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는 학생들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낯설게 보인다. 치열한 경쟁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교육이란 우수 인재 위주로 진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포용, 공정과 평등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합의된 유럽에서는 청소년 수당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인구 감소, 해외 이민자 유입을 먼저 겪었던 유럽 사회는 소외 계층은 물론 이민자 자녀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며 교육한다. (본문 중)
윤철경(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울시 교육청이 내년부터 시범사업으로 ‘학교 밖 청소년 교육기본수당’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친구랑’(서울특별시교육청 학업중단학생 도움센터)에 등록한 학교 밖 청소년(만9세~18세) 가운데 200명을 선정해 교육기본수당을 지급하고 경과를 보아 5,000명까지 지원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논란이 예상된다. ‘학교도 안다니는 말썽꾸러기들에게 왜 돈을 퍼주는 거지?’ ‘학교 그만둔 아이들에게 유흥비를 주는 건가? 돈이 있으면 학교에나 더 쓸 것이지.’ ‘애들 보고 학교를 그만두라고 부추기나? 한 명이라도 학교에 잡아두려고 애써야할 텐 교육청이, 나서서 공교육을 포기하는 건가?’
뒤처지는 학생들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낯설게 보인다. 치열한 경쟁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교육이란 우수 인재 위주로 진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포용, 공정과 평등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합의된 유럽에서는 청소년 수당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인구 감소, 해외 이민자 유입을 먼저 겪었던 유럽 사회는 소외 계층은 물론 이민자 자녀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며 교육한다. 또한 학습부진, 빈곤, 장애, 다문화 상황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는 훨씬 많은 1인당 교육비를 배정한다. 출발선이 다른 학생에게는 더 많은 교육비를 투자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도록 학교에 전문 인력과 프로그램을 투입하고 학교 내외의 인적·물적 자원이 동원된다.
학교 밖 청소년 규모는 7~18세 39만 명, 19~24세 36만 명으로 추정된다. 20대의 고졸 미만 청소년은 10명 중 4명이 무업상태에 있다(그림1). 학교 밖 청소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무업상태에 있는 주요 이유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휴식하기 위해’ 외에 ‘노는 것이 좋아서’,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등이다(그림2).
그림1. 고졸미만 무업청소년 비율의 연령계층별 변화(단위:%)[1]
그림2. 청소년들이 응답한 무업의 이유[2]
① 일하고 싶으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 ② 하고 싶은 것을 배울 데가 마땅하지 않아서 / ③ 하고 싶은 게 없어서 / ④ 노는 것이 좋아서 / ⑤ 개인이나 집안 사정 상 / ⑥ 군입대·복학·대학입학 등을 기다리느라 / ⑦ 일하다가 휴식하기 위해 / ⑧ 기타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
청소년들은 왜 학교를 그만두게 되나? 무엇보다도, 우리 교육이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유, 초, 중, 고등학교가 모두 대학 진학이라는 한 길로 달려간다. 8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며 대학의 서열화가 공공연한 상태에서 많은 청소년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좌절하고 무기력해 진다. 교실에는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청소년들이 있는데 우리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로만 교육한다. 학교는 그들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는 못하고 어른들은 졸업장을 얻기 위해 참으라 하고 졸업장이 있어야 잘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배움이 없는 교실에서 절반 정도의 청소년들은 겨우 숨만 쉬며 시간을 때우고 죽어가고 있다. 학교에 남아 내신등급의 바닥을 깔아 주고 있는 청소년들은 정말 남을 위해 자기의 존엄성을 내버리며 교실에 남아 있는 셈이다. 이 청소년들이 생기를 찾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할 텐데 학교 역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막막함을 느낀다. 어떤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 학교에서 자기들에게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하다가 종종 말썽꾸러기가 되고 탄압을 받는다. 학교는 이 아이들이 떠나주기 바라고 아이들도 더 버틸 수 없을 때가 되면 학교를 떠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
그러면,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은 어떠한가?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을 5년 동안 추적하며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절반 정도는 검정고시 준비, 자격증 취득, 대안학교 진학 등의 모습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30% 넘게는 아르바이트 등 일을 한다. 소위 비행에 빠지는 청소년은 6-8%, 아무 것도 안하며 집에서 빈둥대는 청소년도 그 정도가 된다.[3]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은 대체로 일을 하며 돈을 버는데, 단순 아르바이트나 진입 장벽이 낮은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진로와 상관이 없는 단순직에 그친다. 일은 많아 힘들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더 공부를 하거나 직업 훈련을 받을 새도 없다. 이들은 또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이유 하나로 문제아라는 편견과 온갖 차별에 시달린다. 그런 경험을 통해 사회를 원망하거나 자책에 빠지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부모의 빈곤, 방치, 학대까지 겹쳐지는 경우에 이들은 집을 나간다. 어린 나이에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렵고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잠잘 곳을 구하려다가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 무엇을 하고 있든 청소년기는 불안의 시기이다. 이 불안감 때문에 이들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느낀다.
출처: Unsplash
외국의 사례
이러한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해 다른 나라는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나? 유럽 연합은, 학교를 떠난 청소년에게 4개월 이내에 직업과 관련된 교육 및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청년보장제’(Youth Guarantee)라는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는, 15~16세가 되면 자신의 진로와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하도록 하는데, ‘16+학습선택권’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이 진로와 직업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선택을 한 명도 빠짐없이 이수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한다. ‘16+데이터허브’는 청소년들의 사회적 소재를 파악하고 관리하는데, 무업 청소년을 파악하여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도록 촉진하고 교육 수당, 또는 훈련 수당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면 즉시 지역당국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며 지역당국은 편지나 전화, 가정방문을 하여 각 사례를 관리한다. 이들의 정보망을 구축, 모니터링하며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여 지원한다. 취업 준비가 잘된 청소년과, 취업에 장애가 있어 상당 기간 사전 교육이 필요한 청소년을 분류하여 각 청소년의 필요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유럽 국가들의 사회적 포용이라는 교육적 가치, 16세부터 시작하는 직업교육 체계, 학교와 학교 밖을 연계한 교육, 단 한명도 놓치지 않고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 보장제, 이를 위한 데이터허브 구축과 사례 관리, 교육 및 훈련 수당 지급, 지역당국 책임 하에 제공되는 직업훈련 등의 체계들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교육기본수당 정책의 의의
1인당 GNP가 3만 달러를 넘는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이미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은 자녀 교육을 위해 공교육을 넘어서서 해외 유학을 비롯한 온갖 좋은 기회를 활용하고 있다. 반면에 공교육에서 뒤처지고 부적응하면 다른 아무런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도 있다. 국가는 이들에게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직업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학교에 남아 있으면 받을 수 있는 연간 일천만 원 정도의 혜택을 전혀 받을 기회가 없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있다. 특히 저임금 노동에 편입되어 공부할 기회도, 직업훈련의 기회도 없는 이들을 돕는 일이 시급하다.
교육기본수당은 학교를 나가면 위치를 찾을 수 없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하게 유도하고, 각 사례를 관리하여 이들에게 맞는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단계로 가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이다. 경제적 약자인 노인에게 노령연금을 제공하듯이 한참 배워야할 나이의 청소년에게 교육기본수당을 제공하여 돕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교육 및 직업훈련 체계로 이끌어 장차 건강한 시민이며 책임 있는 납세자가 되도록 성장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기본수당은 교육 부문의 소중한 정책적 진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 경제활동인구조사의 2017년 데이터를 활용하였음. 출처: 윤철경 외, 『학교밖청소년 질적 패널조사 I』(미간행,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8).
[2] 윤철경 외, 『학업중단 청소년 패널조사 및 지원방안연구』(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5).
[3] 윤철경 외(2015). 학업중단 청소년 패널조사 및 지원방안연구 Ⅲ. p.184; 윤철경 외(2016). 학교밖청소년이행경로에 따른 맞춤형 대책 연구I,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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