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한국 사회는 청년 주거 문제를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난한 청년들은 짧은 거주 기간, 최저 주거 기준 수준의 설계 등으로 구성된 공공 임대 주택에 살며, 혼인이나 출산을 기준으로 한 정상 가족 중심의 주거 정책으로부터 배제되기도 한다. (본문 중)
가원(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한국 사회에서 ‘집’이란 무엇인가? 지난 8월,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살던 주거 취약 계층, 발달 장애인, 빈곤층,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투기의 대상일 뿐인 ‘집’에서 누군가는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는다. 사는 ‘곳’이어야 할 집이 사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집은 인간답게 삶을 영위하고 생존을 보장받으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주거 기본법을 제정해 국민의 주거권을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국민은 “물리적ㆍ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집의 소유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인간답게 주거 생활을 할 권리, 그것이 주거권이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는 청년 당사자 연대다.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터무니없이 높은 집값과 이를 조장하는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고, ‘지옥고’로 명명되는 반지하·고시원·옥탑방과 같이 도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사회에 고발하며, ‘보증금 먹튀’와 같은 청년 세입자를 위협하는 부당한 주택 임대차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2022년 현재 회원 규모 약 700명의 시민 단체로서 주거·복지·빈곤·청년 사회 시민 단체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현장에서 청년 세입자가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겪는 불안과 위험을 마주한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주거비다. 2007년 전세 4천만 원짜리 주택이 즐비하던 서울의 한 동네는 2022년 현재 전세 20억대 아파트들로 채워져 있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지는 가운데,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 세대의 임금은 정체된 지 오래다. 주거비 부담을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청년 빈곤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지만, 제도적인 안전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만 30세 미만이며 미혼·비혼인 청년 개인은 본인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주거 급여’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청년 당사자들이 모여 주거비 지원 제도 개선을 요구한 결과, 2021년부터는 원가구가 수급 가구라면 주거 급여 분리 지급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또, 2022년부터는 전국에서 청년 월세 지원 정책을 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시적 운영에 그치고 있어,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로 남아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주거 환경이다. 불량 식품은 안 되지만, 불량 주거는 얼마든지 용인하는 한국 사회에는 말 그대로 불량한 집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곰팡이와 해충이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집, 폭우가 쏟아지면 천장까지 물이 차는 집, 폭염에 집 안에 머물던 사람이 열이 올라 사경을 헤매는 집, 말도 안 되는 크기로 쪼개 놓은 불법 원룸 등, ‘지옥고’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불량한 집을 목격한다. 이에 관해 민달팽이유니온은 불법으로 방을 쪼개 원룸 장사를 하는 민간 임대 주택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계속해 왔고, 2021년에는 불법 건축물 감독관 제도의 도입을 이끌었다. 하지만 정부의 해결 의지가 부족해 유명무실한 상태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청년 세입자를 대상으로 청년 주거 기초 훈련을 진행하는데, 위반 건축 사례로 보여주는 사진 속의 집에 산다는 청년들을 강의 때마다 만난다. 이것은 더 이상 인구가 밀집된 서울·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불법 건축물을 통해 임대 소득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의 당당함이 민달팽이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야기하는 현장을 종종 마주한다. 주거 환경 문제는 먼저 언급한 주거비 부담과도 연결되어 있다.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비 부담에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려 생명을 위협받게 된 일은 청년층만이 아닌 주거 취약 계층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 번째 문제는 세입자 권리다. 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인다. 그중에서도 청년 세입자는 연령주의에 따른 차별이 결합된 부당한 관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임대차 계약 시 임대인의 신상을 확인하는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기는커녕, 계약 당일 임대인 대신 중개사가 도장을 받아 주겠다며 임대인을 만나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어 가짜 임대인을 만나도 이를 바로 알아채기 어렵다. 내 보증금이 위험한 집은 아닐지 충실하게 설명해 주기는커녕, 집 보는 과정을 10분도 허락하지 않는 성의 없고 불친절한 중개사를 만난 경험을 토로하는 민달팽이가 많다.
세입자 권리 침해의 가장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전세 사기와 보증금 미반환이다. 끝없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규제하는 제도가 부재한 여건 속에서 세입자의 보증금 또한 전례 없는 수준으로 상승한 요즘, 전세 사기를 비롯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청년의 대표적인 주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20년 청년 1인 가구 중 95.4%는 세입자인 사회에서,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거나, 때때로 영영 돌려받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은 청년 세대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운영하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을 이용한 세입자들로부터 접수된 보증금 반환 사고 금액만 해도 2021년 한 해 동안 무려 5,79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HUG의 보증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주택이 대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세입자가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떼이고 있는지는 정확히 추산할 수 없어, 사회 전체의 피해 규모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전세 사기가 아니라도, 보편적으로 세입자의 보증금을 임대인의 사금융처럼 활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부동산 관행 또한 청년 세대 주거 불안의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집값은 치솟고, 매매 가격의 80% 이상을 보증금으로 요구하는 깡통 주택은 전국적으로 급증하는 형국이다. 끊임없이 주택 가격을 불려온 한국 부동산 역사의 기저에 청년 세입자의 보증금과 임대료가 깔려 있음은 자명하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청년 주거 문제를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난한 청년들은 짧은 거주 기간, 최저 주거 기준 수준의 설계 등으로 구성된 공공 임대 주택에 살며, 혼인이나 출산을 기준으로 한 정상 가족 중심의 주거 정책으로부터 배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달팽이유니온은 임금에 비해 한없이 높은 주거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감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보증금 떼일 위험에 쉽게 노출된 청년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왜 우리는 이토록 취약한 상태에 방치되어 있는가? 왜 한시적인 대책만으로 청년 세대 주거 불안을 때우려 하는가?
이에 민달팽이유니온은 가장 기본적인 주거 정책을 요구한다. 가난한 청년에게는 그들이 부담 가능한,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공 임대 주택이 적극 확대 공급돼야 하고, 민간 임대차 시장에 진입한 청년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부당한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주거 정책은 정반대의 길을 바라보고 있다. 가히 주거권에 대한 백래시1)의 시대인 듯하다. 양도 소득세 부과 기준 완화 및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 제한, 31년 만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겨우 신장시켜 놓은 권리를 재검토라는 이름으로 후퇴시키려는 시도, 가장 핵심적인 주거 복지 자원인 공공 임대 주택 예산안을 삭감하려는 시도 때문에 주거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다.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해석하는 주거 정책, 지속 가능한 도시 설계 없이는, 청년을 비롯해 국민 그 누구도 주거 안정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불안을 소유가 아닌 권리로 해결할 수 있는 날까지, 민달팽이유니온은 현장의 대변자로 활동할 것이다.
1) 기존의 흐름에 대한 강한 반동 혹은 반발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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