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구출했다며 그 이름도 ‘미라클 작전’이라고 명명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자랑하였지만, 정작 그렇게 구출된 난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의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그간 난민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어 왔다. 흔히들 난민 인정을 받으면 세금으로 정착 지원금도 주고, 뭔가 정부가 대단히 챙겨 주는 줄 알지만, 난민들은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만 받을 뿐이다. (본문 중)
김세진(변호사, 공익법센터 어필)
학교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
콩고 출신 미등록 체류자 M의 아들 J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취학 통지서가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등록 체류 아동은 학교에 다닐 수는 있지만, 본인이 직접 학교를 찾아가 입학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학교장이 입학을 거부하면 그 학교를 다닐 수 없다. J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 신청을 하면서 M은 나에게 연락했다. 또다시 입학 허가를 거절당할까 두렵다고 했다. 나는 M과 함께 학교에 갔고, 교감 선생님을 만나서 미등록 체류 아동도 학교를 다닐 수 있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음을 설명한 후, 입학 허가를 받고 교무실을 나왔다. 교무실을 나와서 복도를 걸어가는데 M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두려웠던 마음이 일시에 눈물로 터져 나온 것이다.
2021년 8월 특별기여자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일부가 울산에 정착하게 되었지만, 학교 입학을 앞두고 울산시 학부모들 일부가 입학을 반대하였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교 가는 첫날 아이들의 손에는 한국인 친구들에게 줄 과자를 담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전쟁을 피해 고국을 탈출해서 낯선 땅에서 처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잘 지내지 못할까 봐 과자 봉투를 들려 보냈을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보니 눈물을 흘렸던 M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수송한 미라클 작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한국 정부는 미라클 작전으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한국으로 데려왔고, 이렇게 데려온 난민들에 대해서 난민이라는 이름 대신 ‘특별기여자’로 명명하고, 합법적으로 국내에 거주할 지위를 부여하였다. 법무부와 교육부 등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지원단은 이들의 정착을 위해 취업을 알선했으며, 그 결과 구인난을 겪고 있는 조선 업계와 연결되어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협력사와 취업이 성사되었고, 현대중공업에서는 옛 사택인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특별기여자들의 울산살이는 뒤늦게 소식을 접한 지역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사택 인근 학부모들은 아프가니스탄 초등학생 25명이 같은 학교에 배정될 것을 우려해 피켓 시위에 나섰고, 이 때문에 울산 이주 당일 예정됐던 환영 행사도 취소됐다. 3월 개학이 1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학교 배치가 마무리되지 않아 우려가 많았다. 교육부는 울산 지역의 학교 배치 문제는 울산시 교육청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 관여할 수 없다며, 지방 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겼다.
정부는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특별기여자 처우 조항을 신설하고, 난민법상 난민에 관한 권리 규정들을 준용하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교육과 취업에 필요한 기본 장치는 마련했다. 그러나 이 법의 시행을 위한 세부 사항에서 구체적인 검토나 사전 분석이나 준비는 없었던 것이다. 정부는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 대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고, 울산 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되자 이를 본 아프가니스탄 학부모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고, 갑작스러운 통보에 지방 교육청은 준비가 미흡한 가운데 아이들을 입학시켜야 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구출했다며 그 이름도 ‘미라클 작전’이라고 명명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자랑하였지만, 정작 그렇게 구출된 난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의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그간 난민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어 왔다. 흔히들 난민 인정을 받으면 세금으로 정착 지원금도 주고, 뭔가 정부가 대단히 챙겨 주는 줄 알지만, 난민들은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만 받을 뿐이다. 난민법은 난민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이행을 위한 제도는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난민법은 난민들의 교육의 권리와 사회보장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난민들은 본국에서의 학력이나 경력을 인정받기가 어렵고, 이곳에서 기반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교육을 위한 경제적 여유도 없기 때문에 대학에 가는 것이 어렵다. 고국에서는 의사, 간호사, 교수였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는 단순 노무직이나 공장을 전전하게 된다.
시민단체들이 난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면, 정부는 재정을 이유로 법에 규정된 난민의 권리를 유보시킨다. 권리를 유보하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난민들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한 것을 시혜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 수 있게 해 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요구까지 한다고 생각하며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난민 보호는 국제 협약 가입국으로서 우리의 의무이며, 난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난민법 제정이나 미라클 작전의 성공을 자랑하기보다, 난민들을 향한 진정한 공감과 연대에서 비롯한, 난민들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아동의 입학 거부는 혐오가 아닐까?
울산 주민들이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입학을 거부한 이유는, “자녀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가진 종교, 사상, 문화를 아무것도 모른 채 흡수할까 우려된다”라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종교가 이슬람이니 결국 이슬람 문화를 흡수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청와대에 울산 아프가니스탄 난민 관련해서 이슬람 난민 집단 거주 형성을 반대한다는 청원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반대하는 울산 시민들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혐오로 매도하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들은 이슬람교가 위험한 종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이슬람에 대한 우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본주의 무슬림인 탈레반이 싫다고 해서, 탈레반을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인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근본주의자 무슬림들과 동일시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의 형태이다. 만일 본인들이 외국으로 아이들을 보냈는데, 한국은 OECD 국가 중 강간 범죄율이 1위인 강간의 왕국이니 한국 사람들의 집단 전학을 거부한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혐오 개념의 핵심은, 혐오 표현 자체보다 소수자들이 처해 있는 불평등한 상황 때문에 쉽게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에서 절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대상으로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하는 행위는, 그들이 특정한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들을 차별하는 것이므로, 혐오가 분명하다.
난민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연대 필요성
맘몬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세상의 방식대로 하자면, 난민의 수용도 경제적 측면으로 판단하고,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익이 되면 수용하고 아니면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성경에는 ‘나그네를 환대하라’라고 씌어 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예수님의 진리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난민은 환영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난민 옹호 활동을 하면서 연대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대가 기독교인들로부터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슬람을 혐오하는 모습을 보면 참 마음이 어려워진다.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습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받고 위협당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받는 차별을 감지해 낼 정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혐오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혐오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들에도 맞서야 한다. 증오는 사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증오와 그에 따른 폭력은 단순히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된 것이다. 깨어서 이러한 흐름을 막고 정의와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할 일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려 보게 하였다. 아직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도래하지 않아, 울부짖는 사자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양들이 많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라며 당연하게만 생각하며 방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방관이 아닌 돌봄이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아동들의 학교에서의 삶이 어떠한지, 그들의 부모의 삶이 어떠한지 살펴보자. 더 나아가 이 땅에 온 난민들의 삶이 어떠한지 관심을 가지자.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돌보는 일을 교회가 나서서 해야 한다. 이미 그렇게 돌봄 사역을 시작한 교회들도 있다. 더 많은 교회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뿐만 아니라 그 밖의 나라 잃고 떠도는 나그네들을 돌보는 사역에도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그런데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전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먼저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봐 주길 부탁하고 싶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것을 보여줄 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여수 해양경찰 교육원에서 한국 적응 교육을 받고 있을 때, K를 만났다. 이후 이메일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울산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한국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하자, 그는 ‘괜찮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해결되고 있다고 믿고 있고, 하루하루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우리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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