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우리 몸 안의 유전적 요인 때문인지, 어떤 외부 환경 때문인지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병에 대한 이러한 과학적 상식이 확립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를 넘어 근대를 지나면서 과학적 발견과 치열한 과학적 논쟁이 진행되었고,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오늘날의 지식이 확립된 것이다.(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질병의 위협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학기술 덕분에 그래도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비해서는 질병의 위협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더라도 과거에 발생했던 많은 다른 전염병들에 비해 죽음의 위협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졌다. 우리는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우리 몸 안의 유전적 요인 때문인지, 어떤 외부 환경 때문인지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병에 대한 이러한 과학적 상식이 확립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를 넘어 근대를 지나면서 과학적 발견과 치열한 과학적 논쟁이 진행되었고,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오늘날의 지식이 확립된 것이다.
시대마다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론을 따랐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경우도 있었고, 자연적인 경우도 있었다. 서양의 경우 병의 원인을 초자연적이 아닌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히포크라테스(B.C. 460-370년경)였다. 그는 병을 이해 가능한 자연적 사건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병은 네 가지 체액(體液)들의 부조화에서 온다는 이론을 체계화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확립된 병에 대한 이 이론이 4체액설(humorism)이다. 이 이론에서 말하는 네 가지 체액은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으로, 고대 그리스의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와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 체액들은 심장, 뇌, 간, 비장 등 인체의 네 장기와 관련이 있고, 또 사계절, 그리고 유년, 청년, 장년, 노년의 인생의 네 단계, 그리고 기질이나 행동 특성과도 관련된다고 하였다. 특정 체액이 많아지면 낙관적인 다혈질, 쉽게 화를 내는 황담즙질, 우울한 흑담즙질, 무덤덤한 점액질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도 이 이론으로 설명했는데 차가운 음식은 점액을 생산하고, 따뜻한 음식은 황담즙을 생산한다는 식이다. 병은 네 체액 사이의 균형이 깨질 때 생긴다고 보았다. 그래서 병의 치료는 과도한 체액은 억제하고 부족한 체액은 식이요법 등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었다. 피를 뽑는 사혈 등이 이 이론에 따른 중요한 치료법이었다. 전염병도 4체액설로 설명했다. 전염병은 더러운 공기인 독기(毒氣, miasma)가 원인이며, 이 독기에 의해 인체 내의 체액들의 균형이 깨져 병에 걸린다고 보았다.
이 4체액설은 병의 원인을 자연법칙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로마 황제의 주치의였던 갈레노스(A.D. 129~199경)에 의해 확장되고 다듬어진다. 그는 검투사들의 주치의이기도 해서 부상당한 검투사들을 통해 뼈와 장기 구조를 많이 보았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인체 해부를 금기시했던 시대라서 인체 구조에 대한 지식은 동물 해부에 기초하였고 많은 점에서 정확하지 않았음에도, 갈레노스에 의해 집대성된 인간의 병에 대한 이론은 그 후 1500년 동안 지속된다. 이 긴 기간 동안 병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갈레노스 이론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 체액 이론은 인간이 만든 이론 중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표면적으로는 오늘날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신체 내부의 균형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생각 속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갈레노스의 저작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등 그리스 고전들과 함께 모슬렘에 의해 아랍어로 번역되어 보존된다. 이슬람의 대표적 철학자이며 의학자인 이븐시나(아비센나, A.D. 980-1037)는 갈레노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인도와 페르시아의 의학, 그리고 자신의 의학적 경험을 더해 『의학전범』을 집필한다. 갈레노스 저술들의 아랍어 역본과 이븐시나의 이 저작은 12세기 이후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전해졌으며, 대학의 의학 교과서로 널리 활용되며 중세 말기와 근대 의학에 큰 영향을 끼친다.
16세기에 들어서 마침내 이 이론에 도전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스위스의 의사이면서 연금술사였던 파라셀수스(1493-1541)는 1527년, 중세 의학의 교범이었던 이븐시나의 『의학전범』을 불태우고 권위와 전통에 얽매인 체액설을 비판하며 체액과 같은 관념이 아닌 경험적인 의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폐 질환을 직접 보면서, 병은 체액이 아닌 외부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점성술 의학이라는 독특한 치료술도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이 널리 인기를 얻었다. 몸의 각 부위가 12개의 별자리(황도 12궁)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태어난 별자리에 따라 질병과 체질을 예측하여 그에 따라 치료한다는 것이다. 파라셀수스는 병이 내부의 체액의 불균형이 아니라 환경이나 별과 같은 외부의 힘들이 원인이라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당시까지 견고했던 체액설에 반기를 든 것이다.
한편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예술과 문학의 부흥이 인체 해부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1543년 베살리우스(1514-1564)는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갈레노스와 이븐시나의 영향하에 있던 당시 의학계의 시각을 뒤흔든다. 그는 갈레노스의 인간의 몸에 대한 기록에 200여 곳 이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동안은 할 수 없었던 인체 해부를 직접 실행하여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의학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베살리우스의 주장은 갈레노스 지지자들과 의학계의 강력한 공격으로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그처럼 견고했던 갈레노스의 권위가 결정적 타격을 입는 일은 그로부터 80여 년이나 더 흐른 뒤 영국의 윌리엄 하비(1578-1657)에 의해 일어났다. 베살리우스 이후 갈레노스의 이론에 오류가 많음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의학 사상을 강하게 고수했다. 하비가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에 유학해서 배운 것도 갈레노스의 의학 체계였다. 특히 혈액에 관한 이론은 갈레노스의 4체액설의 영향력이 강한 분야였다. 갈레노스는 간에서 소화된 음식물로부터 만들어진 혈액이 정맥을 통해 몸의 각 부위로 공급되어 소모되어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피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동맥의 역할은 폐에서 생기(生氣)를 운반해서 온몸에 퍼뜨리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하비는 심장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하여 심장이 동맥을 통해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고 그것이 다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온다는 혈액순환설을 주장한다. 갈레노스의 이론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는 주장이었다. 하비는 1628년 이 이론을 담은 『동물의 심장과 혈액에 관한 해부학적 실험』을 출판한다. 하비는 이 이론으로 갈레노스 이론의 문제는 지적했지만 정작 자신은 피가 왜 순환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 이유가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150년 뒤였는데, 1774년에 가서 산소가 발견된 이후에야 사람들은 피가 순환하는 이유가 혈액을 통해 온몸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하비의 발견은 병의 원인에 대해서도 갈레노스의 4체액설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 1800년대에 들어와서야 세균(박테리아)이 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등장했다. 이전에는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의 원인을 악취를 풍기는 더러운 공기인 독기로 보는 ‘독기설’로 설명했다. 전염병이 생기는 곳에서는 대개 악취가 났기에 알 수 없는 독기가 병의 원인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제 이 이론이 ‘세균설’로 대치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독기설도 4체액설의 일부였기에, 세균설이 치료법 부분까지 체액설을 대체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세균설이 병의 원인 설명뿐 아니라 치료에서까지 결정적으로 힘을 얻게 된 시기는 19세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파스퇴르는 물이나 우유를 끓여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면 장티푸스와 같은 병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지프 리스터는 소독약을 사용하면 병원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해 수술실과 환자의 상처 부위를 소독약으로 소독함으로써 환자의 감염을 크게 막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로베르트 코흐는 미생물을 생체에서 분리하여 배양하는 방법으로 결핵균 등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을 규명했다.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세균보다 훨씬 더 작은 바이러스도 많은 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시간이 더 흘러 1940년대 전자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에야 확립되었다.
그러나 세균설만으로는 우리 몸에서 생기는 많은 비감염성 질병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런 질병들도, 1800년대에 현미경의 도움을 받은 루돌프 피르호가 병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의 변화 때문이라고 한 주장에서 출발한 세포병리학의 등장으로 해결되기 시작한다. 이후 세포와 인체 조직 연구가 발전했고, 더 나아가 20세기 중반에는 DNA가 발견되어 물질대사 장애, 돌연변이나 유전자 결함으로 암이나 각종 질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세포설과 세포병리학 등이 등장하고 나서야 인류 역사에서 오랜 기간 명성을 날렸던 체액설이 사라졌다. 지금 보면 체액설이 시대적 한계와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믿고 살았다. 그 시대 신자들도 그 이론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믿고 살았다. 이렇게 보면, 지금은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에 기초한 우리 시대의 이론도 시간이 지나 후대인들에게 동일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식으로 이전의 의술을 미신이나 무지라고 간단히 판단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흑사병이 돌 때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하다가 집단 감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우리 시대의 잣대로 판단하며 비난하는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페스트균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던 시대를 지금의 과학적 상식을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와 반대로, 바이러스의 존재를 아는 우리가 흑사병 당시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 역시 과학이나 현대 의학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가 될 것이다.
현대 과학이 질병의 원인을 긴 역사를 통해 이만큼 확립하고 밝혔지만, 많은 질병이 인체 내부와 외부의 복합적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알려진 인간의 질병만 1만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 새로운 질병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과학의 역사는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준다. 병의 원인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보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의학적 상식도 시간이 지나면 폐기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과 의학 상식 안에도 결핍과 시대적 한계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에 대해 이만큼 알려 주신 것들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히 받되,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의학 이론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한계를 지녔음을 아는 것이 신자의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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