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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5년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6명의 스피커들을 차례대로 초청해 “한국 교회,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다양한 말들이 얽히고설킬 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겁니다. 총 6명의 스피커들은 각기 다른 자리에서, 각자가 포착한 ‘말’을 내뿜었고, 이를 엮은 책이 바로 야다북스에서 출간한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입니다. (본문 중)

 

홍동우(목사, 사당역성경공부방)

 

권수경 외 지음│『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야다북스

2025. 11. 20.│288쪽│17,000원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시간은 늘 동일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역사는 다릅니다. 때론 정주하기도 하고, 때론 거칠게 앞을 향해 달려 나가기도 하지요. 특별히 지난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 역사는 ‘기호지세’(騎虎之勢), 말 그대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입니다. 그날 이후 역사의 시계는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중입니다. 다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또한 어디쯤 와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서 불안할 따름이지요. 특별히 ‘한국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일부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기호지세’ 속 한국 사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 교회 또한 ‘기호지세’에 있으니까요. 이때 우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각자 선 자리에서 내뱉는 ‘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야 비로소 우리가 선 좌표를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2025년 7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6명의 스피커들을 차례대로 초청해 “한국 교회,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다양한 말들이 얽히고설킬 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겁니다. 총 6명의 스피커들은 각기 다른 자리에서, 각자가 포착한 ‘말’을 내뿜었고, 이를 엮은 책이 바로 야다북스에서 출간한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입니다. 모든 글이 다 관심을 끌었지만 저에겐 특히 권수경 목사님과 박성철 목사님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권수경 목사님의 글이 ‘한국 교회’의 오늘을 조망한다면, 박성철 목사님의 글은 ‘한국 사회’의 오늘을 조망합니다.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이들이라면, 각기 다른 시선을 담고 있는 ‘말’을 통해 우리 처한 현실의 갈피를 잡는데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표지 ⓒ야다북스

 

“한국 교회의 우상숭배”-권수경

 

12.3 계엄 이후 한국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통 중의 하나는 바로 ‘한국 교회’입니다. 정치적 의식을 갖춘 시민들은 앞장서서 국회의사당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일부 정파의 정치적 폭주를 막아 세우고 새로운 역사의 분기점을 만들어냈습니다. 세계의 여러 언론 또한 대한민국 시민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반면 한국 교회는 12.3 계엄에 앞서 ‘한국 교회’의 이름으로, 또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습니다. 겉으로는 계엄과 전혀 무관해 보입니다. 하지만 ‘계엄’과 ‘독재’를 꿈꿨던 일부 정파를 추종하는 스피커들이 집회의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2025년 1월 19일 새벽에 일어난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사태’에는 ‘사랑제일교회’라는 이름, 그리고 ‘특임 전도사’라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직분이 등장합니다.

 

이와 같은 현실 기저에는 뿌리 깊은 한국 교회사의 적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권수경 목사님의 글은 이를 잘 지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설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정치와 교회 사이의 밀월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승만 정권은 ‘국가 행사를 기독교적으로 치렀고’(21), ‘육군에 종군 목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21). 말 그대로 교회의 민원을 해결한 겁니다. 권수경 목사님은 한국 교회는 이승만 정권이 ‘성경적 가치’를 지켜서 지지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민원을 해결해 주었기에 지지한 것이라며 ‘일종의 압력 단체’(21)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진단합니다. 덧붙여 당대의 한국 교회 지도자였던 한경직 목사님은 이승만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단에서 자주 설교하는 동시에, 한민족을 선민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 목사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국 교회 역사는 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집니다. 박정희 정권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과는 달리 박정희 대통령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한경직 목사님은 여전히 권력 친화적이었습니다. 삼선개헌 후 ‘박정희를 축복’하거나(25), ‘유신을 공개 지지’하는(25) 행태를 서슴지 않습니다. 특별히 CCC의 창립자 김준곤 목사님 또한 개헌과 유신의 성공을 빌면서 자신이 그리던 ‘민족 복음화’의 꿈을 이루는 데 권력의 협조를 얻어냅니다. 권수경 목사님은 이와 같은 행태를 ‘반쪽 복음’(27)이라 규정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김준곤 목사님의 사례는, 그런 분들이 정치가 실현해야 할 ‘정의, 인권, 평등’(28)을 기독교의 영역으로 보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방증입니다. 사회의 병폐와는 무관하게 권력이 교회의 민원을 해결해 줄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는 인식입니다. 이처럼 한국 교회와 권력이 나눈 밀월의 역사는 뿌리 깊습니다.

 

권수경 목사님의 진단에 비추어 ‘한국 교회’를 보면 교회 일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정치 참여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대표 지도자들은 대한민국 정부 설립 이후 스스로를 한국 사회와 심리적으로 동일시 해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계 및 재계에서 한국 사회를 선도하는 엘리트들 또한 다수가 한국 교회 구성원이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일부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또한 한국 교회를, 한국 사회의 주류로 여겨왔습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볼 때에 최근 사실상 주류 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정치사의 흐름은, 곧 한국 교회가 주류로부터 이탈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즉 ‘한국 교회’라는 이름으로, 또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10월 27일, 그리고 특정 교회가 연루된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사태’ 또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한국 교회 적폐의 열매인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 극우의 문제”-박성철

 

또한 12.3 계엄 이후 당혹스러운 현상 중의 하나는 ‘극우’입니다. 특별히 최근 나타나고 있는 현상에는 ‘젊은 남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또한 때로는 ‘한국 교회’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보입니다. 지금껏 ‘태극기 집회’란 이름으로 광화문에 모이던 노년층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한국 교회사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결부시키면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단순히 반공 이데올로기로는 해설할 수 없습니다. 박성철 목사님의 진단에 따르면 이는 ‘단기간에 급속한 변화를 경험한 사회’(141)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구조의 중첩’(141) 때문입니다. 이에 기반하면 각 개인들은 ‘다층적 정체성’(143)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문제 대다수는 과거처럼 거대 담론으로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이는 특별히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이대남 현상 및 극우 현상을 이해하기에 좋은 개념 틀입니다.

 

먼저 이대남 현상은 다소 모순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반대합니다. 반면 ‘여러 사회 조사를 따르면 … 다른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상당히 높은 성평등 의식’(148)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자면 이대남 현상의 본질은 ‘남성과 여성의 갈등’(149)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수용하면서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 기성세대’(149)에서 원인을 찾아야만 합니다. 특별히 박성철 목사님은 이와 같은 현실이 난망하다고 진단합니다. 쉽게 말해 이대남들이 갈등의 본질을 수용하고, ‘기성세대 남성들의 기득권을 해체’(149)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도 큰 에너지와 헌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문제의식과 해결 방법 사이의 큰 간극은 결국 포퓰리즘이 득세할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실제 맞서 싸워야 할 정적은 강하기에 회피합니다. 반면 응축된 에너지는 분노로 표출되며 가상의 적으로 향합니다.

 

이는 결국 세계적으로 흥왕하고 있는 청년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로 오늘날의 극우화 현상은 세계를 휩쓸었던 근대적 파시즘, 히틀러 및 나치와는 다소 결을 달리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탈근대 파시즘의 문제 중 하나로 박성철 목사님은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꼽습니다. 이는 앞에 언급한 이대남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 구조는 무척이나 중첩되어 이전처럼 거대 담론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반면 현실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들의 분노는 커져 가며, 이 문제의 해결은 난망합니다. 따라서 소외된 이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호출합니다. 이전의 정치적 문법을 거스르는 ‘특별한 방법’(158)을 감행할 수 있는 이에게 ‘전권’을 쥐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열광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극단적 권위주의’, 즉 ‘극우’가 탄생합니다. 결은 다소 다르지만 근대적 파시즘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박성철 목사님의 진단에 비추어 ‘한국 사회’를 보면 선진국이 되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급속한 변화에 따라 우리의 사회 구조는 다변화되었습니다. 미시적으로 다양한 갈등이 각각 산재해 있지만, 정치권력 또한 분화된 나머지 이를 해결할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포퓰리즘은 득세하고, 이와 함께 탈근대 파시즘 현상이 두드러지는 중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사회 현상은 앞서 살펴본 한국 교회의 기이한 정치 참여 행태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반면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이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 갑니다. 응축된 분노는 자연스레 기괴한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실제 12.3 계엄 이후 드러난 다양한 현상 기저에는 사회적 붕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2.3 계엄 이후 우리는 ‘기호지세’라는 말 그대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우리는 어디쯤 왔고,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실천 이전에 진지한 고민과 대화가 선행되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저에겐 『12.3 계엄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의 저자들이 대화의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었습니다. 드러난 현상은 단순해 보이고 기괴하지만, 이면에 자리한 역사의 흐름은 다층적이면서도 나름의 흐름이 있습니다. 이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다면, 우리의 고민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또한 고민이 풍성해지는 만큼 우리의 실천 또한 명료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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