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감춘 보화 같은 천국을 사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다 파는 게 기독교 신앙이다. 남들은 아깝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깝지 않은, 루터의 말처럼 우리의 누더기와 그리스도의 예복을 바꾸는 ‘놀라운 교환(wonderous exchange)’이다. 인간의 정신적 사랑과 그리스도의 영적 사랑을 맞바꾸는 사건이다. 하나님은 기이한 주고받음을 역사에서도 이따금 드러내신다.(본문 중)

송용원(은혜와선물교회 담임목사)

 

 

그렇게 별들이 많은 줄 몰랐다. 이태 전 가본 몽골 북쪽 국경 어느 호수에서 바라본 별들은 밤하늘에 그저 펼쳐진 정도가 아니었다. 넣을 수 있을 만큼 꾹꾹 눌러 채워 넣은 듯 밤하늘이 별들로 금방 터져버릴 것 같았다. 자식이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텐트 안에서 등잔불만 쳐다보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그냥 보게 하신 정도가 아니라 한번 세어 보라 하셨다. 그날의 밤하늘도 헤아릴 수 없는 별들로 터질 듯했으리라. 아브라함은 별들을 셀 수 없었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마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유한 남자는 마차 안에서 따뜻한 공기와 환한 등불을 즐기고 있다. 가난한 마부는 차가운 밤공기와 싸우며 어둠 속으로 달려야 한다. 부유한 남자가 아름답게 장식된 천장을 향유했는지는 몰라도, 그 너머 별들의 향연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가난한 마부는 아무도 자기 앞길을 비춰주지 않는 것 같아 고독했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찬란한 별빛들이 하늘에서 밤새도록 그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마부에게도 한때 윤택한 시절이 있었는지 모른다. 마차 안에서 나올 일이 없던 때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밤하늘의 별들. 나를 비추던 화려한 램프는 이제 없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영원한 빛의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프랜시스 톰슨은 ‘하늘의 사냥개’에서 노래한다. “하나님이 네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까닭은 너를 해롭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너는 그것을 내 품에서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일어나 내 손을 잡아라. 그리고 내게로 오라.”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기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귀한 사명을 가진 사람일수록 먼 깨달음의 광야로 보내시는 듯하다.

따뜻한 텐트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것, 편안한 마차 안에서도 볼 수 없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광야의 별들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다. 기독교는 따뜻한 텐트와 편안한 마차를 구하는 신앙이 아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어둠 속을 달리면서도 밤하늘의 별들에 감사하는 신앙이다. 사도 요한도 밧모섬 채석장 유배지에서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계신 주님을 만났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사랑을 받았기에, 인간의 정신적 사랑을 채우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던 사도 바울을 떠올렸으리라.

밭에 감춘 보화 같은 천국을 사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다 파는 게 기독교 신앙이다. 남들은 아깝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깝지 않은, 루터의 말처럼 우리의 누더기와 그리스도의 예복을 바꾸는 ‘놀라운 교환(wonderous exchange)’이다. 인간의 정신적 사랑과 그리스도의 영적 사랑을 맞바꾸는 사건이다. 하나님은 기이한 주고받음을 역사에서도 이따금 드러내신다. 1867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7배가 넘는 알래스카 동토를 고작 720만 달러에 사들였다. 난리가 났다. 얼음뿐인 황무지, 볼 것도 없는 변방에 거액을 낭비했다고. 하지만 한 세대도 못 돼 그 땅은 지하자원과 유전이 가득한 노다지임이 드러났다. 교회는 무엇인가? 십자가의 동토에 부활의 보화가 감춰져 있음을 깨달은 공동체다.

텐트와 마차 천장 아래 있는 갈망과 같은 것이 정신적 사랑이다. 이를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라고 본다. 영적 사랑은 주님에게서 나오고 영혼을 세워주는 사랑이다. 저 높은 별들을 향한 염원이다. 2000년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정신적 사랑을 걷어내고 영적 사랑이 가득할 때, 본래의 권위와 기능이 회복되고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반면에 영적 사랑은 없고 정신적 사랑만 득세할 때, 공동체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세상의 멸시를 받았다. 한국교회는 기로에 섰다. 마차 안의 정신적 사랑에 취하다 끝날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 나와 별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영적 사랑을 택할 것인가.

 

 

본 글은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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