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실 30주년, 그 후 1년]
변하지 않는 복음과 변화하는 세상, 그리고 기윤실의 역할
글_정병오 공동대표
기윤실이 시작됐던 1987년 즈음은 한국 기독교가 급성장하던 시기임과 동시에 복음주의 학생선교단체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 복음주의 교회나 학생선교단체들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불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바꾸어갈지에 대한 인식이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군부독재에 의해 자행되던 인권유린과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억압에 대해 분노하던 사람들은 한국 기독교가 사회에 무관심했고 결과적으로 권력의 악에 동조하는 모습에 한번 더 분노했다. 그리고 교회 내 많은 청년들은 시대적 악에 대해 가슴 아파하면서도 복음에 기반한 사회참여의 방법을 찾지 못해 방황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기윤실은 시작되었다. 기윤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무오성, 복음전도의 우위성에 기반하되, 복음을 믿은 개인과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고 압제받는 자를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사역을 하기로 했다. 이러한 기윤실의 사역은 개인이 검소와 절제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교회가 내부가 아닌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며, 사회 제도를 정의롭게 바꿈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운동의 틀을 마련했다.
이후 30년 동안 기윤실은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거스르는 자발적불편운동을 개인과 교회 가운데 실천해왔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고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세습반대운동, 재정투명성운동 등을 힘써왔다. 가정의 가치를 지키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음란물을 퇴치하기 위한 싸움과 문화의 건강성을 위한 감시 운동을 펼쳐왔다. 나아가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공명선거운동, 도박사행산업 확산 반대, 투명성 강화 운동 등을 실천해왔다.
이 모든 구체적인 사업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기윤실이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밖의 일반인들에게는 예수님이 얼마나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지, 복음이 얼마나 사람을 존귀하게 하고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산 위의 등불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계에서는 많은 직능 단체들과 운동들을 만들어 독립시키는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기윤실이 많이 노쇠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30년 전 선배 세대들이 붙들고 씨름했던 기윤실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후배 세대들에게는 낯선 감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기윤실은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공동대표와 상임집행위원 등 리더십의 중심을 50대와 40대로 대폭 낮추고, 20-30대 회원들도 자기 문제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열어가고 있다. 운동의 의제들도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과제들을 발굴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느끼는 어려움에 함께 대응하면서 교회와 보조를 맞추어 나가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운동의 방식에 있어서도 한 사람의 리더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집단지성의 힘을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복음의 내용과 능력을 변하는 세상 가운데 어떻게 적용하고, 늘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력으로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선배들이 믿음과 용기로 자기 역할과 사명을 감당해온 것처럼, 지금 후배들과 다음 세대들의 손을 붙잡고 그들의 지혜를 모아 동일한 걸음을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 지난 30년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향후 30년도 함께 하시고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을 믿으며.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7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