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과 조류독감 때처럼, 발생 즉시 주변 농장의 건강한 돼지들까지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목으로 마구잡이식으로 살처분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된다. 일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정해진 지침을 따라 고통을 최소화하며 처리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기본적 예의다. 하나님께 ‘생육하고 번성’할 복을 허락받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본문 중)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는 얼마나 될까? 벌써 한 달째 계속되고 있는 이 병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생한 치명적 바이러스성 출혈성 돼지 전염병이다. 파주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연천, 김포, 강화, 강원 철원 등지로 계속 퍼져 지금까지 대략 15만 4,500여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되었다. 심지어는 기르는 돼지들뿐 아니라 야생 멧돼지들까지 총기 포획되고 있다. 급성형 열병 감염 시 치사율이 거의 100%인데다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발생지 반경 3㎞까지 살처분하고 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 때처럼, 발생 즉시 주변 농장의 건강한 돼지들까지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목으로 마구잡이식으로 살처분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된다. 일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정해진 지침을 따라 고통을 최소화하며 처리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기본적 예의다. 하나님께 ‘생육하고 번성’할 복을 허락받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매년 반복되는 가축들의 희생을 줄이는 일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 가축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이 그 희생을 줄이기 위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들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겪는 고통의 근본적 원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축들의 질병은 공장식 축산방식과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전적으로 집약화된 데다 효율만을 추구하는 현대 축산방식이 문제다. 밀집한 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고기’나 ‘알’만 생산하게 하면서 면역력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다. 돼지들은 평생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사육되다가 먹이가 되고, 암퇘지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누워 새끼들에게 젖만 먹이다가 죽는다. 이런 고통 속에서 나고 자란 가축들에게서 얻는 고기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먹을거리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 9:4) 하신 말씀에 해당하는 먹을거리일 것이다.[1]
그러므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인수공통전염병은 아니라며 안심하고 소비해 달라고 홍보하기 전에, 가축들이 건강히 자라날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1㎡에 닭은 9마리, 오리는 2~3마리를 넘지 않아야 각자의 고유 습성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할 적정 공간인 것이다. 사실 조류독감 때 사육 동물의 개체간 거리를 확보한 농장에서는 질병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식단이 고기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육식보다는 곡식과 채식 위주의 밥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축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의 14%나 된다. 식량 생산과 소비 시스템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25%인데, 그 가운데 약 80%가 축산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밥상에 올라가는 고기가 늘어나면 지구 온도는 더 올라갈 것이다. 결단이 필요하다. 육식의 증가와 공장식 축산의 확대로 기후 위기를 부추기고, 숲을 파괴하고, 식량과 물 부족을 부르고, 수질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결국 가축들에게 적절히 생육하고 번성할 공간을 제공하고, 가급적 육식보다는 곡식과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것은 가축들뿐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도 유익하다. 게다가 대량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인 메탄가스 문제, 방목지 확보를 위한 거대한 산림 훼손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육식 1인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채식 20인분의 식량과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고기를 먹는 것이 다른 누군가를 목마르게 하고 굶주리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데 어찌해야 할까? 기후 위기의 측면에서는 육식의 제한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 온도 상승에 끼치는 영향력이 100배나 더 큰 메탄가스를 감소시키므로 효과도 즉각적이다.[2] 그러니 곡식과 채소를 즐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롬 8:19) 이웃인 지구 생명들은 더 행복해 할 것이다.
내 몸처럼 이웃을 돌보아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밥상을 차리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각자 대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매일매일 채식을 할 수 없다면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3]이 제안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고기 없이 지내는 것도 좋겠다. 7명이 매주 하루씩 채식하는 것만으로도, 매년 1,200여 평의 숲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매일 한 끼를 채식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거기서부터 처음 밥상(창 1:29)은 회복될 것이고 ‘하루의 양식’(마 6:11, 출 16:16-20)으로 풍성히 누리며 나누는 삶을 경험할 것이다.
지구적 재앙을 부추기는 ‘죽임의 먹을거리’가 아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 ‘생명의 먹을거리’로 교회와 교우 가정의 밥상을 차리는 일을 확산해 보자. 그 밥을 먹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기후 위기는 당장 막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 모두가 골고루 풍성히 사는 세상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한 선택은 소중한 의미가 있다. 더 많은 이들이 가능한 대로 채식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와 지구의 생명과 미래가 더 건강하고 더 풍성해질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
[1]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먹을거리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수백만의 가축들이 반복적으로 살처분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고기 소비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량은 매년 늘어, 2016년 현재 1인당 연간 52.5kg의 고기를 먹고 있다. 소고기를 9.6kg, 돼지고기를 28,4kg, 가금육(닭, 오리)을 14.2kg을 먹는다. 지난 30년 사이 거의 3배나 늘어난 양이다. 반면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 1년에 61kg밖에 먹지 않는다.
[2]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에 비해 대기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 20년 단위에서는 이산화탄소의 104배, 100년 단위에서는 28배의 영향을 끼친다.
[3] http://www.meatfreemonday.co.kr/mfm_new/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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