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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밭에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왕겨와 주변에 자라는 풀로 멀칭을 하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논에서는 비료도 투입하지 않고, 땅도 갈아엎지 않고, 풀과 벌레도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잡초는 뽑지 않고 베고 땅이 가진 힘을 이용해 자연 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요즘엔 씨앗이 개량되어 우수한 농산물이 생산되지만, 씨앗에 각종 화학 약품 처리나 유전자 조작 처리를 해 두어 씨앗을 채종해서 내년에 심어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종묘사에서 씨앗을 구매해야 한다. 처음에 생명력 없는 씨앗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난감했다. (본문 중)

 

서선교(귀촌 청년)

 

태어난 후부터 30여 년을 살아온 서울을 떠나 2023년 2월 충남 홍성으로 귀촌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에 치이며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맡기며, 진이 빠진 채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하루 만에 주변 환경이 너무나 달라져 버렸다. 겨울의 농촌은 너무나도 한산했다. 길거리에 나가도 아무도 없고 동네에서 사람들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농사가 다시 시작되는 봄이 오기 전 농한기에는 다들 집에서 쉬거나 마을회관에 모여서 전통 놀이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이삿짐을 대충 정리하고 면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쓰레기 버리는 법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내 집 앞에 잘 분리배출을 해놓으면 새벽에 수거해 가는 서울 방식과는 달리, 수거해 가는 날도 적었고 품목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잘 수거해 가지 않는 스티로폼이나 소량의 고철이나 복합 플라스틱의 경우는 1년에 한 번 ‘숨은 자원 찾기’ 행사 기간에만 수거를 해 간다고 했다. 더 이상 스티로폼에 포장된 배송 물품들이 반갑지 않았다. 도시와 달리 하루 만에 배송되지도 않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구매하지 않고 대체 물품을 찾기 시작했다. 나의 굳은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단순한 삶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내가 이주해 온 지역은 면 단위 지역인데 면적은 서울시 종로구, 중구, 용산구를 합친 면적과 비슷하지만, 총인구는 2,800명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건물들로 빽빽한 도시와 달리 내가 거주하는 지역은 면적의 절반 이상이 임야이고, 논과 밭이 약 30%, 간간이 우사와 돈사,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숫자였고 돌아가시는 어르신은 60여 명이 되니, 귀농 귀촌 인구가 없다면 1년에 50명씩은 인구가 줄어든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0%가 넘는 지역이므로 초고령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면에는 1개의 중학교 3개의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학생이 줄면서 순차적으로 폐교되었고 현재는 한 개의 초등학교만 남아있다. 전교생이 40명인 전형적인 작은 시골 학교인데 5, 6학년이 20명이라서 2년 후에는 유일하던 이 학교마저도 통합이 되거나 없어질까 봐 마을 어른들이 노심초사하신다. 그동안 인구가 감소하면서 자연스레 아동과 학생의 수가 줄었고, 학교가 없어지니 자연스레 학교 주변에 발달했던 편의 시설이나 상권이 좀 더 큰 주변 읍내로 이전했다. 인구가 점점 더 고령화되면서 농사를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르신들도 힘에 부치시는지 농사용 비닐이나, 농약, 제초제 등의 사용이 증가해 주변 경관도 예전과 달리 황폐해지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레 마을에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거나 자녀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옮겨가시며 빈집이 늘어났고, 황폐해지는 마을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나마 이곳은 귀농 귀촌 인구가 꾸준히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로 보는 시골 농촌의 현실은 처참했다. 지방 소멸과 먹거리를 책임질 농지가 사라지는 일이 당장 나의 눈앞에 마주하는 현실이 되었다.

 

현실을 타파하려 해도 우선 함께 일할 젊은 층이 없다는 게 큰 한계로 다가왔다. 60대 이장님이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마을도 수두룩했다. 도시에서는 바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장애인 인권, 기후 위기, 성 인지 감수성 등 다양한 의제에 발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었고, 눈앞에 사회적 이슈가 부각되는 현장이 많았지만, 농촌은 물리적 거리 때문인지 그런 이슈들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나마 피부로 가장 와닿는 이슈는 기후 위기와 육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돈사와 우사에서 나오는 축산 악취는 농촌에서 늘 풀기 어려운 문제다. 악취로 인해 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열기 어렵고 때로는 지역 주민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서 기르는 가축들은 결국 도시에서 소비되지만 농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렴한 임금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고 축사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 괴로우니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에는 비건 관련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어도 육식을 줄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축산 악취 문제를 겪으며 저절로 육류 소비가 줄어들었다.

 

 

요즘엔 농촌에도 기후 위기가 가장 큰 이슈다. 우리 지역은 귀농·귀촌인들에게 농사 수업을 해 주는 단체들과 개인 선생님이 있어서 지난 한 해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어 볼 수 있었다. 농사를 배워가고 실습하며 지역의 여러 농장들도 탐방했었는데, 20-30년 농사만 지으셨던 어르신들도 공통으로 하시는 이야기가, 작년부터는 날씨가 이상해서 농사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작물이 심고 수확하는 시기가 다 다르니 절기에 따라 매년 비슷한 시기에 작물별로 파종을 하는데, 봄 작물을 파종하고 갑자기 서리가 내려 힘들게 파종한 작물이 다 죽기도 하고, 여름에 태양 볕이 너무 뜨거워서 작물이 타죽기도 하고, 작물이 햇볕을 밭으며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유례없는 긴 장마로 상품성이 없는 농작물이 수확되고, 가을 태풍으로 수확 직전의 벼가 쓰러지기도 하면서, 한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어르신들도 이젠 날씨 예측이 너무 어려워서 농사가 쉽지 않다고들 하셨다.

 

농촌에 내려와서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생산해 보자는 마음으로, 다른 일과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규모의 밭과 논에서 한 해 농사를 지어 보았는데, 기후 위기 시대의 농촌과 농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유기농 농산물이 결코 비싼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생각보다도 너무 많은 농업 쓰레기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농약을 쓰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는 비닐, 부직포, 플라스틱 모종판 폐기물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왔고, 영농 폐기물을 잘 수거해서 처리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긴 하지만 불법으로 소각하는 비율도 꽤 높았다.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예산을 계속해서 요구하지만 시기적절하게 갖춰지지 않아 소각하게 되니, 농촌의 땅이나 대기 오염의 문제도 참 큰 문제였다.

 

그래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밭에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왕겨와 주변에 자라는 풀로 멀칭을 하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논에서는 비료도 투입하지 않고, 땅도 갈아엎지 않고, 풀과 벌레도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잡초는 뽑지 않고 베고 땅이 가진 힘을 이용해 자연 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요즘엔 씨앗이 개량되어 우수한 농산물이 생산되지만, 씨앗에 각종 화학 약품 처리나 유전자 조작 처리를 해 두어 씨앗을 채종해서 내년에 심어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종묘사에서 씨앗을 구매해야 한다. 처음에 생명력 없는 씨앗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난감했다. 그래서 어렵게 얻은 토종 씨앗들을 심고 가장 예쁜 열매를 맺은 씨앗을 채종해 두고 내년 농사를 준비했다. 종자에 대한 소유권이나 종자 관련 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아주 값비싼 씨앗을 구매해야 하거나 우리 땅에서 로열티를 내고 농사를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먹는 쌀도 토종 벼는 전체 수확량의 0.0001%밖에 되지 않는다. 토종 종자를 보존해 보자는 마음으로 밭과 논에 토종 씨앗들을 심었고,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확량은 일반적인 방식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었다.

 

900여 평 논에 기계로 모를 심으면 1시간이면 일이 끝나지만,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심는 자연 농법 논은 30여 명이 수일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모내기를 해야 했다. 결과만 생각하면 아주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농사라는 것이 꼭 수확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땅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지역은 딸기가 유명한데 지역 어르신 중에는 딸기를 드시지 않는 분이 계신다. 겨울철 난방을 위해 너무 많은 물과 석유를 사용하며 재배하는 농작물이라서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는 생각이 참으로 많아졌다. 수익과 에너지 사용을 같이 고민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청년 농부 양성과 관련해서 스마트팜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생산에만 초점을 맞춰 과도한 자원 사용과 시설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한편으로 불편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의 농법을 고민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지력을 살리는 농법으로 일하게 되면, 결국 넓은 면적에서 농사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수가 대규모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소농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방식의 농법이 공존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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