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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짜 공포는 권력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궁 안의 구조와 현실이며, 귀는 그저 그 공포를 극대화하는 비체에 불과하다. 아마도 대중이 <동궁>을 포함한 요즈음의 한국 오컬트 장르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공포보다 더한 공포를 몰고 오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으니 말이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지난 7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동궁>은 귀신을 보고 귀의 세계에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구천과 귀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생강이 궁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오컬트 장르의 드라마이다. 세자들이 연달아 목숨을 잃고 마지막 남은 세자마저 원인 모를 병에 걸리자, 왕은 구천을 납치하듯 궁으로 데려오고 생강을 붙여 일을 해결하도록 한다. 하지만, 궁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은 모두 깊은 원한이 맺힌 원혼들에 의해 일어났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귀의 세계로 들어가 원귀들의 원한을 풀고, 그 배후에 있는 악귀를 물리치는 위험을 불사해야 한다. 이 일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구천은 갖은 꾀를 부려가며 궁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생강의 결연한 의지에 동화되어 결국 궁에 도사린 위협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NETFLIX

 

첫 화를 보자마자 내뱉은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한국판 <콘스탄틴>! 영상, 음악, 주제, 캐릭터까지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묘하게 영화 <콘스탄틴>을 생각나게 했다. 본떠서 만들어서 별로였다거나, 지나치게 닮아 있어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콘스탄틴>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던 사람으로서 이 작품의 등장은 매우 반가웠다. 비슷한 콘셉트를 한국의, 그것도 조선(?) 시대 배경으로 풀어낸 것도 신선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전통적인 오컬트 장르물이라고 보자니, 그것은 또 아니었다. 일전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관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오컬트 장르물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원한이 남은 망자가 원귀가 되고, 원귀의 출몰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이로 인해 원귀와 인간 사이의 갈등이 생기지만, 결국 원귀가 직접 복수를 하거나 무속인과 같은 등장인물의 도움을 받아 해원을 하여, 원귀가 저승으로 가거나 소멸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초월적인 힘을 다루는 등장인물은 주로 원혼이 소원(원한을 호소하는 행위)을 하는 대상이거나, 해원을 돕고, 진혼(혼을 달래는 행위)을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와 비교해 보았을 때, <동궁>은 전형적인 한국식 오컬트 장르의 공식에서 확실히 벗어나 있었다. 글의 서두에서 <콘스탄틴>을 언급한 이유도 그것이다. <동궁>의 주요 서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의 등장, 그리고 악귀와의 무력 대결을 통해 이를 소멸시키려는 인간의 도전이다. 이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악한 존재, 그들의 일방적인 폭력과 저주,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종교적인 힘을 사용하는 인간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는 서구의 오컬트 장르와 매우 닮아있다. 다만 시대적 배경을 옛 조선과 비슷한 왕정 시대로 설정하고 있기에 화면을 채우는 이미지가 흡사 한국의 전통 오컬트 서사를 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게다가 <동궁>은 지금까지 한국의 오컬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민간 설화 속 영적 존재들을 과감하게 활용하여, 전통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였다. 예를 들어, 극 중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귀여운(?) ‘꺼먹살이’는 귀매인데, 이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종교 이야기에 오래전부터 등장하는 악귀 중 하나이다. 인과나 한에 의해 만들어진 귀신과 달리 귀매 혹은 망이라 불리는 이 존재는 자연에 깃들은 영험한 기운이 인간들이 발산하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의해 오염되면서 만들어진 초월적 악이다. 인간은 액땜이나 한풀이로 귀매를 없앨 수 없으며, 그저 피해 다닐 수밖에 없다. 귀매의 등장으로 극의 서사는 한층 더 복합적인 얼개를 갖추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동궁>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한국 오컬트 장르물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다.

 

분명 <동궁>은 이전까지의 한국 오컬트 작품들과는 또 다른, 어찌 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가까운 형식의 작품이다. 동‧서양의 혼종적인 오컬트,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 연출, 독특한 캐릭터의 등장 등은 요즈음의 오컬트 장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중의 관심, 특히나 한국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기에는 무리가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유독 한국에서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이유도 한국적인 배경을 갖추고는 있지만, 서사의 흐름이 한국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궁>의 제작진은 이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한국의 대중이 반응할 만한 서사를 갖추어 설득력을 높였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호러 장르 영화나 드라마는 대부분 비슷한 서사의 흐름을 보여 준다. 보통 시작 단계에서는 무섭고 잔혹한 비현실적 존재들―예를 들어 <동궁>의 악귀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이 얼마나 인간의 실존에 위협이 되는지를 보여 주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극이 중반 이후를 지나면 무섭고 잔혹한 비현실적 존재들보다 더 잔악무도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악귀와 같은 비인간적 존재들은 대부분 이 악인들로 인해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악인들은 자신의 욕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이 위협적인 존재들이 세상에서 활개를 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들은 그것들이 만드는 혼란을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에 바쁘다. 결국 모든 피해는 힘이 없는 약자들의 몫이다.

 

<동궁>의 서사도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악귀, 원귀, 귀매 등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극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극이 흘러갈수록 진정한 공포를 유발하는 주체는 궁 안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을 향한 탐욕, 그리고 그것에 사로잡힌 권력자들이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이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동안, 그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희생은 원귀로, 악귀로, 저주로 궁 안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목까지 죄게 된 것이다. 결국 진짜 공포는 권력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궁 안의 구조와 현실이며, 귀는 그저 그 공포를 극대화하는 비체1)에 불과하다.

 

아마도 대중이 <동궁>을 포함한 요즈음의 한국 오컬트 장르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공포보다 더한 공포를 몰고 오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으니 말이다. 액땜이나 한풀이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공포,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같은 종이 유발하는 그것은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더욱 무자비하며, 더욱 폭력적이다. 이런 이야기가 몰입감을 조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사회가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폭력적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아무리 민주 사회니 법치 사회니 해도, 여전히 사회는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며, 냉소적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힘을 가진 이들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 살아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세상은 힘이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니, 오직 왕좌를 지키기 위해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귀신에게 해를 입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동궁> 속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시청자들의 현실엔 구천이 없고 생강이 없을 뿐이다. 과연, 기독교는, 교회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비체(abject)란 주체도 객체도 아니며 사회적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배제하고 밀어내야 하는 더럽고 두려운 대상을 말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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