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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국립중앙박물관뿐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도 영혼을 풍요롭게 할 특별한 경험을 찾아다닌다. 이미 종교사회학 쪽에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SBNR’(Spritual But Not Religious, 영적인 그러나 종교적이지는 않은)의 현상화가 이제야 뚜렷하게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

 

이민형(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교수)

 

몇 해 전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은 아이와 가기 좋은 곳이었다. 아이의 보폭으로는 하루 종일 걸어도 될 만큼 넓었고, 호기심 왕성한 아이의 눈을 채워 주기 좋은 전시물이 가득했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의 손에 쥐여줄 기념품도 판매했고,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다녀도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한산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매우 제한적인 한국에서 이곳만큼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어 종종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인가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와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일부러 평일 오전 시간에 방문했는데도 적지 않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전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기사를 살펴보니, 코로나19 이후로 관람객이 늘기 시작해, 2023년에는 약 418만 명, 2024년에는 약 378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올해는 8월까지 집계된 방문객 수만 약 407만 명이라고 하니, 1945년 개관 이래 최다 인원이었던 2023년의 기록(?)을 경신할 수 있겠다 싶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역시나 “K-문화”의 힘을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 특히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인기가 관람객 수의 증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어느 정도야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만으로 아시아 1위, 전 세계 8위라는 순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공개 전부터 관람객의 숫자는 기록적으로 증가했으며, 한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외국인 방문객보다 내국인 방문객이 숫자나 증가율에서도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류가 아닌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끌어모으고 있음이 분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photo by 김현아

 

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기 위해 기사를 검색하다, 민병찬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그는 2020년 신임 관장으로 임명된 후, 박물관의 운영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관람객 한 분 한 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 그의 각오는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었다. 전시물의 특성에 맞춘 공간 배치, 관람객들의 성향에 따른 전시 방법의 다양화, 전시 유물을 그대로 활용한 굿즈 판매 등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전형적인 박물관 관람이 아닌 다채롭고 풍성한 경험을 선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적중했다. 실제로 많은 관람객들이 이에 대한 방문 후기를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진짜 매력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나 역시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직 서로 간의 거리를 지켜야 했던 그즈음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날 처음으로 ‘사유의 방’이라는 곳에 들어가 봤다.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 끝에 마주한 두 점의 반가사유상.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깨달음을 미루고 생각에 잠긴 그 모습은, 잠시지만 어두운 통로를 지나쳐 오며 피어난 내 머릿속의 의구심과 호기심을 한순간에 제압했다. 생각에 잠긴 자태를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며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던 시기여서였는지 몰라도, 그 생각은 결국 불안과 위로로 이어졌다. 박물관에서 지식이 아닌 위로를 받다니. 불자가 아닌 내게도 너무나 강렬했던 그 경험이 기억에 남아, 요즘도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면 최대한 사람이 없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사유의 방”에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서는 길에는 늘 고민한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앞에서 매번 손을 뻗었다 접었다 하는 나를 발견한다. 서로 따르고자 하는 바가 다르니, 그 미니어처 역시도 나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유의 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작은 기념품에 신묘한 힘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날의 경험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충분히 충족시킬 만큼의 퀄리티를 가진 물건을 누구나 구매하여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전시된 반가사유상 photo by 김현아

 

비록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경험한 것 중 아주 일부를 소개한 것이지만, 여기서 이미 “영혼의 풍요로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따닥따닥 붙어 있는 유물을 스치듯 지나가며 관람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진 박물관이 유물을 느끼고, 체험하고, 심지어 소장까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특히나 감성이 중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였을 것이다.

 

비단 국립중앙박물관뿐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도 영혼을 풍요롭게 할 특별한 경험을 찾아다닌다. 이미 종교사회학 쪽에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SBNR’(Spritual But Not Religious, 영적인 그러나 종교적이지는 않은)의 현상화가 이제야 뚜렷하게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는 표현을 기존 개신교의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이라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그런 개념, 그러니까 굳이 풀어쓰자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적 존재와의 특별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적’인 경험은 매우 감각적이다. 그들은 매우 다양한 매개를 통해 영혼을 충족시킨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를 예로 들자면, ‘사유의 방’으로 가는 어두운 통로, 텅 빈 공간에 놓인 두 점의 반가사유상, 침묵, 그곳의 공기와 내음, 그리고 그 기억을 이어줄 물건.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영적인 경험을 촉진하는 매개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영적인’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어떤 것은 경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채널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영적인 것을 차원 너머의 것으로만 상정해 온 이유는 그것을 언어에 담을 수 없어서였다. 언어 중심의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처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개신교의 언어 중심성, 이성 중심성, 논리 중심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신비의 자리가 부정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성(사실 그조차도 감정적 경험의 결과라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과 감각을 주셨음을 기억한다면, 개신교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그것을 찾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일 예배를 서둘러 드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혼을 채우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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