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은 지금까지 수많은 개혁을 하고 새로운 제도들을 도입해왔지만 무의미한 반복 교육과 무한 경쟁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 한국 사회 내 미래에 대한 불안도가 커지면서 교육에 대한 논의도 ‘기계적인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의 행복이나 무한 경쟁 해소와 같은 담론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1000년 이상 지속된 ‘선발과 배제’의 교육관을 내면화해왔기에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본문 중)

<SKY 캐슬>과 한국 교육③

<SKY 캐슬> 탈출을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병오(기윤실 공동대표, 오디세이학교 교사)

 

<SKY 캐슬>은 한국 사회 내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표현했을 뿐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다룬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다수의 부모들이 형편이 안 돼서 못했을 뿐이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SKY 캐슬>이 방영되는 동안 많은 학부모들이 한서진(염정아)에게 열렬한 공감을 표했다. 이수임(이태란)을 통해 한서진으로 대표되는 학부모들의 욕망을 비판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반응들이 일어난 것이다.

 

‘SKY 캐슬’에서 한서진(염정아 분)이 이수임(이태란 분)에게 “이게 어디서,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라고 말하는 장면. ⓒJTBC

 

자녀가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더 높은 사회 계층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들의 보편적인 욕망일까?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나라들을 보면,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와 대략 비슷해 보인다. 심지어 북한의 교육도 다르지 않다. 필자가 2007년에 평양에서 제일 좋은 학교라고 하는 평양제일고등중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무실 복도에 1등부터 꼴찌까지 학생들의 성적과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뿐 아니라 김일성 종합대학 입학시험 날에는 부모들이 교문 앞에 서서 기도를 드리는 등 자녀들의 진학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하는 문화가 남한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어느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까지도 과도한 입시경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경제 발전으로 인해 생긴 여유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을 더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간관과 교육관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친 후, 그 결과에 따라 한 줄로 세워 앞에 선 아이들에게만 혜택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혜택에서 배제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며 그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이를 ‘선발과 배제’의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넓게 보면 기독교 전통에 있는 서구 국가들의 교육관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들도 교육과 관련해서 여러 문제와 고민을 안고 있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무의미한 무한 경쟁의 문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아이들에게 은사와 재능을 다르게 주셨고, 교육은 그것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누리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을 제공하되, 각자 다른 성취도와 흥미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각자의 재능과 희망에 맞추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줄 뿐이다. 이런 태도는 부모나 학교가 다 마찬가지다. 이것이 기독교적 인간관에 기초한 ‘발견과 발굴’의 패러다임이다.

 

우수한(이유진 분) “피라미드에서는 미라가 맨 꼭대기에 있는게 아니래.(중략) 중간이 제일 좋은 자리니 여기 있지” ⓒJTBC

 

당연히 이 나라들은 그들의 인간관과 교육관을 뒷받침하도록 사회의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즉, 아이들이 각자 재능을 마음껏 개발하고 발휘하도록 국가가 공적인 지원을 충분히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원을 통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회에 감사하면서 높은 비율의 세금이나 활발한 기부를 통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세금과 기부는 복지 제도와 사회 안전망을 형성하기 때문에 교육을 많이 못 받은 사람들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엄을 누릴 수 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특정 대학이나 특정 직업을 갖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고, 각자 자신의 은사와 관심에 맞는 정도의 교육을 받고 거기에 맞는 직업을 갖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평등한 사회는 다양한 교육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한 가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은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이 지났지만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특별히 교육과 관련해서는 부조리가 심화된 측면도 많다. 근대 교육 초기에는 선교사와 교회가 교육을 주도하였으므로 기독교인은 근대 교육의 혜택을 더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이후에 ‘개천에서 나온 용’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회의 중상류층으로 진입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선발과 배제’의 틀 안에서 선발되는 혜택을 보았고, 그래서 ‘선발과 배제’의 전통적인 틀을 기독교의 ‘은혜와 축복’의 도구로 합리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스스로 혜택을 입었던 ‘선발과 배제’의 틀이 얼마나 비기독교적인지, 또한 다음 세대를 어떻게 병들게 할지를 파악할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발견과 발굴’의 기독교적 교육관으로 전통적인 ‘선발과 배제’의 교육관을 대체하고, 한국 교육의 무한 입시경쟁을 극복할 교육적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무한 입시경쟁 체제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고, 내 자식만 살아남고 선발되는 데 영적인 힘을 쏟다가, 결국은 교회가 입시에 삼켜지고 말았다. 다음 세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이는 교회로서도 불행이지만 한국 사회로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중대한 원천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은 지금까지 수많은 개혁을 하고 새로운 제도들을 도입해왔지만 무의미한 반복 교육과 무한 경쟁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 한국 사회 내 미래에 대한 불안도가 커지면서 교육에 대한 논의도 ‘기계적인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의 행복이나 무한 경쟁 해소와 같은 담론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1000년 이상 지속된 ‘선발과 배제’의 교육관을 내면화해왔기에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차기준(조병규 분) “지구는 둥근데 세상이 왜 피라미드야!!!” ⓒJTBC

 

그렇다면 다시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한국교회가 지난 130년 동안 우리 속에 깊게 뿌리박힌 ‘선발과 배제’의 가치관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강화해 왔지만, 이제는 돌아서야 한다. 모든 인간,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하게 여기고, 서로 비교하거나 줄 세우지 않으며, 하나님이 각자에게 심어주신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고 발굴해서, 각자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한 가지 기준을 따라 남들보다 앞서라고 닦달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습관을 극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앞서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나만 그렇게 하지 않다가 내 아이만 뒤처지고 낙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지 않으며, 하나님이 내 아이를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가진 자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이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물론 이러한 노력을 개별 성도의 몫으로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교회는 강단에서 올바른 기독교적 교육관과 자녀 교육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르쳐야 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교회 안에서 자녀를 키우는 성도들이 이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며 공동의 실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과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 자녀들의 학교가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지 않도록, 우리 입시 제도가 아이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방식에서 탈피하도록 여론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보다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직업이나 직종에 따른 임금 격차가 과도할수록 입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직업 간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든지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이 되어야 아이들이 각자의 은사를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시도할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경쟁이 줄어든다. 이를 위해 국가는 높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나 건물의 불로소득을 환수해서 든든한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번 실패한 사람들도 노력하면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때 우리나라에서도 ‘발견과 발굴’의 기독교적 교육이 꽃필 수 있다.

 

차세리(박유나 분) “남들이 알아주는 게 뭐가 중요해?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아빠 날 좀 존중해줘!”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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