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고고한 연예』는 ‘달문’이라는 광대 이야기다. 아니, 그는 광대이자 거지 두목이었고 인삼 가게 점원이었다. 아니, 그런 건 그가 맡았던 역할일 뿐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예인(藝人)이었고 무엇보다 진실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끝없이 믿는, ‘대책 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착하다는 건, 물러 터진 것과는 다르다. 달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착한 사람이 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책의 줄거리를 간추릴 마음은 없다. 달문이 말하는 ‘믿는다’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본문 중)

홍종락(번역가, 작가)

 

이번 달에 생각해 볼 책은 김탁환 작가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북스피어, 2018)다. 여러 경로로 동시에 어떤 책을 추천 내지 소개받게 될 때는 그 책을 꼭 보라는 섭리인가 싶어지는데, 하여간 그렇게 해서 구해 보게 된 책이다. 대단한 흡인력이 있었다. 당시에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책을 번역하느라 기운이 다 빨리는 기분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니 힐링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뻔히 보면서도 『이토록 고고한 연애』라고 읽었다. 책의 진도가 한참 나가고 나서야 제목을 제대로 고쳐 읽고서는,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아직 젊구나.’ 그럼, 그럼.

『이토록 고고한 연예』는 ‘달문’이라는 광대 이야기다. 아니, 그는 광대이자 거지 두목이었고 인삼 가게 점원이었다. 아니, 그런 건 그가 맡았던 역할일 뿐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예인(藝人)이었고 무엇보다 진실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끝없이 믿는, ‘대책 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착하다는 건, 물러 터진 것과는 다르다. 달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착한 사람이 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책의 줄거리를 간추릴 마음은 없다. 달문이 말하는 ‘믿는다’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출처: 도서출판 북스피어.

 

믿는 것과 사랑하는 것

달문은 사람을 믿는다. 달문이 거듭거듭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내가 어려서부터 늘 들어왔던 조언과 다르다.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고 하지 않던가. 아니, 함부로 믿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 믿지 말라는 말을 했던 것도 사람이니,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 믿지 말라는 뜻일까? 아는 사람에게 속고 사기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얘기를 조금 좁혀서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로 넘어가도 그렇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는지. ‘사람은 사랑해야 할 존재이지 믿을 존재가 아니다.’ 믿음과 사랑. 헷갈린다. 사람을 사랑해야 할까, 믿어야 할까?

달문이 말한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따져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달문은 거지로 살았다. 거지 왕초로 살았다. 말하자면 구걸로 먹고살았으니,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어서 살았던 셈이다. 십중팔구는 동냥을 거절하지만, 몇 안 되는 인심 좋은 사람들이 베푸는 선의 덕분에 그가 이끄는 거지 무리가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믿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가 달문으로 한없이 선하게 살아갈 때 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하지만, 그를 돕는 소수의 무리가 늘 있으니까. 하지만 ‘몇 명이라도 나의 믿음에 부응하니까 사람을 믿어요’,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그가 말하는 ‘사람을 믿는다’는 말이 내가 성경에서 배웠고 교회에서 배웠던 ‘사랑’이라는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 이웃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요, 상대에 대한 감정적 호불호와 무관한 사랑이다. 그래서 누구는 그것을 ‘이를 악물고 하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늘 그렇게 이를 악물고 억지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의지적인 면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달문의 ‘믿는다’는 말도 비슷하게 쓰인다.

 

자신을 지켜라

이야기의 뒷부분에서 달문은 역적으로 몰려 임금님이 직접 국문하는 친국을 당하게 된다. 달문이 임금님과 나누는 대화에서 달문의 ‘믿음’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사가 등장한다. 임금님이 유교의 예법에 대해 말을 꺼내자 달문은 자신은 예법은 모르고 아는 것은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냐, 그것이?”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과인을 믿느냐?”

“믿습니다.”

“과인은 지금 당장 너를 죽일 수도 있다. 그래도 믿느냐?”

“사람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를 보고 나서 정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믿는 겁니다.”

뭘 믿는다는 것인가? 상대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도 아니고, 약속을 꼭 지킬 것이라고 믿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변화될 거라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건, 그냥 눈앞의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사람을 믿는 나’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 또는 내게 이익이 되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앞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나’를 지키겠다는 말로 기독교인의 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을 믿는 나’를 지키겠다는 달문의 선언은 한없이 착한 모습으로 실천된다. 어디서 그런 달문의 가치관, 철학이 나왔을까. 모른다. 참으로 참혹한 세월을 보내고도 그냥 그렇게 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를 이끈 삶의 원동력은 모르겠다. 그는 그냥 그렇게 한결같이 약자 편에 서고 원칙을 지킨다.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돈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을 뒤집어엎는 혁명의 길도 거부한다. 친국장에서 왕의 명령에 따라 소리를 하면서 그가 외치는 메시지에서 그의 생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내가 내 밖의 것들과, 나졸에서부터 나라님까지 맞서 싸우면, 나는 이 불행과 이 고통과 이 슬픔에서 벗어날까. … 나졸부터 나라님까지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야. … 그러나 그들을 없애고, 우리가 그들 자리를 차지하면 간단히 끝날 문제일까. 그들이 짊어졌던 책임이 이제 우리 책임이 된다네.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불행과 고통과 슬픔을 해결하지 못해 도망치거나 잡혀 죽겠지. …

그러나 내가 바라봐야 하는 건 바깥이 아니지. 난 나를 지키려고 해. 그리고 여기 모인 이들도 모두 자신을 지켜. 집에선 자신만만하다가 길에서 거리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여기에 분명하게 나온다. 달문이 온몸으로 살아낸 메시지가 이거였다. 인간다움을 아는 자신, 부끄러움을 아는 자신. 선한 것을 추구할 줄 아는 자신. 사람을 믿을 줄 아는 자신을 지켜라. 그가 사람을 어떻게든 믿고 착하게 살아가려고 애썼던 것은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겠구나,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으면서 내가 교회에서 배운 가르침이 달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상당히 근접하게 (다른 부분도 분명 있다. 그건 소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체화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달문이라는 초인(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의 대단한 재능과 불굴의 의지, 뛰어난 지성으로 간신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이다.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길이다. 선한 것을 알아도 그것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고, 좋아 보인다 해도 그것을 실행할 힘은 더더구나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 할까? 그냥 주저앉아야 하나? 나를 지키고 살아가려면 내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아주 큰 도움이, 초자연적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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