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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가치는 건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쌓은 시간과 노동, 관계와 기억이 땅의 가치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것을 형성한 사람들에게 권리가 있다. 이렇듯 수십 년 동안 정릉골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온 삶의 흔적이 지금의 정릉골과 그 가치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마을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 목소리가 존중받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요구가 아닐까. (본문 중)

 

김지만(희년함께 희년실천센터장)

 

황량함 속에서 발견한 ‘사람의 마을’

 

지난해 여름, 기독청년반빈곤네트워크 연대 활동을 통해 정릉골(서울 성북구 정릉동 757번지)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릉골은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오래된 주거지로, 수년째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재개발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주민 대부분은 이미 떠났지만, 여전히 삶의 터전을 지키는 원주민과 세입자가 남아 있다. 최근에는 이들에게 강제 집행이 이루어지면서 주거권 보장과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산 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 마을은 연대 활동이 아니었다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곳이었다. 재개발이 길어지며 빈집이 늘어났고 곳곳에는 철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처음 마주한 풍경은 황량했다. 깨진 창문과 허물어진 담장, 사람 흔적이 사라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걸어보니 다른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곳에서 밥을 짓고 있었고, 누군가는 마당의 화분을 돌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이웃 간의 관계도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은 여전히 마을이었다.

 

최근 강제 집행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은 정릉골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도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법적 기준이라는 이름의 부조리

 

정릉골 재개발 과정에서 원주민과 세입자에게 제시된 이주 대책은 충분하지 못하다. 특히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이주비는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법적 기준을 충족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준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땅의 가치는 건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쌓은 시간과 노동, 관계와 기억이 땅의 가치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것을 형성한 사람들에게 권리가 있다. 이렇듯 수십 년 동안 정릉골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온 삶의 흔적이 지금의 정릉골과 그 가치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마을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 목소리가 존중받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요구가 아닐까.

 

ⓒ김지만

 

토지는 누구의 것인가

 

정릉골 현장에는 “명품 단지보다 주거권이 먼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실 이 문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이 당연한 말조차 설득해야 하는 주장이 되어 버렸다.

 

주거 공간은 상품이기 전에 삶의 토대다.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보장받을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다. 그래서 주거권은 단순한 복지 정책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다.

 

희년함께는 오랫동안 토지 가치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토지 가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그렇기에 그 이익 역시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성경 속 희년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레위기 25장에서 하나님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인간이 땅의 절대적 소유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땅에 거주하는 나그네와 동거인으로 묘사한다. 희년의 실천은 바로 이러한 신앙고백 위에서 시작된다. 성경의 희년 정신은 토지를 독점하거나 오랜 삶의 터전을 빼앗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 터전에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도시

 

그래서 정릉골 문제는 단지 한 지역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땅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는 땅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가장 약한 이들 삶까지 품어내는 땅에서 살 것인가.

 

나는 서울이 조금 더 따뜻한 도시이기를 바란다. 개발의 속도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도시, 누군가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지 않는 도시,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 말이다.

 

이날 강제 집행이 중단된 뒤 현장을 지키던 연대인들이 열었던 작은 집회에서 한 활동가가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정릉골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인 모습을 보며 강제 집행인은 물었다고 한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그는 짧게 답했다.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따뜻한 도시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따뜻한 도시는 거대한 건축물이나 화려한 개발 계획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을 때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곁에 서서 함께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정릉골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런 도시가 아직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있었다. 희년은 먼 미래의 이상향이 아니라, 바로 그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연대 속에서 오늘도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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