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와 ‘온난화’라는 말은 이제 ‘환경파괴(Destruction)’, ‘기후위기(Crisis)’라는 말 앞에서 다소 순진한 언어가 되어 버렸고, 지구를 덥게 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2100년에는 지구 온도가 최소 4~6도 올라 지구에서 인간은 물론 바다의 생명체도 대부분 사멸하는 문명적 대파국, 대멸종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간에게 다스려지며 내어주고 통제당할 것만 같았던 자연과 지구에 대한 인간의 민감성이 달라져야 한다는 호소와 주장이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달라지기를 선택하고 있다. 기후 위기의 거대함과 거창한 세계적 협약이나 선언에 비해 나의 실천은 한순간일 수 있고, 나비 날갯짓만큼의 바람도 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자발적불편운동’의 슬로건 중 하나인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라는 말은 우리의 실천에 용기를 북돋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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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자발적불편

–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

 

김현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국장)

 

어릴 적에는 ‘환경보호’,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로 환경과 기후의 상태와 전망을 접했던 것 같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지구 어느 편에서는 우리나라 중소도시 크기의 숲이 사라졌고, 또 지구 어느 편에는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고, 몇십 년 뒤에는 물과 공기를 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때에는 내 삶과 터전에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와 닿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정말 깨진 얼음 판 위에서 위태롭게 걷고 있는 북극곰을 보았고, 불타거나 벌목되어 검은 재와 붉은 흙만 남은 숲의 잔해를 보았고, 쓰레기로 뒤덮인 하구와 해변을 보았고, 미세먼지 때문에 구입한 마스크를 코로나19 초기부터 착용해야 했다. ‘환경보호’와 ‘온난화’라는 말은 이제 ‘환경파괴(Destruction)’, ‘기후위기(Crisis)’라는 말 앞에서 다소 순진한 언어가 되어 버렸고, 더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해보려는 노력을 여러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 진영에서 볼 수가 있다.

지구를 덥게 하는 이산화탄소의 방출 증가 속도는 산업혁명 이후에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간 지구의 온도가 1도 올랐는데, 미미해 보이는 그 1도 상승이 이미 적지 않은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현재 추세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방치된다면, 2100년에는 지구 온도가 최소 4~6도 올라간다고 예측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면 지구에서 인간은 물론 바다의 생명체도 대부분 사멸하는 문명적 대파국, 대멸종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는 데이터와 연구를 바탕으로, 2015년 파리에서는 195개국 대표가 모여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막자고 합의했고, 2018년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인천에서 개최한 총회에서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하며 지구의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탄소 배출 감량 전략의 실행을 촉구했다.

 

(c) MBC (www.imnews.com)

 

탄소는 플라스틱 제조와 소각, 가축 사육에서 가장 많은 양이 배출된다고 한다. 이러한 지표들이 발표되고 2010년대 이후로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고, 채식을 하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 ‘환경 소모임’이 있다. 얼마 전 예배 때 그 모임에 대해 소개하고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매체의 영상을 참고하며 공부하고, 일상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며 발견할 때마다 기록하고, 주간 몇 끼는 채식을 하는 등, 소소하지만 위대한 실천을 하고 있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는 플라스틱 사용과 고기 소비량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이미 당연한 사람들이 많다.

국가와 문명 간 정복의 역사,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자연이 무한정, 묵묵히,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리라, 인간이 자연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가지고 그것을 증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그 오만함이 틀렸음을 2021년을 사는 우리는 깨달았다. 사실 인간의 자연 약탈과 오용에 대한 비판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1960년대 반핵반전운동이 평화-생태운동으로 연결되었던 사례, 1970년 오일쇼크 이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와 인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불거졌던 사건, 2009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무한성장을 반대하는 공감대의 형성, 2015년 이후 곳곳에서 일어난 기후 협약과 그레타 툰베리의 호소, 그린뉴딜과 기후행동의 확산 등의 흐름이 그것이며, 2020년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이제는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는 순간, 이전과 아예 다른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을 전 세계가 동시에 맞이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다스려지며 내어주고 통제당할 것만 같았던 자연과 지구에 대한 인간의 민감성이 달라져야 한다는 호소와 주장이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달라지기를 선택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창세기적, 묵시록적 관점에 갇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은, 지구가 품어주고 함께 지구를 빌려 쓰는 다른 동료 생명들이 참아주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출산율’을 높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과 호흡이 그 지으신 대로 영광스럽게 존재하도록 하라는 말씀이라고 믿는다. 인류만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 나무, 꽃, 강, 바다, 공기, 흙마저도 말이다.

한국은 2020년 2월 WWF(세계자연기금)가 꼽은 기후변화로 인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중 7위이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너무 큰 것, 식량자급률이 낮은 것이 그 요인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물질과 자본의 편리가 아주 조금씩 매우 다르게 뒤바꾸어 놓은 우리의 자연과 일상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회복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류가 살아왔던 태도와 형식의 관성이 있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정말 ‘위기(Crisis)’라고 생각하고 ‘파괴(Destruction)’를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실천이 모이면 무언가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과 도전 앞에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2011년부터 ‘자발적불편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윤실은 창립 초기(1987년)부터 정직, 검소, 절제, 나눔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생활 속 실천을 독려해왔는데, 그러한 가치와 실천을 재구성한 것이 ‘자발적불편운동’이다. 크게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간의 터로 허락하신 자연 세계의 보존과 회복을 위한 실천 운동, 이웃 특히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나누는 실천 운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목표로 실천 캠페인이나 워크숍, 강연과 수기 공모 등을 통해 운동을 현실화하고 구체화하고 있다. 기윤실의 창립자이자 기윤실의 초기 핵심가치를 강조해 온 손봉호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불편하더라도, 심지어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소유와 편리를 추구하기보다 약자의 이익과 공익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모두를 편리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도 덧붙였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닌가? 내가 편한 대로 해야지’라는 마음이 생길 때는 모두가 실패하고 불행할 것이다.

‘자발적불편운동’의 슬로건 중 하나인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라는 말은 우리의 실천에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러한 용기로 꾸준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기윤실 후원자와 회원교회를 비롯한 200여 곳의 교회가 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기윤실에서 제안하고 있는 환경 관련 자발적불편 캠페인을 포스터를 통해 소개한다.

 

 

나 역시 ‘작은 것’들을 ‘지금’ 할 수 있을 때마다 실천한다.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을 예로 들자면, 5~6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한다. 런지 하듯이 계단을 오르면 하체 근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대나무 칫솔과 양치컵을 사용하고, 손을 씻은 후 종이타올을 쓰기보다 손수건을 쓰려 한다. 집에서 나올 때, 회사에서 퇴근할 때, 멀티탭 전원을 끄고 대기전력을 차단하며, 내가 앉은 자리 위의 등만 켜고 나머지는 켜지 않는다. 장바구니를 쓰거나, 비닐봉지를 재사용하고, 없으면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온다. 옷, 신발, 가방, 화장품 등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한다. 애초에 그런 쪽에 욕심이 없어 다행이다. 한 주에 먹을 만큼만 장을 보고, 식탁도 도시락도 간소하게 한다. 육류 반찬을 지양하고 채식하는 친구들과 동생을 존중하며 일정 기간 동참하기도 한다. 사무실에서나 카페를 갈 때 텀블러를 이용하고 빨대는 가능하면 사양한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개인 컵을 받지 않는 매장도 있지만, 할인은 해준다. 식사 때나 행사 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강사를 위한 생수병을 사지 않고 컵에 물을 담아 드린다. 내부 회의 자료나 비공식 문서는 이면지를 사용하고, 박스와 포장지를 재사용한다. 플라스틱 병뚜껑은 모아두었다가 제로웨이스트샵에 전달하고, 환경보전기관을 후원하며 정기적으로 소식을 열람하고 종종 캠페인에 참여한다.

맞다. 별거 없다. 기후 위기의 거대함과 세계적 협약이나 선언에 비해 나의 실천은 한 순간일 수 있고, 나비 날갯짓만큼의 바람도 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천과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이 이미 내 주변에 수십, 수백 명이 있다. 그리고 기윤실 회원 700명, 교회 200곳, 이 <소리>회보를 받아보는 1만 명이 같은 마음으로 환경과 지구를 아끼고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아주 약간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연을 보전하고, 지구를 덜 덥게 하고, 지구 동료들을 살리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물론 국가 간, 그리고 정부 차원의 인프라 구축과 제도 마련이 훨씬 더 큰 효율과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카페에서 매장이용 고객들에게는 다회용 컵을 제공하고, 종이 빨대로 교체한 일이 얼마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감소시켰는지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의 일상 차원에서 작은 실천도 지속되어야 한다. ‘각자’의 실천은 ‘우리’의 미래로 이어지기에, 보이지 않는 연대가 형성되고 지구와 인류가 더불어 살아갈 가능성의 저변이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리를 ‘자발적’으로 한발 양보하여,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며 각성된 한 걸음을 다시 내딛기를 바란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아닌 ‘나부터’,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이런다고 달라지겠어’가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신 희생과 부활을 일상에서 고백하고 살아내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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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 한국기독학생회(IVF) 학사 회보 <소리> 10+11월호

*참고도서 :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김상준, 아카넷 2021), 글로벌 그린뉴딜(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2020), 행복을 위한 불편레시피30(기윤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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