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퍼는 기독교 국가를 꿈꿨을까, 권력의 한계를 물었을까

기윤실, 지난 19일 ‘아브라함 카이퍼와 한국기독교(운동)’ 세미나 개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정병오·신동식·이상민)이 네덜란드 신학자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을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춰 재조명하고, 기독교 시민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기윤실은 지난 19일 숭실대학교 가치와윤리연구소와 공동으로 ‘아브라함 카이퍼와 한국기독교(운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포이동-카이퍼-광주’를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카이퍼의 영역주권과 일반은총 사상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한국교회에 주는 시사점을 논의했다.

발제를 맡은 김정기 연구원(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신학대학교 신칼빈주의연구소)은 카이퍼가 활동했던 19세기 네덜란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소개하며 그의 사상이 국가의 통제에 맞선 사회적 투쟁 속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영역주권이 국가가 교육과 교회, 시민사회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권력을 제한하고 각 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원리라고 강조했다. 일반은총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신학적 의미를 넘어, 사회의 악을 억제하기 위한 시민과 여러 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는 사상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서울 포이동 266번지 재건마을과 광주민주화항쟁을 사례로 들며 국가가 시민의 삶을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권한을 남용할 때 이에 저항하고 견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카이퍼 자신도 총리 재임 시절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에 대한 군사적 폭력과 철도 파업 진압에 관여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기독교인이 권력을 잡는다고 국가가 저절로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박현철 대표(청어람ARMC)는 국가 권력의 남용뿐 아니라 돌봄과 양육, 노동자 안전, 장애인 인권 등 공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시민운동이 교회의 자유를 넘어 모든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는 데 나서야 하며, 저항의 과정에서도 혐오보다 사랑과 환대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은정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는 국가뿐 아니라 거대 기업과 시장 권력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4년 쿠팡 택배노동자 정슬기 씨의 과로사 사건에 대응했던 기독교 시민사회의 연대 활동을 소개하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신형 교수(숭실대학교 가치와윤리연구소)는 카이퍼의 사상을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게 해석하되,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병오 공동대표 역시 서로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는 한편,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는 시민사회 스스로의 권력화도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의응답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보호와 특혜를 기대하는 태도, 청년과 여성의 참여, 문화·예술 영역의 자율성 등도 논의됐다. 김 연구원은 카이퍼의 영역주권이 기독교인의 사회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의 사상을 절대적인 정답이 아닌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윤실은 창립 40주년을 맞는 내년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숭실대학교에서 ‘2027 한국 카이퍼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기독교 신앙과 공공영역의 관계를 비롯한 기독교 시민운동의 실천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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