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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치의 마지막 시간들을 따라가며 플랜75를 담당하는 시청 직원인 히로무와 플랜75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 콜센터에서 일하며 미치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하게 된 요코, 플랜75 이용자의 유품 정리를 하는 이주 노동자 마리아의 시선을 통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기로에 놓인 노인들의 삶을 바라본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국가가 당신의 죽음을 지원합니다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머지않은 미래의 일본, 노인을 겨냥한 증오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살인범은 “과도한 노인 인구가 경제를 망치고 있고, 노인들도 더 이상 사회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계기가 되어서 미래가 더 밝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본 정부는 ‘플랜75’라는 정책을 시행한다. 플랜75의 광고는 노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당신의 마지막을 도와드립니다.”

 

영화 <플랜75> |감독: 하야카와 치에 | 113분

 

일본 정부가 도입한 플랜75는 75세 이상인 국민 누구나 무료로 준비금과 장례 등의 서비스와 함께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가족들의 동의 없이도 본인이 원하면 간단한 절차를 걸쳐 신청할 수 있으며, 죽음 이후에 집과 유류품 정리까지 해결해 주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격렬한 논쟁과 함께 큰 반대가 있었지만, 시행한 지 3년이 지나며 그 경제 효과가 1조 엔에 이르고 관련된 다양한 민간 서비스도 생겨나면서 ‘경제가 살아나고’ 있자, 일본 정부는 기준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른다.

 

잘 죽는다는 것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대 수명은 급격하게 늘었지만 늘어난 수명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하게 자연사하는 것이 소원이 될 만큼 ‘잘 죽는 것’, ‘웰다잉(well-dying)’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그에 따라 죽음을 앞두고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무의미한 연명 목적의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안락사’, ‘존엄사’, ‘조력 자살’, ‘조력 사망’ 등,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이를 합법화한 후, 현재 조력 사망(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주입하는 방식)과 안락사(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방식)를 모두 허용하는 곳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이며, 스위스, 미국의 10개 주,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는 조력 사망만을, 콜롬비아와 우루과이는 안락사만 허용하고 있다. 조력 사망 법제화와 관련해 서울신문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1,000명의 국민 중 80%가 법제화를 찬성했다. 외국인도 조력 사망이 가능한 스위스에 조력 사망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은 200명 이상이고 이미 10명이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1) 물론 허용된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엄격한 기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자살이나, 의료인의 도움을 받은 경우 살인 및 방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이를 금지하는 나라들도 여전히 많으며, 각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자살에 관여할 경우 촉탁/승낙 살인죄와 자살관여죄나 자살교사, 방조죄를 받을 수 있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도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무의미하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괴로운 마지막 시간을 보낸 인생들을 목도하게 되면서 ‘잘‘ 죽는 것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영화 <플랜75> 스틸컷.

 

플랜75를 ‘선택’한다는 것

 

올해로 78세가 된 미치는 호텔에서 청소를 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일하다 쓰러지게 되고, ‘노인들이 일하는 게 불쌍하다’는 투서가 들어와 떠밀리듯이 명예퇴직을 하게 된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미치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는데, 살던 집마저 철거를 앞둔 바람에 오갈 곳이 없어진다.

 

미치의 친구들은 마지막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할 뿐만 아니라 준비 지원금 10만 엔을 주는 플랜75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10만 엔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일자리도 집도 없는 상황 속에서 미치는 어쩔 수 없음을 직감하고 플랜75를 찾아간다. 환하고 쾌적한 상담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상냥한 직원에게 상담을 받으며 신청서를 작성하는 미치는 이제 자신에게 쾌적함과 친절함을 내어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음을 느낀다.

 

영화 <플랜75> 스틸컷.

 

영화는 미치의 마지막 시간들을 따라가며 플랜75를 담당하는 시청 직원인 히로무와 플랜75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 콜센터에서 일하며 미치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하게 된 요코, 플랜75 이용자의 유품 정리를 하는 이주 노동자 마리아의 시선을 통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기로에 놓인 노인들의 삶을 바라본다. 우리 또한 삶의 어느 순간에는 미치나 히로무, 요코, 마리아의 입장에 서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가 마음을 묵직하게 압박해 오는 것은 영화의 상황이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랜75는 결코 노인들을 몰아세우거나 죽음을 선택하라고 종용하지 않는다. 신청 후에도 언제든 과정을 그만둘 수 있음을 고지하고 깍듯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돕는다’. 미치에게 손을 내미는 곳은 무료 급식소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곳뿐이며,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사회에서 ‘1인분’을 하기 어려워진 노인들은 점점 고립되어 감을 체감하게 된다. 미치를 비롯한 노인들은 계속 일하고 활동하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원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곳은 없다. 플랜75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법으로 죽을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영화 <플랜75> 포스터.

 

존엄한 죽음에 앞서 존엄한 삶을 요구할 권리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고 노인을 공경하는 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철저히 사회·경제적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 속에서 노령 인구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변화가 필요하다. 예전 시대의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삶의 지혜가 있어 존경과 권위를 누릴 수 있었지만, 요즘과 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노인들의 삶의 지혜는 이미 유효 기간이 지나버려 활용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정상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각박한 곳이다. 노인을 비롯해 아프고 약한 몸을 갖고 있거나, 사회·경제적 가치가 낮거나, 주류에 속하지 않거나, 개인적인 안전망이 없는 이들이 그렇다. 민간과 공적인 사회 복지 망이 있음에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까지 각박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정상의 범주에 안온하게 속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프고 약한 몸으로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특히나 아프고 약한 몸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한 우리나라의 돌봄 산업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의 감정까지 살필 여력이 없는 의료 산업, 가족 구성원의 헌신 위주의 돌봄 노동, 돌봄 노동을 하는 보호자의 고립, 돌봄 산업 종사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사각지대, 영세한 요양 보호소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보호자가 연락을 끊어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지속하는 등의 제도적 결함과 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누구 하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대 행정학과의 김희강 교수는 돌봄의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국가가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역할은 돌봄이 당당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상명하달식으로 규제가 시행되고 이를 공무원이 평가하는 방식보다는, 돌봄 당사자, 돌봄 제공자, 지역 사회 이해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해 거버넌스 형식으로 관리와 규제를 만들고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돌봄은 시민 개인 윤리의 영역이자 사적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시민 윤리, 시민 교육 측면에서 교과 과정 내에 돌봄에 대한 교육과 실천,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 돌봄을 긍정하는 태도, 의존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지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2)

 

존엄한 노년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야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으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또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및 빈곤율 1위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존엄하지 않은 노년 생활에 떠밀려 죽음이라는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되는 상황은 우리에게는 더 이상 공상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1) 유영규, 신융아, 이주원, “한국인 10명,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하다”, 「서울신문」, 2023. 07. 10.

2) 김영화, 김호성, 나경희, 송병기,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시사IN북, 2021), 159-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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