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러시아 병사는 용케 잘 견뎠지만. 쿠르스크의 북한군 병사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다쳤거나 탈진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무엇을 원했을까? 아마 자유로워지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을 것인데, 그게 하늘이었을 것이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2025년 2월 5일, 우크라이나의 종군기자 안드리 차플리엔코(Andriy Tsaplienko)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밝혔다. 북한군이 철수한 전선에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고 목을 맨 나무에는 ‘하늘’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 채널이 “북한군의 극단적 선택이 체계화되고 있다”며 첨부한 사진. /텔레그램
20대였을 북한군 병사는 먼 이역 땅에서 죽기 전 ‘하늘’이라는 글자를 썼다. 왜 충성, 조국, 투쟁, 혹은 어머니나 자기 이름도 아니고 하늘이었을까.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풍경 화가가 있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ar Friedrich)이다. 화가 이름은 낯설어도 한 남자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끝에 홀로 서서 발밑에 끝없이 펼쳐진 자욱한 안개구름을 내려다보는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봤을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 나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본다.
화가에게 하늘과 땅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영혼이 머무는 곳이었다. 하지만 평생 조국(수령과 노동당)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게 최고의 가치라고 배웠을 병사에겐 지친 영혼이 쉴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고, 오히려 죽음이란 극한의 순간을 봤을 것이다. 『아연 소년들』1) 속 한 병사처럼 말이다.
그래, 나는 사람을 죽였어 … 왜냐하면 살고 싶었으니까 … 첫 전투에서 동료들이 엄청난 충격에 빠지는 걸 봤어요. 기절들을 하고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을 하는 병사가 있었죠. 전투가 끝나고 나면 나무에 사람 귀가 걸리고 … 눈알이 빠져 얼굴 위로 흘러내리고 … 나는 용케 잘 견뎠어요!
아프가니스탄의 러시아 병사는 용케 잘 견뎠지만. 쿠르스크의 북한군 병사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다쳤거나 탈진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무엇을 원했을까? 아마 자유로워지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을 것인데, 그게 하늘이었을 것이다.
하늘은 경계가 없고 자유롭다. 평생 이념과 통제 속에 묶여 살았던 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봤고 자신이 느끼는 생각을 나무에 적었을 것이다. ‘하늘’. 그것은 그가 살면서 마주한 가장 순수한 심리적 도약이었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외쳤는데, 북한군 병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길 소망한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라는 말은 자신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마음속 생각이듯이, 병사가 남긴 ‘하늘’이란 단어는 그의 마음속 소망을 보여 준다. 그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그 마음을.
3만 명의 북한군 병사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으로 추가 파병될 것이고, 북한은 대가로 SLBM 기술을 요구한다는 뉴스가 무성하다. 파병되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탈진할 텐데, 북한군 병사의 죽음을 통해 본 삶은 공평치 않고 모든 것을 잊고 살기엔 우리의 가슴은 너무 여리다.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아연 소년들』, 박은정 옮김(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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