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따라 코헬렛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편으로는 메멘토 모리의 태도로 한걸음 물러나서, 사실과 맥락을 따질 수 있도록 주어진 것과 나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카르페 디엠의 태도로 주어진 것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향유의 태도를 취하는 것인데, 무언가를 편향하여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면모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 “조금 여유롭게”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구가 아닐까 싶다. (본문 중)

윤동민(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

 

강영안 |『철학자의 신학 수업』

복있는사람|2021년05월03일|304면|15,000원

 

‘진리’와 ‘진영 논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여겨지는 시대가 오늘날 우리 시대인 것 같다. 그래서 진영 논리가 아닌 ‘팩트 체크’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다시 그 팩트 체크를 자신의 진영에 맡기는 역설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포스트 트루스’라는 시대 진단은 실로 정확하다. 우리는 분명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확인해 보려는 생각도 없이,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숭상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참이고, 반대편의 주장은 무엇이나 거짓으로 보는 태도”(18)가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본서의 이런 진단은 소위 ‘우리’의 바깥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트루스’라는 진단이 등장하는 것은 비록 본서의 8강(8장)이지만, 저자가 1강부터 신앙의 주요 명구들을 다루며1) 우리의 이해를 교정하고 부단히 우리로 하여금 “조금 여유롭게” 신앙과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결국 저 진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신앙인들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런 점에서 저자의 문체가 굉장히 온화함에도 불구하고, 그 말들은 촌철살인의 비수처럼 매섭다. 저자가 묻고 따지는, 신앙 특유의 역설 어법(1강)과 ‘세상에 속하지 않는’(2강), ‘우리 안에 있는’(3강) 하나님 나라의 정체, 나아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4강)거나 ‘믿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5강)는 말과 같은 신앙과 이성, 혹은 신학과 철학의 관계(6강), 그리고 교회 개혁의 구호였던 ‘솔라’(Sola)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7강)와 진리/참(8강),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루터의 이야기(9강) 등에서, 우리는 실제로 신앙인들의 진영에서 통념적으로 이해되는 것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또한 저자의 이야기 속 이 시대의 사람임이 증명된다.

물론, 중요한 것은 비수에 찔려 아파하는 것도, 자책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저자가 진단과 더불어 제안하듯이, 이와 같은 시대에 휩쓸리거나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자의 신학수업』 표지, ⓒ복 있는 사람.

 

저자는 그것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그것은 실재론을 추구하되 넓은 실재론, 즉, “가치 없는 사실, 인격적 판단과 개입 없이 사건만을 객관적으로 내세우게 하는 실재론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개입하고 판단하고 결단하는, 때로는 자기를 포기하고 타자를 더 앞세우는 방식으로 행동 할 수 있게 해주는 실재론”(229)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주어진 사실을 단순히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맥락을 잊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이해 가운데 살피는 해석학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비판적/회의적 태도를 통해서 “판단을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좀 더 따져보는 것”(231), 그렇게 자신의 편향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심을 기억하고, 공평과 공정의 태도를 가지고 “정직하게 보고 정직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것”(232)이다. 저자는 바로 이와 같은 삶이 삶의 방식으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삶의 태도들이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지 저자에게 물을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같은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예를 책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백미는, 때로는 명구의 원어와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검토하는 비판적 태도로, 때로는 해당 문제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해석과 이해를 참고하여 풍부한 이해를 도출하는 해석학적 태도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고려들 속에서 사태를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로 드러나는 저자 자신의 모범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익힐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저자가 제안하는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주어진 것에서부터 한걸음 물러나 바라볼 수 있게 하되, 그것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갖고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이 시대 속에서도 요구되지만, 또한 시대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저자가 마지막 10강을 통해 말하고 있는 코헬렛(전도자)의 가르침일 것이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라”(하벨 하발림).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누리라”(마타트 엘로힘). 이것은 곧 ‘메멘토 모리’(죽을 존재임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이 날을 붙잡아라)을 삶의 두 모티프로 삼는 삶이다(287).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같은 이야기를 저자가 서문에서 한 말로 정리하고 싶다. “우리 삶을 조금 여유롭게 이야기하고 싶다”(19)라는 말 속의 “조금 여유롭게”라는 말이다. 저자를 따라 코헬렛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편으로는 메멘토 모리의 태도로 한걸음 물러나서, 사실과 맥락을 따질 수 있도록 주어진 것과 나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카르페 디엠의 태도로 주어진 것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향유의 태도를 취하는 것인데, 무언가를 편향하여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면모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 “조금 여유롭게”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구가 아닐까 싶다.

 


1)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편집자 주).

 

해설

강의를 시작하며 진실은 단순하나 우리 삶은 애매하다

1부 하나님과 인간

1강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유곽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찾고 있다”

2강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3강 하나님 나라와 내면성: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부 신앙과 이성

4강 믿는다는 것: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5강 안다는 것: “너희가 믿지 않으면 알지 못하리라”

6강 신학한다는 것: “신학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고,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3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7강 교회개혁의 참 의미: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8강 그리스도인과 진리: “참은 사물과 지성의 일치이다”

9강 코로나 시대의 그리스도인: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마지막 강의 일상, 하나님의 선물: “헛되고 헛되다”

강의를 마치며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철학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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