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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새마을 운동 교육을 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농군학교는 새마을 운동의 모태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시작된 범국민적인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인데, 이 운동의 정신적인 모델이 바로 가나안 농군학교의 의식 개혁 교육이었습니다. 1962년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의식의 변화, 근면, 자조, 자립, 그리고 빈곤의 퇴치를 추구하는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육 방향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것이 새마을 운동이라는 국가사업으로 발전한 것입니다.(본문 중)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
5번의 이상촌 개척
김용기 장로님은 총 다섯 번 이상촌을 개척하십니다. 지난 글에서 그 시작을 말씀드린 봉안에서의 이상촌 건설(1931-1945)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삼각산 농장(1946-1950), 세 번째는 용인 에덴향(1952-1954), 네 번째 하남 가나안 농장(1954-2014), 다섯 번째는 원주 신림동산(1973-)입니다. 유명한 가나안 농군학교는 1962년 가나안농장 안에 제1 가나안 농군학교가 설립되었고, 1973년 신림동산에 제2 가나안 농군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럼, 이상촌에서는 무엇을 했을까요? 시대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변하지만 첫 번째 이상촌인 봉안을 살펴보겠습니다.
봉안의 주택은 검소하면서 실용적으로 지었고, 의복도 사치를 금했습니다. 일하기 편한 작업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주식은 쌀보다는 잡곡과 고구마 등을 먹게 했는데, 부족한 영양은 집집마다 염소를 키워서 염소젖으로 보충했습니다. 그리고 농기구는 마을의 공동 비품으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가정에서 의무적으로 가축을 키우고 과수원의 나무들 사이에는 고구마를 심어서 땅을 놀리는 일이 없게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일상의 생활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공동체 유지를 위한 여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상부상조를 위한 협동조합, 소비조합, 공제상호조합 등이 운영되었는데, 소비조합에는 모든 가구가 의무적으로 가입한 다음 생필품을 공동 구매해서 최대한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결속과 사상적 연대감을 위해서 유치원에서부터 신앙 교육을 하여 하나님, 이웃, 그리고 흙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덴마크의 그룬트비가 강조한 삼애 정신입니다. 이상촌의 추구 방향은 이상촌만이 아니라 인근 마을의 이웃들도 함께 잘 살고 발전하도록 도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온몸이 간인 개척자
그런데 이런 개척자로서 살아가다 보니 아무래도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부딪히는 것도 피할 수 없었죠. 이럴 때 많은 개척자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사업이나 운동을 유지 혹은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와의 충돌을 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용기 장로님은 충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인 아두를 품에 안고 혼자서 조조군 진영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고 조조가 “저놈은 온몸이 간덩어리구나”라고 담력을 칭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김용기 장로님도 온몸이 간인 부류에 속하는 분입니다.
일제 말기로 가면서 민족의식이 강했던 김용기 장로님과 일제 당국의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심각한 부분은 신사 참배를 비롯한 일본 신도식 종교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의 회고록을 한번 보시죠.
“(엔도 정무총감이) 내게 말하기를 한 가지 소원만 말하면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정무총감의 말에 나는 서슴지 않고 그에게 요구했다. ‘신사 참배와 동방 요배를 내게 강요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이 당돌한 요청에 엔도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렇게 미소 짓고 있던 엔도가 일순간 웃음을 싹 거두더니 내게 불쑥 한마디 했다. ‘굳이 못 하겠다는 이유는?’ … 당신들은 동방 요배를 강요하지만 알고 보면 천왕께 욕을 하라고 지시하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선 사람치고 어느 누가 동방 요배를 하며 욕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 이렇게 말하자 엔도는 껄껄 한바탕 웃더니 수행원을 불러 다음과 같이 명령하는 것이었다. ‘김 장로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도록 하라!’ 엔도의 이 명령 한마디로 한때나마 나는 숨을 다소 쉴 수가 있었다.”
정무총감은 조선 총독을 보좌하면서 각 부처의 사무를 감독하는 자입니다. 조선총독부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사람 앞에서 “나 동방 요배 안 한다. 나 신사 참배 안 한다”라고 대놓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기 싫었던 청년을 숨겨주거나, 교회 종을 바치라는 명령에 끝까지 저항하며 마을의 놋그릇과 수저를 협상 용품으로 삼아 교회 종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앞에서 주식을 쌀이 아니라 잡곡과 고구마로 삼았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일제의 쌀 공출을 피하기 위해 아예 논농사를 줄이고 옥수수, 고구마, 밀을 재배한 것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가나안 농군학교에 온 박정희 대통령이 식사 자리에서 빵을 먹으려고 하자 장로님이 ‘여기선 기도 먼저 하고 밥을 먹는다’라며 식사를 제지하고 식사 기도를 했다는 일화가 아주 유명합니다. ‘네가 밖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여기서는 내 방식에 따라라.’ 물론 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상대가 2년 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면 어떨까요. 정말 온몸이 간덩어리였던 분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와 새마을 운동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오늘 보여드리는 유물은 가나안 농군학교의 주소록입니다. 우리 문화관이 골동품상(?)에게서 구입하였습니다. 1985년 5월에 제1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있었던 직능 지도자 새마을 교육 제39기생들의 주소록인데, 흥미로운 부분은 부동산 소개업을 하는 분들만 모아서 새마을 교육을 한 것 같습니다. 직능별 교육이야 늘 있는 일이겠지만, 저는 복덕방 아저씨들만 모아서 교육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제게 남았던 복덕방 아저씨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하루 종일 담배 피우면서 장기를 두는 사람이었거든요. 지루하면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 드셨죠. 이때 커피 두 잔을 시키면 화려한 머리띠를 한 여성분이 쥬시후레시껌을 씹으며 보온물통과 커피를 들고 와서 커피 석 잔을 타서 장기 두던 손님 두 명과 자기가 한 잔씩 마시는 그런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이런 분들이 교육이 되나 싶습니다.
혹시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새마을 운동 교육을 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농군학교는 새마을 운동의 모태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시작된 범국민적인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인데, 이 운동의 정신적인 모델이 바로 가나안 농군학교의 의식 개혁 교육이었습니다. 1962년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의식의 변화, 근면, 자조, 자립, 그리고 빈곤의 퇴치를 추구하는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육 방향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것이 새마을 운동이라는 국가사업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지금도 가나안 농군학교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제적인 단체가 되었습니다. 1991년에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필리핀, 태국, 미얀마,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요르단, 라오스 등지에 농군학교를 설립했고, 이제 세계 가나안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남시에 있었던 제1 가나안 농군학교는 2014년에 양평으로 이전했다가 2022년에 폐교했지만, 제2 가나안 농군학교가 교명을 가나안 농군학교로 바꾸고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하 기관으로 가나안 세계 지도자 교육원, 가나안 평생 교육원, 성도원, 가나안 치악산 캠프. 세계 가나안 운동 본부가 있습니다.
제1 가나안 농군학교가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하남시에는 김용기 장로님과 가나안 농군학교의 관련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일가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일가 도서관이 있는데, 하남시 역사를 특별히 보존하는 아카이브 도서관입니다. 한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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