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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애 예능이 세대를 불문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이란 완벽한 조건의 결합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기꺼이 품어줄 ‘단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그 여정을, 화면 너머로 함께 응원하며 위로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국내에서 방영되었거나 방영 중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무려 70개가 넘는다. 취업난과 집값 폭등으로 2030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애 예능의 폭발적인 인기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여전히 사랑과 결혼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경험해 보니 사랑은 참 신기하다. 단 한마디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하루가 너무나 짧게만 흘러갔다.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고도 아쉬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눴다. 더욱 신기한 건, 서로 친밀해질수록 상대의 관심사가 어느새 내 관심사가 되어 간다는 점이다. 소설 속 세상도 이런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건 PD와 공진솔 라디오 작가의 사랑을 극적이고 불꽃같은 감정이 아니라, 일상 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잔잔한 온기로 묘사한다. 매일 기록하는 일기장처럼, 사랑은 하루의 끝을 함께 나누는 일상 그 자체로 다가온다.
반면, 어떤 사랑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강력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상처와 버림받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현실 속에서 사랑은 고통인 동시에 구원이 되는 양면성을 보여 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역시 사랑을, 잊고 살았던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확실한 감정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소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통해 사랑의 환상을 걷어낸다. “사랑하면 행복해질까? 아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자문자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사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닮았다는 걸. 사랑은 묵직하고 뭉툭하며, 피투성이에 성난 주먹처럼 꽉 웅크린 심장 모양을 한 채 우리를 뒤흔든다.

ⓒUnsplash
우리가 흔들리는 건, 사랑이 감정의 선택이지만 결혼은 현실의 결정이어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세상에 완벽한 선택이 있는지. 이쪽을 선택하면 이런 문제가 불거지고, 저쪽을 선택하면 저런 한계에 부딪힌다. 인생에서 신호등이 일제히 청신호로 바뀌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만큼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결혼은 치밀한 손익 계산이 아닌, 온전한 배려이자 서로를 품어주는 과정이 된다. 웹툰 작가 침착맨(이말년)이 남긴 결혼 축사처럼 말이다.
결혼 생활이란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주는 추억 블록을 모아 가는 것. 억울한 일을 억울하지 않게 지켜보는 것. 무플인 서로의 글에 댓글 한 개 적어 주는 것. 오늘따라 평소와는 다른 상대방에게 갸우뚱하는 것.1)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아무리 신중해도 실수는 피할 수 없고, 가끔은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 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연애할 때는 미처 몰랐지만, 결혼하니 사랑도 삶이 으레 그렇듯 불쑥 커브볼을 던지곤 했다. 연거푸 헛스윙하며 배운 게 있다. 세상에 완벽한 커플은 없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연약함을 용납하고 인정하고 품어줄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요즘 연애 예능이 세대를 불문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이란 완벽한 조건의 결합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기꺼이 품어줄 ‘단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그 여정을, 화면 너머로 함께 응원하며 위로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1) 2021년 12월 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침착맨의 결혼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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