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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공공성은 자본주의와 배치되는 가치가 아닙니다. 사유재산제의 근간이 되는 개인의 소유는 자신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받아 노력한 만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토지는 공기, 물, 자연 자원과 같이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며, 누구도 생산한 적이 없는 자원입니다. 따라서 토지를 사용한 만큼 그 대가를 토지 보유세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

 

김덕영(희년함께 상임대표)

 

2002년, 대천덕 신부님은 심장병이 재발하여 침상에 누워 계셨고, 마지막을 앞두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분이 신부님께 한국 교회에 하실 마지막 말씀이 있으신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천덕 신부님은 갑자기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크게 외쳐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다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에 신부님은 다시 크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 외치십시오!” 이 말씀이 대천덕 신부님의 마지막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희년함께는 1984년, 고(故) 대천덕 신부님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단체입니다. 처음에는 ‘한국헨리조지협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며, 이후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을 거쳐 지금의 ‘희년함께’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령과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한 복음주의자로, 성령의 능력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공의를 이루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토지가 하나님의 것임을 믿는 데서 시작되는 희년 비전은 성령의 능력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외치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념이 현실로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바로 토지 문제였습니다. 북한의 농지 개혁에 이어 남한에서 이루어진 농지 개혁 역시 체제 경쟁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 핵심 또한 여전히 토지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한국 경제의 빠른 성장과 함께 토지 가격은 그 이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며, 이는 주택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아파트 가격을 떠받치고 있는 토지 문제가 한국 사회 갈등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토지를 누가 먼저 자신의 소유로 확보할 것인가를 두고 생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외침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토지의 공공성은 자본주의와 배치되는 가치가 아닙니다. 사유재산제의 근간이 되는 개인의 소유는 자신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받아 노력한 만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토지는 공기, 물, 자연 자원과 같이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며, 누구도 생산한 적이 없는 자원입니다. 따라서 토지를 사용한 만큼 그 대가를 토지 보유세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토지 보유세 논쟁이 시작된 것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입니다. 강남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노무현 정부는 조지스트 경제학자로 알려진 이정우 청와대 정책위원장을 영입해 종합부동산세 제도를 도입하고, 장기적인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일명 종부세 논쟁으로 불린 부동산 전쟁은 한국 사회의 치열한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안타깝게도 논쟁은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이념 대립으로 격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세금 폭탄”이라는 비난이 이어졌고, 종부세는 한국 사회 보수 기득권층의 민감한 사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성토모를 중심으로 한 교수들과 활동가들은 시민사회와 연대해 ‘토지정의시민연대’를 조직하며 활발한 기고와 연구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2007년 ‘토지+자유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성토모는 토지정의 운동이 성서의 희년 비전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교회 공동체와 기독인의 희년 실천 운동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2010년 현재의 ‘희년함께’로 이름을 변경하고 기독 희년 실천 운동에 집중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제도적 희년과 자발적 희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는 희년 정신이 제도적으로 구현되도록 기도하고 연구하는 것과 함께, 이를 지금 여기서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희년함께는 그동안의 걸음을 통해 제도적 희년을 외치면서도 자발적 희년 실천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회원들의 공감대를 반영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공모를 통해 선정된 ‘희년함께’라는 이름에는 희년을 지금 여기서 함께 이루어 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자발적 희년 실천의 방향성에서는, 희년 비전이 각 지역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신념과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희년함께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나라와 사회 공동체에 실현되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 청사진이 희년 비전에 담겨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순절 초대교회 공동체에 임한 성령은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체적인 비전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지금 우리의 믿음과 실천에 달려 있다는 간절한 열망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사회 공동체가 불가능한 꿈으로 잃어버린 희년을,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토지를 팔아 공동체 안에서 실천했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이 교회 공동체에서 먼저 실천되었을 때, 세상은 교회 공동체를 칭송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희년함께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희년을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들과 함께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희년 비전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2016년에 시작된 희년은행은 그 노력의 작은 열매입니다. ‘청년부채탕감운동’으로 시작해 고금리 대출과 높은 주거비로 고통받는 청년들을 지속적으로 돕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는 무이자 저축 희년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희년은행은 680여 명의 조합원과 교회 공동체 단체 조합원이 함께 십시일반으로 모은 무이자 저축 출자금 약 7억 6천만 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금리 대출을 무이자 전환 대출로 지원하고, 주거 지원 대출 및 공동 주거 지원 대출 같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토지의 공공성을 보드게임으로 경험할 수 있는 ‘두 개의 세상’ 보드게임을 출시하였으며 추석 전 주일에는 ‘희년실천주일’로 정해 희년의 정신이 더 많은 교회 공동체에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희년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는 일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공동체만이 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희년함께는 자발적으로 희년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는 교회 공동체가 여전히 이 땅의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토지가 하나님의 것’임을 잊어버린 공동체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광의의 ‘토지’는 인간의 노동이 가미되지 않은 모든 자연을 의미합니다. 토지, 공기, 물, 자연 자원이 사유화되면서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이 이어져, 지구 공동체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로 대표되는 구체적인 외부 효과는 지구 공동체 모두의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는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외침을 계속해야 합니다.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종식시킬 새로운 희년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희년함께는 사회 공동체에서 새로운 희년 비전을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가 평화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작은 희년 실천이 이 땅의 신음하는 이웃에게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희년 실천이 연결되고 함께할 때 구체적인 변혁 운동이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년함께는 교회 공동체들의 희년 실천을 지원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함께 희년 비전을 이루어 가는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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