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독일과 비슷한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일본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54기의 원자로에서 일본 전기의 30%를 생산했다. 당시 원전 비중을 5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고 이후 독일과 마찬가지로 원전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선언을 무시하고 다시 조금씩 가동을 시작해 2023년 현재 가동 가능한 33기의 원자로 중 10기가 가동 중이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2023년 4월 15일, 독일이 모든 원자력 발전(원전)의 가동을 중단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까지만 해도 독일 전력의 25%를 원전이 담당했는데 이 사태 이후 원전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하면서 이날 마지막 남은 3기의 원자로 가동을 멈춘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잠시 원전 계속 가동 여부가 논의되었지만 원래 결정한 대로 진행했다. 독일은 오래전부터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국가 경제의 핵심으로 정하여 이미 작년 전기의 46.2%를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으로 생산했다. 환경 보호를 위해 우리보다 3배나 비싼 가정용 전기 요금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원전에 의한 싼 전기료 대신 미래 세대의 안전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독일의 강한 과학기술력이었다.

 

그런데 독일과 비슷한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일본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54기의 원자로에서 일본 전기의 30%를 생산했다. 당시 원전 비중을 5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고 이후 독일과 마찬가지로 원전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선언을 무시하고 다시 조금씩 가동을 시작해 2023년 현재 가동 가능한 33기의 원자로 중 10기가 가동 중이다. 다른 16기도 재가동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라 한다. 일본 국민들의 원전 재가동 반대 여론도 많이 수그러들어 올해 들어 50% 이상이 원전 재가동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발표도 나오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일본 정부는 탄소 중립 달성 목표를 내세우면서 원전 비중을 다시 늘려 나가는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원전 확대 정책에 최대 걸림돌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종결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원전 사고의 과거를 빨리 지워야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 문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5월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오염수의 검사 결과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의 중간 보고서를 내놓았기에 방류는 어떻게든 진행될 듯하다.1) 그리고는 다시 후쿠시마 사태 이전의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같은 원전을 두고 왜 독일과 일본은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사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당사국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고 지금도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어찌 보면 원전 사고에 가장 취약한 일본이 독일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기술력에 있어서도 독일에 뒤지지 않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원자력에 대한 과학기술적 이슈보다 정치 경제적인 원인이 커 보인다. 일본은 화석 에너지의 90%를 해외에 의존하기에 늘 불안요인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재생 에너지라는 대안도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기에 역시 불안 요인이 있고 또 초기 인프라 투자 비용 등 당분간 높은 전기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면이 있다. 일본으로서는 지금도 우리나라에 비해 2배 정도 가정용 전기 요금이 높은데 여기에서 더 올리기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독일은 높은 전기 요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고, 신재생 에너지의 수급 불안 요인은 유럽연합(EU) 안에서 전기를 사고파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EU 국가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실시간 전기 거래를 통해서 이웃 나라의 저녁 시간 남는 전기를 바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56기의 원자로에서 국내 전기의 70%를 생산하는 프랑스도 여기에 포함된다. 독일의 선택이 부러워 보이고 일본의 선택이 우리에게까지 위험해 보이지만, 독일이나 일본의 정책적 결정에는 이렇게 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생각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친환경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시대의 환경오염 문제의 화두는 온실가스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국가 경제를 좌우할 정도이다. 현재 전 세계 전기의 17%를 생산하면서 신재생 에너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력 발전의 경우 환경 파괴 문제 때문에 지금은 신규 댐 건설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면에서는 친환경적이다. 풍력이나 태양광도 온실가스나 미세 먼지(배기가스) 배출 면에서 친환경적이지만 건설에 따르는 자연 파괴라는 면을 강조하면 꼭 친환경적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전 세계 전기의 10%를 생산하는 원전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나 폐기물 측면에서 보면 위험하고 친환경이 아니지만 온실가스 배출로만 보면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친환경의 선택은 옳고 그른 문제라기보다 시대에 따라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경우 원자력 에너지 이슈가 정책 대결이 아닌 정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정쟁은 아무 유익이 없는 일이다. 물론 각기 목적을 가진 시민운동은 다양한 주장을 할 수 있다. 이런 운동은 정쟁과는 다른 건전한 일이다. 사실 독일의 정책 결정에는 시민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3월 우리 정부는 유엔에 제출하는 2030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2018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40%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목표는 세부 내용에서 일부 조정이 있을 뿐 이전 정부의 목표와 같다. 이 엄청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책적 토론, 예산 투입, 기술 개발과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7년 만에 자동차, 발전소, 공장에서 내뿜는 온실가스의 거의 절반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보통 목표가 아니다. 미국이나 EU는 이미 강력한 정책과 국민적 합의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당장 실천하고 고통을 분담하고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이렇게 최대 이슈가 된 온실가스 감축안에 포함된 원전도 자료와 통계를 토대로 정책적 논의를 하면 된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정쟁이 아닌 치밀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도 서해 해안을 따라 현재 54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으며 20여 기를 추가로 건설하며 세계 최대의 원전 국가가 되고 있다. 중국의 원전도 우리의 안전에 아주 중요한 문제다. 원자력 에너지는 이리저리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1)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의 사실 관계는 2021년 5월 7일 <좋은나무>에 실린 손화철 교수의 글을 읽어보라. 그 글 이후 지금까지 사실 관계에서 변한 내용은 크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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