가 일부러 성당 종소리가 잘 들리는 곳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연찮게도 그곳 주소가 대흥동 ‘153’번지였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져 낚아 올린 물고기 마릿수와 같은 숫자. 성심당은 결국 원도심을 지키기로 했다. 성심당마저 떠난 대전 원도심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 문제가 불거졌다.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생이 1995년부터 벌인 성심당 프랜차이즈 사업이 2003년 끝내 부도를 내고 수십억 원의 빚을 남겼다. 2005년 1월에는 공장이 전소되는 대형 화재까지 발생했다. 사장과 가족은 사업을 접을 생각을 하고 건물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런데 이튿날 기적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뿔뿔이 흩어질 줄 알았던 직원들이 엄동설한에 모두 출근해 청소와 집기 정리를 시작했다. 어느새 누군가가 “잿더미 속 우리 직장 우리가 살리자!”라는 현수막을 만들어서 화재 현장에 내걸었다. 그을음을 씻어내고 중고 기계를 구매하며 재기에 나선 지 닷새 만에 빵이 다시 만들어졌다.
오전 8시 정각. 매장 문이 다시 열렸다. 제일 앞에 셰프 복장을 한 임영진 사장이 섰다. “안녕하십니까? 성심당입니다!” 목소리를 모아 힘차게 인사했다. 매장은 순식간에 손님들로 가득 찼다. 광고를 따로 한 것도 아닌데 손님들의 발걸음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골손님들은 일일이 직원들과 눈을 맞췄다. 손을 잡고 안아 주는 손님들도 있었다.
꼭 살아나야 한다.”
“예전처럼 다시 잘 돼야 한다.”
“대전에서 성심당이 없어지면 안 된다.”
대전에만 머물기로 한 선택
화재를 수습하고 6년여가 지난 2011년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롯데백화점 대전점 매장 기획 임원이 성심당을 찾아왔다. 프랑스 베이커리의 전통 브랜드 ‘포숑’ 매장이 철수한 자리에 성심당이 입점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포숑’은 롯데가 창업주 신격호의 외손녀가 들여온 브랜드로 전국 롯데백화점의 주요 지점에 입점했다가 실적 악화가 심화되고 대통령(이명박)까지 비판하는 분위기 속에서 막 철수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회장 외손녀가 직접 경영하던 매장도 적자에 시달리다 사업을 접은 자리에 성심당이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백화점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성심당도 이 프로젝트를 적임자를 찾으면서 매장 준비가 본격화됐다.
개장을 예고한 2011년 12월 16일 오전 10시 30분, 모두가 긴장 상태였다. 포숑이 철수하기 직전 하루 매상이 50만 원 수준이었다. 과연 그 수준을 넘을 수 있을까? 우려는 금세 환호로 바뀌었다. 문을 열자마자 성심당 매장 앞에 줄이 생겨났다. 백화점 직원들도 놀랐다. 2000년 대전 롯데백화점이 생긴 이래로 단일 매장에서 손님들이 줄을 선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날 성심당은 약 800만 원의 매상을 올렸다. 포숑보다 16배나 더 많은 매상이었다.
롯데백화점 본사도 놀랐다. 본사는 성심당에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1주일간 팝업 스토어를 열어 보자고 제안했다. 2013년 1월 14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매장 앞에는 ‘대전 명물 성심당 초대전’이라는 간판이 나붙었다. 오전 10시 반, 백화점 문이 열리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성심당 팝업 스토어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손님들이 불어나면서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그 끝이 지하 1층 매장을 휘돌아 지하도까지 이어졌다. 백화점 입구에 테마파크에서 봤음 직한 “고객님의 많은 이용으로 대기 시간이 약 1시간 30분 소요됩니다”라는 안내판이 내걸렸다. 1주일간 진행된 팝업 스토어는 1억 5,000만 원이라는 놀라운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롯데백화점과 성심당은 내친김에 팝업 스토어를 두 차례 더 진행했다. 그해 가을에 부산 롯데백화점에서, 이듬해 봄에는 다시 서울 소공동 본점에서 각각 열흘씩 행사를 열었고, 그때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이 경험은 롯데백화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유통업계의 정책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 일변도로 영업하던 관행에서 로컬 브랜드를 재발견하는 방식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이후 국내 유명 백화점에는 군산의 ‘이성당’이라든지 ‘논현동삼계탕’, ‘황남빵’, ‘서래냉면’ 같은 로컬 브랜드들이 좋은 길목에 자리 잡았다. 롯데백화점은, 물론 성심당의 서울 입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성심당은 사양했다. 임영진 사장의 부인인 김미진 이사는 이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대전을 벗어나 서울에 자리 잡은 성심당을 과연 성심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성심당이라면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 세금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돈은 서울에서 훨씬 많이 벌 거예요. 팝업 스토어를 해보니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그러나 돈을 많이 버는 대신 우리의 본질은 잃을 수도 있어요. 대신 성심당이 계속 유명해지면 성심당 때문에라도 대전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겠죠. 그게 대전 시민에게 좋은 것 아닐까요?
식물이 주는 영감
5억 년 전 지구상의 생명은 동물과 식물로 갈라졌다. 동물은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선택을, 식물은 뿌리내려 머무는 선택을 했다. 얼핏 이동하는 쪽이 유리해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구 생물량의 80퍼센트 넘게 차지하며 이 별의 진정한 주인이 된 쪽은 식물이다.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식물에겐 약점이 되지 않았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번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먼저, 식물은 기관을 따로 두지 않았다. 동물은 뇌로 생각하고 허파로 숨 쉬고 심장으로 살아간다. 이들 주요 기관 중 하나가 멈추면 전체가 죽는다. 식물은 특정 기능을 담당할 기관 대신 온몸으로 숨 쉬고 온몸으로 듣고 온몸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온몸에 분산시켜 둔 덕분에 9할이 잘려 나가고 1할만 남아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둘째, 식물은 숲을 이룬다. 도망칠 수 없기에 이웃과 깊이 연결하고 힘을 합친다. 나무 한 그루가 벌레 공격을 받으면 주변 나무들이 함께 방어 물질을 내뿜는다. 뿌리를 통해 물과 양분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 민감한 정보를 공유한다. 셋째, 거의 모든 에너지를 태양과 물로부터 얻는다. 동물처럼 다른 개체를 ‘섭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지 않는다. 이웃 개체를 거의 공격하지 않기에 거대한 ‘협동’ 또한 가능하다.
성심당이 원도심에 남기로 하고, 또 대전에만 머물기로 한 선택은 식물의 선택과 무척 닮았다. 당장의 이익을 좇아 이동하는 대신 함께 한 공간을 지키는 이웃과 건강한 관계 형성에 집중했다(김태훈, “성심당이 축적한 ‘관계’”를 보라). 심각한 화재로 경영자가 사업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을 때, 오히려 직원들과 시민들이 일어서서 성심당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마치 9할이 파괴돼도 나머지 1할로 회복하는 식물처럼 다시 일어섰다.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이미 살아온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를 것이다. 그 방향성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그래서 불안과 공포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다. 이들 정서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관계는 파괴되고 고립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마음 붙일 곳 잃은 파편화된 존재들은 너무 쉽게 구별 짓기와 혐오에 사로잡힌다. 1020 세대의 극우화와 한국 개신교의 극우화가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한 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디며 서로를 의미 있게 연결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기왕이면 교회들이 한 지역에 뿌리내리고 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성심당은 70년째 대전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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