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에 마지막으로 남은 임시 병원인 함자의 병원도 결국 공습으로 인해 무너진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사마의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다른 동료들과 환자들은 CCTV 화면 속에서 뿌연 먼지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사마의 가족은 끝내 사람들과 함께 알레포를 탈출한다.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친구들과 이웃들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흩어진다. 시리아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난민이 되어 낯선 나라로 향한다. (본문 중)

최주리(기윤실 청년 활동가)

 

처음부터 난민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 내전을 피해 제주로 무비자 입국한 예멘 난민들로 인해 우리나라는 큰 혼란을 겪었다. 제주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부분의 외국인이 비자 없이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고, 예멘 내전이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된 2014년 이후로 예멘 난민들이 조금씩 제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전이 점점 길어지면서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한꺼번에 제주로 들어와 난민 지위 요청을 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위험하고 위협적이며 막무가내로 침입한 이방인’으로 비쳤고, 그들의 난민 지위와 관련된 사실들은 중요하지도 않았고 다루는 이도 거의 없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예멘 난민을 추방하자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고, 난민 수용 반대 집회와 찬성 집회가 서로의 맞은편에서 진행되며 분위기가 격화되었다.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예멘 난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이슬람교 포교를 하려고 입국했다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짜 난민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지기도 했다.

 

결국 법무부는 제주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국가 목록에서 예멘을 제외했다. 갑자기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혼란을 안겨준 ‘무시무시한 난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일까? 우리는 그들이 난민이기 이전의 한 시민이었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영화 <사마에게> (2020) | 감독 와드 알-카팁 | 96분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줄래?”

 

예멘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국가로 시리아가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인 1,2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유럽으로 피난을 가다가 배가 난파되어 터키의 어느 해변에 시신으로 떠밀려 온 채 발견되어 유럽의 난민 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던 3살의 알란 쿠르디도 시리아 내전의 피해자였다. 그들이 떠나온 시리아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아랍의 민주화 운동인 튀니지 혁명의 물결로 2011년부터 시리아에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시리아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탄압했다.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 와드는 카메라를 들고 이를 담아내기 시작한다. 정부군에 의해 포위된 알레포에서 와드는 함께 평화 시위를 하던 남편 함자와 결혼하고 딸 사마를 낳는다. 완전히 봉쇄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미사일이 떨어졌고 수도와 전기가 끊겼을 뿐 아니라 식수와 식량도 점점 바닥이 나는 상황이었지만, 의사인 함자는 임시 병원을 세워 폭격으로 다친 사람들을 치료했고 와드는 이를 카메라에 꼼꼼히 담는다. 영문도 모른 채 포탄을 피해 숨어야 하고 수많은 이웃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사마는 웃고 두려워하고 사랑받고 불안에 떨면서 하루하루 자라간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 뉴스에서 워낙 잔인하고 노골적인 장면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한 장면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기 어렵다. 와드의 카메라는 화려하고 극적인 장면 효과 없이 알레포의 모습 그대로를 담는다. 회색빛 먼지가 일어나며 부서져 가는 칙칙한 건물과 폭격 이후 멍한 표정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시뻘건 피가 대비된다. 그러나 극한의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정부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은 짧은 일상의 행복과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공습이 지나가고 어느 만삭의 임산부가 함자의 병원에 실려 온다. 긴급 제왕 절개를 하여 나온 맥박이 뛰지 않던 신생아가 함자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산모도 곧 안정을 찾는다. 나는 산모와 아이가 무사하길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장면을 보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다. 그러한 무력함 속에서도, 알레포를 지키기 위해 함자는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와드는 시리아의 참상을 찍어 전 세계에 알리고, 사마는 귀를 찢을 듯한 폭격 소리에도 울지 않는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자유를 꿈꿨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나의 도시 알레포.

사마, 이곳에서 네가 첫울음을 터뜨렸단다.

이런 세상에 눈뜨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 이 영화를 네게 바친다.

 

(영화 <사마에게> 중 와드의 내레이션)

 

알레포에 마지막으로 남은 임시 병원인 함자의 병원도 결국 공습으로 인해 무너진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사마의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다른 동료들과 환자들은 CCTV 화면 속에서 뿌연 먼지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사마의 가족은 끝내 사람들과 함께 알레포를 탈출한다.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친구들과 이웃들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흩어진다. 시리아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난민이 되어 낯선 나라로 향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의 불이 다시 켜졌다. 그러나 나는 감히 일어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마가 미사일이 떨어지는 시리아에서 태어나게 된 것도,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목숨의 위협은 거의 느끼지 못한 채로 이방인이 나의 안온한 일상을 방해할 것을 염려하는 삶을 살게 된 것도, 그 누구의 잘잘못으로 인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상을 살면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비극 속에서 나는 무력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주하는 단편적인 모습들 뒤의 이야기를 간과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함께 힘을 모으려고 애쓰는 것은, 세상을 돌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이해하고 따르려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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